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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위선적인 인물 못지 않게 위악적인 인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 소설로서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 위악적인 인물만큼 매력적인 인물도 좀처럼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조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덕분에 상냥한 조제가 베르나르에게 상냥한 미소로 상냥한 설명을, 즉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말 것을, 미쳐버리지 말 것을 충고하는 장면은 아마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187쪽)
더이상 사랑의 영원성을 진실로 믿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이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것처럼 그 모든 것은 하고 또 해도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제는 그것을 안다. 베르나르처럼 생각하게 되면 죽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 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과 같았다. (137쪽)
베르나르는 결국 조제의 사랑을 얻지는 못 하겠지만, 아마 그래서 그의 사랑을 얻고 싶었으리라.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혹은 더 그 후라고 할지라도 그토록 염원하던 사랑이 언젠가는 변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조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은 물론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으로 아우르는 사강이 말하는 삶이고, 사랑이다.
-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77쪽)
한편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는 그것이 힘겨워 여행을 떠나지만, 결코 잊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괴로움을 고백해도 천편일률적인 위로 뿐이다. 자기 자신을 보고 마음을 가라 앉히라니. 베르나르는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라며 부르짖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도 자신을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그 순간의 베르나르는 조제의 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눈은 전혀 소용이 없었으니까. 실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내외적으로 지적이라는 평판을 듣는 베르나르도 사랑 앞에서는 그 위대한 사고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진정 사람이란 어쩔 도리가 없는 존재인가.
온 몸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이들, 그리고 그것을 냉소하는 이들, 또 한 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삶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강은 아마 가장 마지막의 그것일 게다. 책에서 등장하는 여러 남녀들의 엇갈린 사랑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훗날 비록 식어 버리고, 퇴색해 버리고, 윤기를 잃어 버리더라도. 그 순간의 믿음과 영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