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천성이 수필과는 맞지 않는 모양이다. 도종환의 시를 매우 좋아하는 나지만, 수필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수필도 내 마음을 크게 울리진 못하나 보다. 아마 그건 도종환의 탓이 아니렷다. 사실상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가나 시인이라도 그들의 수필만은 내게 감동적이지 못 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의 문장은 아름답다. 물론 그의 시만큼이나 아름답지는 못 하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생생한 단어들을 그러모은 느낌이다. 더군다나 도종환은 자신이 표현한 그것들을 아주 사랑하고 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썼다. 그래서 이 수필은 산, 숲, 나무, 꽃, 새...... 그 모든 자연을 얼싸 안고, 조근조근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사람을, 사람이라는 존재를 사랑한다.

 

- 꽃 한 송이 사람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잠시 삶의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끝없이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게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318쪽)

 

 도종환이 산에서 겪는 일상은 매일매일이 비슷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아마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제각각 비슷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한 것처럼, 그렇다. 언제나 쫓기는 듯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 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산에 데려다 놓는다손 치더라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맨발로 뛰쳐 나올테다. 처음 하루는 아름다운 산에 반해 잠들겠지만, 이튿날부터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혹은 산밖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울테니까. 아마 나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도종환이 산에서 사는 아름다움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마 천성이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 천성이 부러운 것 아닐런지.

 

 나 또한 마찬가지라서 지나치게 바쁘고 쫓기는 일상도 싫지만, 지나치게 한가하고 고적한 삶도 싫다. 또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 속에서만 살 자신은 없다. 푸릇한 풀 한 포기는 좋아하지만 그 풀을 쑥쑥 자라게 하는 지렁이는 징그럽고, 새는 좋아하지만 마당 앞에 싸놓은 새똥을 보면 욕이라도 한 바탕 퍼부을 게 뻔하다. 아침마다 새들의 지저귐에 깨어나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지만 괴로울 수도 있고, 밤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고적함을 즐길 수도 있지만 짜증내지 않을 자신이 없다. 또 한낮의 매미 울음은 얼마나 또 시끄러운지. 순식간에 해가 져버리는 산사는 어떠며, 새카맣게 우거진 숲에서 길을 잃고 무서워 하지나 않을런지. 이 모든 게 자연과 함께 하고 그 속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이미 도시에 익숙해진 탓일게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사진으로 본 자연은 아름답지만, 실제로 그곳은 적응되지 않은 사람이 살기에는 지치고 고단하기만 하다.

 

 자연이 익숙해 졌다는 도종환도 때때로 그 불편함에 대해 논하는 것처럼, 자연에 동화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가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고 정말 묻는다면, 나는 아마 '조금 더 덕을 닦은 후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람에 속하려면 한참 멀었으려니, 하고 지레 짐작해보는 탓이다. 앞서도 말했듯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그만큼 아름답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탓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가 스스로 깨달은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진부한 옛 이야기처럼, 혹은 설교처럼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조금씩 맛봐야 한다. 치자물이 천천히 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선한 마음을 조금씩 나에게 물들일 수 있을 것 같다. 霖

- 오늘 아침엔 한글 정자체 쓰기를 하였습니다. 한글 쓰기 교본을 사다가 '가'자부터 천천히 공들여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 무슨 퇴행적인 짓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겨울 아침, 글자 하나하나를 반듯하게 다시 쓰는 일부터 하고자 하는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기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입니다. 난필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삶에도 어지러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난필로 어지럽게 남긴 글씨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지닌 채 쫓기며 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반듯하게 생각하고 쓰고 하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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