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화
사토 아키코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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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즐겁다.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매혹되는 것도 좋고, 뚫어지게 쳐다 보다 그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좋다. 때로는 색감 자체에 빠질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선에, 혹은 표정이나 인상에 빠질 때도 있다. 물론 그렇게 그림 자체만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무언가 모자랄 때가 있다. 몇 번을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 혹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왜 그린 것인지 애매모호한 그림, 이면에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그림들을 보면, 감상과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읽어 왔던 미술 서적들은 그동안 많은 양식이 되어 주었다. 이 책, <세계의 명화>도 그 중 한 권이 되었다.
 

 저자 사토 아키코는 일본인이기에, 일본인다운 시각에서 또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또 학창 시절에 학교보다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로 오래고 깊은 심미안도 엿볼 수 있어 좋다. 다만 지나치게 일본인스러운 문구들을 발견할 때, 조금씩 거슬리는 점은 어쩔 수 없다. 간혹 어떤 미술전에 꼭 가보라는 추천의 말이 적혀 있어도 쉽게 갈 수 없고, 닛신 컵누들이나 사자에상을 예로 들어 설명해도 쉬이 동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역자를 통해 보완되어도 좋을 것 같은데,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수 있겠다. 단점이자 장점이랄까.

 

 한편 다른 교양용 미술 서적들에 비해 많은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특히 잘 모르고 있었던 현대 화가 몇몇을 알게 되어 좋지만, 좋아하던 몇몇 화가들이 빠지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다. 어쨌든 부제처럼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명화들을 중심으로 그림에 대한 설명, 작가의 생애, 에피소드 등을 엮어서 잘 해설해 주어 완성도는 높은 편인 듯하다. 물론 다른 책이나 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도 많았지만, 같아 보이는 그 내용들을 이전과 다른 저자에게서 또 다르게 각색되어 보게 된 것도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 많은 화가와 그림을 다루고 있기에 깊이 있게 볼 수는 없다는 점은 아쉽다. 물론 이보다 더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화가 개개인을 다룬 책이나 화집 등을 보아야 할 터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큰 수확이 있었기에,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화가와 그의 그림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프리다 칼로의 경우, 그의 그림이 내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곤 했기에 좋아하지 않았다. 무언가 아픈 언저리를 찌르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게 영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책에서 <부서진 척추>라는 작품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정도의 전율이 느껴졌다. 한참을 쳐다 보다, 그에 따른 해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또 한 명의 좋은 화가, 좋은 그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좋지만, 숨은 이야기나 시대 상황을 통해 해석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토막토막 알았던 그림들을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 한 번쯤은 잡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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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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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뵈를레 선생, 나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카트야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의 모멸과 수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내가 놀이에서 이기든 지든 누군가에게 시험을 당하는 생쥐같은 기분을 즐기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놀이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혹은 놀이에서 지더라도 그 자체를 즐길 수만 있다면, 놀이꾼으로서의 사명은 다한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기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술 더 떠서 때때로 패배가 자신에게 더 많은 재미와 흥미,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생이 말한 것과 달리, 선생은 그런 놀이꾼이 아닙니다. 만약 선생이 자신이 정의한 진정한 놀이꾼에 속했다면, 당신은 카트야와 그의 남동생 하이코의 놀음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놀음을 즐기고, 정해진 틀과 규칙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겠지요. 또 승산이 없는 싸움이더라도 그 놀이를 받아 들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은 승산이 없는 놀이는 시시하다며 거절했습니다. 그것도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하이코 또한 놀이공에 불과하다며 자위했지요. 더군다나 당신은 규칙을 무시하고, 하이코에게 커피까지 끼얹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명백히 놀이에 대한 배반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나폴레옹의 소박한 후계자라 칭합니다만, 내가 보기에 나폴레옹은 놀이꾼이라기 보다 영웅주의자였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를 어떻게 지칭하는지는 당신의 주관에 의한 것이므로,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이 말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당신이 정의한 진정한 놀이꾼이었다면, 자신이 직접 왕위에 앉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놀이에 '나폴레옹 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어쩔 수가 없는 바입니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뵈를레 변호사 및 정치가 선생. 물론 당신의 주장처럼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갈일 수도 있습니다. 그 놀이가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자신이 놀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면, 그것 없이 무료한 인생을 지속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니,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믿었지요. 그래서 당신은 놀이가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균적인 인간, 완벽한 중성을 찾아내 죽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불가피한 살해라고 이름 붙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고의적인 살해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껏 지켜 온 놀이에 대한 가치에 반할 인간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지요. 그 대상이 바로 바크날이었고, 결국 당신의 의도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 그렇다고 선생이 고루하게 여기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당신을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생이 짐작한 것처럼 이제 앞으로 존재할지 알 수 없는 '놀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인간'이 사라졌으므로 당신의 주장이 옳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더불어 나 역시 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다고 해서 저 자신이 놀이'만'을 목적으로 사는 인간은 아닙니다- 선생의 제의를 받아 들이려 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것으로 편지를 끝내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뵈를레 선생.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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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
이경윤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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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하지만 각종 문학이나 그림, 영화, 심지어는 게임에도 인용되고, 또 모티프가 될 정도로 유명한 성서를 안 읽어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성서를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결국 앞 부분만 깨작이고 말곤 했었다. 덕분에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를 보자, 기대감이 만발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이름만 들어 보았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대충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꽤 많은 도움이 되었던 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성서를 말하면서도, 전도를 전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을 망설였던 것은 성서의 내용을 알고는 싶지만, 그동안 인이 박히도록 들어 온 믿음의 권유를 책을 읽으면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자인 내게 주구장창하는 전도를 말하는 책들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괜히 고까워 하면서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에 종교서적들은 적당한 것으로 가려 읽어 왔는데, 이 책은 전도를 위해 신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어서 좋았다. 말 그대로 '상식'에 기반하여 쓰인 것이다.

 책은 저자가 가능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줄거리를 해설하는 위주로 쓰인 점이 그렇고, 정설이 아닌 설을 설명할 때에도 조심스럽게 제시한 점이 또 그렇다. 곳곳에 '성서만화경'이라는 이름으로 각주도 적절히 달아 놓았고, 성서의 내용을 모티프로 한 여러 그림들의 설명도 무난히 좋은 편이었다. 책 속에는 매우 많은 양의 그림을 실어 놓았는데, 제시되는 본문과 적절하게 배치해 놓아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구약에 비해 신약에 대한 내용이 덜 세세했던 것 같고, 그림 위에 포스트잇 모양의 박스를 넣고 그 안에 설명을 덧붙여 놓아 그림을 가린 점이다. 가끔 빈 공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사람의 얼굴 위에 박스를 넣을 때도 있어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좀 보완하면 훨씬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오타들도 몇 개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는 높은 편인 듯 하다. 무엇보다 내 궁금증을 제법 해소해 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 좋았다. 다만 성서의 내용을 꿰뚫고 있는 독자에게는 시덥잖은 책일 수 있으니, 유의하시라.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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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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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시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문학 장르가 아니다. 시인이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그렇잖겠냐만은 그 시를 읽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기에 사실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느냐, 무엇을 받아 들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문학이든 어느 책이든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중고를 거치며, 특히 한국시와 한국소설을 매우 어렵게 받아 들이고 있다. 역사학적, 작가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가장 주요하게 가르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문적인 비평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굳이 그런 관점을 통해 문학을 분석하며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 주입당해 온 교육 과정의 산물은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기에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라서 국문학도라는 명패를 자랑스레 들어, 문학을 어렵게 분석해 보려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꼭 그렇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보다는 작가의 감정, 내 느낌보다는 작가의 느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 독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읽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엮음 시집을 읽노라면 그런 의문들이 강하게 내 가슴을 치고 들어 온다.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각 시마다 안도현이 부연해 놓은 해설들을 보면, 그것은 비평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아니라 독자의 부드러운 시선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가 흔히 배워 온 것처럼 각 단락마다 소주제를 엮고, 그 소주제들을 엮어 대주제를 살피고, 서정시니 민중시니 온갖 이름을 떼어 붙이며, 연과 행을 하나하나 구분하며, 각 단어의 이미지들을 찾는 것이 아니다. 시에 동그라미를 치며 별표를 달고 색연필로 강조 표시를 칠하는 것도 아니다. 해제를 읽고 쓰고 외우는 것도 아니다. 시를 읽는 그 순간의 느낌들을 표현할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시든 소설이든 모든 것들은 그렇게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체계적인 관점과 날카로운 시선도 중요하지만, 먼저 마음에서 오는 그 감정을 꿰뚫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자에게 가장 필요한 무언가가 아닐까. 각자의 감수성만으로도 문학을 논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들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취향과 감성의 차이일 뿐이지, 누군가에게 비난받아서도 비판받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아마 나는 가장 중요한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을 볶아내어 줄 시는 적었지만, 그 마음의 차이를 새삼 깨달을 수 있어 행복했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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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의 심리학 - 감정적 협박을 이기는 심리의 기술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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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유행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즐겁게 읽고 공감했던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어떤 책이길래 그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지 궁금하여 보기는 했으나 매우 실망했다.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갖고 2/3가량 읽었을까, 마침내 포기하고 말았다. 자기계발서나 생활서적 등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읽으려 노력해도 재미가 없는 책들이 있다. 가끔 기분전환이나 다짐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읽곤 하지만, 재미가 없으니 도움은 더욱 더 되지 않는 듯 하다. 
 
 나에게는 <협박의 심리학>도 이처럼 지루한 책이었다. 몇달 전 지인에게서 권위적이거나 타인을 탓하는 말투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들은 터라 내 말투를 반성해 보자는 의미에서 읽기 시작했지만, 비슷한 케이스가 없었기에 더욱 더 실망하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피협박자의 위주로 쓰인 책이라, 협박의 심리를 다양하게 관찰할 수 없었다는 점도 아쉽다. 아니,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도대체 이 책이 이렇게까지 길어야 하는 이유가 뭐야?'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화성남자금성여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반복해 외치는 데에 기가 질린 탓이다. 사실 내가 생활 서적을 즐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감정적 협박은 '처벌형, 자해형, 피해형, 보상형 협박'등의 4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설명한다. 그리고 각각에 맞는 대처방법과 요령, 그리고 그 대처방법이 정당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그런데 이런 분류법이나 내용이 전혀 새롭지 않았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재발견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체계적인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겨우 이 네가지 분류로 261쪽을 써내려간 것은 참 대단하지만, 또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깊게 파헤치는 것도 아니고 앞서 설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장에서 예시를 들어 비슷한 내용으로 재설명하고 다음 장에서는 개념을 들어 또다시 설명하는 방법 등으로 장수를 떼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판일까.  허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류를 재미있게 읽는 독자라면, 이 책도 아주 흥미롭게 읽지 않을까 한다.

 너무 착해서 협박을 당하고도 참는 위선적인 사람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책인지 몰라도 나에게는 본전 생각나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번역에 신경을 좀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계발서나 생활서적은 대개 심도있는 번역을 하지 않는 듯 한데, 그래도 그 정도는 책으로 낼 때 가장 기본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아닌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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