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뵈를레 선생, 나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카트야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의 모멸과 수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내가 놀이에서 이기든 지든 누군가에게 시험을 당하는 생쥐같은 기분을 즐기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놀이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혹은 놀이에서 지더라도 그 자체를 즐길 수만 있다면, 놀이꾼으로서의 사명은 다한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기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술 더 떠서 때때로 패배가 자신에게 더 많은 재미와 흥미,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생이 말한 것과 달리, 선생은 그런 놀이꾼이 아닙니다. 만약 선생이 자신이 정의한 진정한 놀이꾼에 속했다면, 당신은 카트야와 그의 남동생 하이코의 놀음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놀음을 즐기고, 정해진 틀과 규칙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겠지요. 또 승산이 없는 싸움이더라도 그 놀이를 받아 들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은 승산이 없는 놀이는 시시하다며 거절했습니다. 그것도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하이코 또한 놀이공에 불과하다며 자위했지요. 더군다나 당신은 규칙을 무시하고, 하이코에게 커피까지 끼얹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명백히 놀이에 대한 배반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나폴레옹의 소박한 후계자라 칭합니다만, 내가 보기에 나폴레옹은 놀이꾼이라기 보다 영웅주의자였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를 어떻게 지칭하는지는 당신의 주관에 의한 것이므로,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이 말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당신이 정의한 진정한 놀이꾼이었다면, 자신이 직접 왕위에 앉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놀이에 '나폴레옹 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어쩔 수가 없는 바입니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뵈를레 변호사 및 정치가 선생. 물론 당신의 주장처럼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갈일 수도 있습니다. 그 놀이가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자신이 놀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면, 그것 없이 무료한 인생을 지속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니,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믿었지요. 그래서 당신은 놀이가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균적인 인간, 완벽한 중성을 찾아내 죽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불가피한 살해라고 이름 붙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고의적인 살해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껏 지켜 온 놀이에 대한 가치에 반할 인간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지요. 그 대상이 바로 바크날이었고, 결국 당신의 의도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 그렇다고 선생이 고루하게 여기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당신을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생이 짐작한 것처럼 이제 앞으로 존재할지 알 수 없는 '놀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인간'이 사라졌으므로 당신의 주장이 옳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더불어 나 역시 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다고 해서 저 자신이 놀이'만'을 목적으로 사는 인간은 아닙니다- 선생의 제의를 받아 들이려 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것으로 편지를 끝내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뵈를레 선생.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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