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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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영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은 교황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하여 얻어간 기술"이라는 앨 고어의 발언을 통해 이 소설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품이 아닌 조선에서 배운 것이라는 전 미국 부통령의 말이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역사를 파헤쳐 보지만 역시나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역사적 미싱링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다. 오세영은 그 고리를 조선 주자소의 야장, 석주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재생한다.

 소설은 줄곧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탄탄한 줄거리와 사건의 연속,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정신차릴 틈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든다. 대개의 사건 또한 필연적인 구조를 갖고 진행되지만, 아쉽게도 그 사건의 실마리는 너무나 우연적이었다. 사건을 해결할 주요한 열쇠가 뻔하고 우연적으로 보인다면, 플롯 자체가 기우뚱하게 된다. 이는 복선이 부재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로 보인다. 어쩌면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 전개 도중에 홀연히 나타난 열쇠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나타나는 탓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는 이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잡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전작에서 보였던 부족점도 눈에 띈다. 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오세영은 그가 창조한 대개의 인물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처 풀어 놓지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황급히 헤치느라 그럴 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 속의 석주원은 심성이 너그러워 모든 인물들에게 호의를 갖고 대하지만, 작가인 오세영은 그럴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손끝에서 묻어 나는 석주원의 배려심은 오히려 성급해 보일 지경이다. 도대체 그가 왜 그런 끝도 없는 선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오세영은 그에 대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석주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 그의 이야기는 풍덩 빠질 수 밖에 없는 재미가 있다. 너울쳐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쉼없이 주워 담느라 정신없이 헤엄치려면 풍덩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르네상스를 이끈 금속활자가 조선의 아들 석주원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가. 더불어 잃어버린 우리의 자존심, 금속활자를 되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또 얼마나 가상한가. 이러한 이야기를 창조한 오세영의 상상력과 역사의식에 갈채를 보내야 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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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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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을 위한 9장의 매직카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 책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라면 꼭 봐야 할 바이블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어령은 늘 그래왔듯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있었다. 또 늘 그가 강조해 오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창의성이다. 대상을 비틀어 보고, 비틀어 생각하고, 또 비틀어 답을 제시하기를 요청한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한 9장의 매직카드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그처럼 익숙한 것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바라고 있다.

 그의 생각처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틀에 갇혀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창조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들어 익숙한 것을 틀어 보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9장의 매직카드를 통한 이야기는 식상한 감이 있다. 어째서 이토록 흔한 것을 들어 창의성을 말하려 했을까. 대중매체나 일상행활을 통해서 이미 접할 수 있었던 매직카드의 대상들은 단지 그것들의 그림자인 것은 아닐까. 단순히 대학생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쓰기 위해, 조금이나마 덜 식상하게 표현하기 위한 재료는 아닐까. 그런 의문이 파고 든다. 

 이런 흔한 재료와 방식을 차용한 것은 앞서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이색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사고들은 무無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미 있던 것들, 즉 유有에서 무언가를 비틀어 바꾼 것들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창조성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인식을 바탕에 두고 보더라도 약간의 식상함에 실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은 지나친 일반화, 유머스러운 억지가 가미되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허나 분명 귀한 단어와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의 향연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끝없는 호기심과 거침없는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지식과 진리를 찾아 낼 수 있어야 한다. 또 이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어령은 젊은이들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혹은 특권처럼 발휘할 수 있어야 할 이 무기들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무엇이든 부딪혀 보라는 말이다.

 가자.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 조금만 더 비스듬하게, 혹은 돌아서. 누군가 가르쳐 주는 길을 따라 무작정 직선적으로 나간다면, 획일적인 사고로 무장한 채 어느 기계의 부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확실하더라도 내가 직접 숙고한 길을 따라라. 이 또한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닐 터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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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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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조국을 등지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설움이 가득한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허나 초반부를 지나자 흐름은 칙릿에 가까워 졌고,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마냥 떨어지지는 않은 듯 싶다. 한인 1.5세대여서 일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전연 없고 명문대졸 실업자로서의 삶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위치, 한편으로는 20대 초중반 여성으로서의 입지에 대한 고뇌가 가득하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잘 그려져 있다. 그가 마냥 한인으로서만 살 수는 없듯 마냥 한 문제에 초점을 두고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 케이시의 사랑, 돈, 직업, 정체성, 행복, 성공, 좌절에 대한 성찰은 지극히 그다운 시각으로 쓰인다. 저자 이민진의 자서전적인 소설이기에 그가 겪은 삶에 대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잘히 읊고 있는 듯 보인다. 다만 그것은 이 소설의 일면일 뿐이다. 처음 칙릿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지나치게 사건 위주의 서사가 껄끄러웠고, 미국에 대한 현실에 대한 단면만을 바라 보는 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3인칭을 사용하면서도 전지적인 작자의 참견이 지나쳤고, 한 쪽으로 기울어진 편견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불만은 일독하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30년 전에나 인기를 끌었을 법한 소설 기법과 문체, 흐름 등도 거슬리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단점 속에서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만은 놓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사회가 여성이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위 미, 사랑, 지성, 재능 등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저는 그런 문제를 천착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는데, 방대한 분량 속에서도 그 주제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눈에 선하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다만 그것이었다면, 이 소설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허나 그 와중에 케이시가 자신의 삶을 전개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는 똑똑하고 예쁘며,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20대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을 지나친 난해함으로 범벅해 놓았다. 그가 집을 뛰쳐 나가는 과정, 사랑을 찾아 가는 과정, 직업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감정과 사고를 통해 풀어 나간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은 다만 이야기를 끌어 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을 뿐, 그 많은 이야기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특히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기 어렵다. 더불어 삶의 일면만 부풀리는 수법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다. 그렇잖아도 한국인을 비뚤게 보는 미국인들을 독자로 하고 있으면서 케이시의 아버지를 꼭 그런 폭력적인 인물로 그려야 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케이시가 제이와 헤어질 때 내세웠던 명분을 보면, 신념이 뚜렷하고 똑똑한 젊은 여성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보면, 그것이 저자 자신에게는 '현실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이민문학의 전형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보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적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문제와 고뇌들이고, 더구나 앞으로는 그러한 유사성의 요인에 의해 동질적인 감성을 공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기법에 대해서는 시원찮게 여기고 있지만, 나 역시 그의 감성을 전연 공감하지 못 했다고는 말 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러니 이민진의 삶, 케이시의 삶, 그리고 나의 삶, 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어찌 참견할 수 있으랴.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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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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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는 한 권의 따뜻한 동화다. 다친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앵무새 루이지토와 노부인 안셀마와의 우정과 사랑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외로운 안셀마에게 날아든 루이지토와의 대화는 정말이지 따뜻하고, 또 뭉클한 감동을 안겨 준다. 이런 흔한 이야기 속에서도 따뜻한 감동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수산나 타마로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전작 <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로 적잖은 실망을 했던 내게,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는 감동뿐 아니라 수산나 타마로를 재평가 하게 된 계기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안셀마는 루이지토로 인해 삶을 다시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채색하도록 만든다. 죽은 남편이 싫어한 탓에 잊어야 했던 옛 취미를 되찾고,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루이지토가 고맙다. 흥취에 젖은 안셀마를 위해 재잘대는 루이지토가 내게도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는데, 안셀마의 삶이 그토록 고달팠던 것이 꼭 내 탓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피해자인 것 마냥 서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부자간의 언쟁 속에서 불효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며 괴로웠던 것이다. 또 그 모든 것을 되풀이 당할 나를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해진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했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뿐 아니라 진정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도 똑똑히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루이지토와 헤어지게 된 안셀마는 루이지토를 만나러 먼 걸음을 한다. 자신과의 헤어짐을 괴로워 하는 것처럼 벌거숭이가 된 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병든 루이지토를 보며, 안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 "치료약은 사랑밖에 없어요. 사랑만이 병을 낫게 한다구요!" (128쪽)

 찌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며 절실히 외치는 안셀마를 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럽기까지 하다. 곧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의 노인이 외치는 삶의 진리는 마음 속에 깊이 와닿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진실 어린 모습을 철없는 행동이라고 비웃을 만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그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싶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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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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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란 무엇일까. 우리는 신화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탐구하고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마치 역사나 철학처럼 말이다. 신화란 곧 인간의 정신적·철학적인 역사와 다를 바 없기에, 신화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새로운 신화다. 앤시아의 말처럼 신화가 집단 무의식에서 출현한 것이든 이익집단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진 것이든 간에 이 책은 새로운 신화다. 그리고 곧 반신화적이다. 이를테면 퓨어사(社)에서 물을 파는 것과 같은 혹은 날씬할수록 아름답다는 것과 같은 신화를 거부한다. 그것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대신한 외침과 같다.
 

 작가 알리 스미스는 릴리언 렌튼의 생애와 이피스 신화를 조금씩 각색하여, 전 세계의 소외당한 여성을 위하고 물의 정치학을 논한다. 이 짧은 소설 속에서 지극히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앤시아와 로빈 즉 이안테와 이피스는 자연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상을, 키스와 노먼, 도미닉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상을, 이모겐과 폴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중적인 인간상을 나타낸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제각각 역할을 다하며 소설을 이끌어 간다.

 

 이때 버닝 릴리가 던졌던 돌을 앤시아에게 꼭 쥐어 주는 할아버지를 통해, 소설의 내용이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할아버지 또한 이피스처럼 소녀/소년이라는 점에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더욱 더 맞물린다. 결국 인간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이 갈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물처럼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비슷한 소재들이 맞물리는 모습을 통해, 소녀이기도 하고 소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녀도 소년도 아닌, 모든 것이지만 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할아버지가 말해 주었던 이야기, 특히 버닝 릴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피스를 미리 예견하고 있다는 점은 재미를 더한다. 이 이야기를 또 어떤 방법으로 소화시킬 것인지, 또 이피스와 이안테를 어떤 이야기로 해설하고 둔갑시켜 재연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런 복잡함이 이 소설을 읽는 데 어려움을 가져 올런지도 모르겠다. 각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수월하지만, 그것을 전체로 묶어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나 또한 처음 읽었을 때는 애매했던 부분들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마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런지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무 일도 아니었고, 또는 모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또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앤시아나 이모겐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었던 깨달음을 물처럼 순순히 받아 들였듯 말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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