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조국을 등지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설움이 가득한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허나 초반부를 지나자 흐름은 칙릿에 가까워 졌고,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마냥 떨어지지는 않은 듯 싶다. 한인 1.5세대여서 일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전연 없고 명문대졸 실업자로서의 삶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위치, 한편으로는 20대 초중반 여성으로서의 입지에 대한 고뇌가 가득하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잘 그려져 있다. 그가 마냥 한인으로서만 살 수는 없듯 마냥 한 문제에 초점을 두고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 케이시의 사랑, 돈, 직업, 정체성, 행복, 성공, 좌절에 대한 성찰은 지극히 그다운 시각으로 쓰인다. 저자 이민진의 자서전적인 소설이기에 그가 겪은 삶에 대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잘히 읊고 있는 듯 보인다. 다만 그것은 이 소설의 일면일 뿐이다. 처음 칙릿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지나치게 사건 위주의 서사가 껄끄러웠고, 미국에 대한 현실에 대한 단면만을 바라 보는 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3인칭을 사용하면서도 전지적인 작자의 참견이 지나쳤고, 한 쪽으로 기울어진 편견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불만은 일독하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30년 전에나 인기를 끌었을 법한 소설 기법과 문체, 흐름 등도 거슬리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단점 속에서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만은 놓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사회가 여성이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위 미, 사랑, 지성, 재능 등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저는 그런 문제를 천착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는데, 방대한 분량 속에서도 그 주제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눈에 선하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다만 그것이었다면, 이 소설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허나 그 와중에 케이시가 자신의 삶을 전개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는 똑똑하고 예쁘며,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20대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을 지나친 난해함으로 범벅해 놓았다. 그가 집을 뛰쳐 나가는 과정, 사랑을 찾아 가는 과정, 직업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감정과 사고를 통해 풀어 나간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은 다만 이야기를 끌어 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을 뿐, 그 많은 이야기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특히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기 어렵다. 더불어 삶의 일면만 부풀리는 수법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다. 그렇잖아도 한국인을 비뚤게 보는 미국인들을 독자로 하고 있으면서 케이시의 아버지를 꼭 그런 폭력적인 인물로 그려야 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케이시가 제이와 헤어질 때 내세웠던 명분을 보면, 신념이 뚜렷하고 똑똑한 젊은 여성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보면, 그것이 저자 자신에게는 '현실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이민문학의 전형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보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적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문제와 고뇌들이고, 더구나 앞으로는 그러한 유사성의 요인에 의해 동질적인 감성을 공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기법에 대해서는 시원찮게 여기고 있지만, 나 역시 그의 감성을 전연 공감하지 못 했다고는 말 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러니 이민진의 삶, 케이시의 삶, 그리고 나의 삶, 그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어찌 참견할 수 있으랴.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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