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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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란 무엇일까. 우리는 신화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탐구하고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마치 역사나 철학처럼 말이다. 신화란 곧 인간의 정신적·철학적인 역사와 다를 바 없기에, 신화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새로운 신화다. 앤시아의 말처럼 신화가 집단 무의식에서 출현한 것이든 이익집단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진 것이든 간에 이 책은 새로운 신화다. 그리고 곧 반신화적이다. 이를테면 퓨어사(社)에서 물을 파는 것과 같은 혹은 날씬할수록 아름답다는 것과 같은 신화를 거부한다. 그것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대신한 외침과 같다.
 

 작가 알리 스미스는 릴리언 렌튼의 생애와 이피스 신화를 조금씩 각색하여, 전 세계의 소외당한 여성을 위하고 물의 정치학을 논한다. 이 짧은 소설 속에서 지극히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앤시아와 로빈 즉 이안테와 이피스는 자연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상을, 키스와 노먼, 도미닉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상을, 이모겐과 폴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중적인 인간상을 나타낸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제각각 역할을 다하며 소설을 이끌어 간다.

 

 이때 버닝 릴리가 던졌던 돌을 앤시아에게 꼭 쥐어 주는 할아버지를 통해, 소설의 내용이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할아버지 또한 이피스처럼 소녀/소년이라는 점에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더욱 더 맞물린다. 결국 인간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이 갈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물처럼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비슷한 소재들이 맞물리는 모습을 통해, 소녀이기도 하고 소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녀도 소년도 아닌, 모든 것이지만 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할아버지가 말해 주었던 이야기, 특히 버닝 릴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피스를 미리 예견하고 있다는 점은 재미를 더한다. 이 이야기를 또 어떤 방법으로 소화시킬 것인지, 또 이피스와 이안테를 어떤 이야기로 해설하고 둔갑시켜 재연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런 복잡함이 이 소설을 읽는 데 어려움을 가져 올런지도 모르겠다. 각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수월하지만, 그것을 전체로 묶어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나 또한 처음 읽었을 때는 애매했던 부분들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마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런지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무 일도 아니었고, 또는 모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또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앤시아나 이모겐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었던 깨달음을 물처럼 순순히 받아 들였듯 말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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