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 당신은 이 작품을 픽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논픽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8쪽)

 픽션이란 허구다. 즉 상상하여 창조한 것이다. 논픽션이라는 것은 허구가 아닌 것이다. 즉 상상해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큐멘터리를 들 수 있겠다. 허나 이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진실로, 온전히, 픽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실화라 하면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고 믿지만, 그 실화란 것은 기억에서 나온다. 인간의 기억이란 온전치 못할 수밖에 없다. 사실에는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 허나 기억이라는 것은, 그리고 기록이라는 것은 주관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의 한계에 대해 고찰해 보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기억과 기록은 매우 주관적이다. 사람들이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 또한 모두 개인의 주관들이 겹치는 부분들 중 통상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단지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통칭하는 게 그 단어일 뿐이듯 논픽션으로 보이는 것을 통칭하는 게 그 단어일 뿐이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개념이란 것은 결국 실재하는 것의 한계를 넘는 것까지 지칭하게 된다. 이것은 언어의 한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 아무리 현재형으로 쓰거나 말하거나 해도 결국 그 말을 뱉는 순간 현재형은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후루카와 히데오는 이런 철학적 물음을 건네면서 <벨카, 짖지 않는가>를 시작한다. 동시에 매우 객관적인 척, 마치 역사를 기록하듯 서술한다. 사람들이 흔히 문학에서 기대하는 수사적인 문구, 미학적인 묘사들을 절제한다. 그저 단순히 기록하는, 그러니까 사관인 체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말기인 태평양전쟁에서, 21세기의 체첸 항쟁까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개를 통해, 개의 눈을 빌려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개인 척 하는 것일 뿐, 개가 직접 말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신적인 입장에서 개를 통해 본다, 말한다, 기록한다, 그것이 전부다. 급변하는 상황을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표현한다.

 책 표지의 소개글은 개의 눈을 통해 인간을 비판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개가 보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혹자는 개가 인간에게 희생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말하곤 하지만, 개들에게 물어 보았는가. 개가 인간에게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후루카와는 상상한다. 그는 신적인 위치에서 개에게 묻고, 또 그들의 입장을 설명하지만,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인간이 신인 척 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묻는다. 결국 모든 것은 픽션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픽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그것을 알고, 절망하는 수밖에 없는가. 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픽션 속에 사는구나, 라고 말이다. 글쎄, 그건 당신의 몫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관론자들이 있지만, 그만큼의 낙관론자도 존재하며,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처럼 독특한 픽션도 존재하는 것 아닌가.

 단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본의 아니게 지구를 벗어난 첫 생물이 되어버린 라이카를 말이다. 그는 끝이 없는 것마냥 펼쳐진 우주의 별빛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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