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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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라 하면 퍼뜩 '괴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언론에 호도된 바도 없잖아 있지만, 그의 글을 접하면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된다. 그는 진정 괴짜다. 한글을 사랑한다면서도 시덥잖은 인터넷 용어를 남발하고, 악플을 사양하면서도 악의가 가득한 글을 쓰곤 하며, 개념 탑재를 요청하면서도 일반적인 개념에 조롱을 퍼붓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즐!'을 외칠 때면, 내 입에선 '헐!'이 나온다. 하악하악.

 <하악하악>의 부제는 '이외수의 생존법'이다. 그가 지금껏 쌓아 온 개념을 바탕으로 삶에 대처하는 자세를 선보인다. 똥파리를 거부하고 야동을 사랑하는 이외수는 소설가이고 예술가이기에, 그의 생존법은 소설적이고 또 예술적이다. 그가 비판이라 일컫는 비난도 어찌나 예술적인지 모른다. 하악하악.

- 세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사람이다. (15쪽)

 나는 묻는다. 당신도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를. 그는 너무나 단정적이다. 심지어는 위와 같은 글줄을 써내려가면서도 너무나 단정적이다. 그래, 물론 통쾌하다. 그러니 당신처럼 나도 의구심이 든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 이런 글줄은 무섭다. 자신만 옳다는 사람을 비판하는 건 좋지만, 당신의 자세도 그렇게 보인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얼핏 보기에는 열려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닫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탓이다.

- 남을 비난하고 싶은가. 그러면 그 비난을 자신에게 한 번 적용시켜 보라. 해당되는 부분이 있는가. 있다면 정작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일지도 모른다. (234쪽)

 이렇게도 말한 당신이기에, 나의 무서움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때때로 거북살스럽고, 인상을 찌푸렸노라고 고백할테니 말이다. 반면 피식거리며 웃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고, 그토록 강경한 철옹성을 둘러싼 당신이더라도 공감한 바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혹여라도 당신이 이 글을 보더라도 <하악하악2>를 출간하여 나를 쓰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럼 내가 정말 '대략 난감'하고 '캐안습'할 테니까. 그럼 당신도 '즐!'하시길 바라며, 이만.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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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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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해설을 보면, 저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울컥한다고 했다. 시 해설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탓에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 그 문장을 한참이고 들여다 본다. 나, 정말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울컥하곤 했다. 울컥하기도 하고 너무나 서글퍼서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런 내 마음과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갑자기 정성을 다해서 읽게 됐다. 동지를 만난 기분이랄까. 

 <애송시 100편>은 시인 100명에서 10편씩 추천을 의뢰해 그 중 2편 이상 추천한 시인 89명과 1회 추천 시인 가운데 11명을 추가해 100명의 시인을 확정한 후, 시인마다 1편씩 소개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서정주 시인이 62회의 추천으로 1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서정주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다만 그의 시 중에서 '추천사'와 '자화상'을 가장 좋아하는데, 저자는 '동천'을 선정했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동천'도 좋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선정된 시들은 대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전적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한 번쯤은 접해봤을 법한 유명한 시이다. 그만큼 검증 받은 시들이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그만큼 대중적이고 누구나 애송할 수 있는 시집이라는 의미도 되겠다. 책 제목과 딱 맞아 떨어진다. 나 또한 평소 좋아하던 시들을 새로운 기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허나 사실 나는 이 시, 저 시를 끌어다 모은 엮음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카가와 유스케가 <클래식 50>에서 말한 것처럼, 스포츠를 생중계로 보지 않고 뉴스 시간에 하이라이트만 보는 것과 엇비슷한 기분이 드는 탓이다. 음반이든 시집이든 소설집이든 대표작들만 모아 놓은 것들은 딱 질색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말이지 그 중간 과정은 다 생략하고 결과만 보는 기분이다. 멋지게 골인하는 순간만 보아서는 재미가 반감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송시 100편>은 꽤 괜찮았다. 이런 시집도 가끔은 읽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몰랐거나 의외로 새로 발견하는 되는 묘미가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해설도 썩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109쪽 두 번째 줄에 'ㅎㅎㅎ 흩어져'에서 'ㅎㅎㅎ'는 오타겠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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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6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2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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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다. 끝. 

 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예의범절에서 꽤나 어긋나 있는 글줄이기에 다른 말들을 찾아 본다. 사실 성장소설이란 왠만큼 나쁘지 않은 이상 재밌다. 그럴 수밖에. 소년이 보아도 재밌고, 청년이, 장년이, 노년이 봐도 재밌을 수밖에 없다. 동화 읽을 나이가 지났다면, 소년도 청년도 장년도 노년도 누구나 겪고 있거나 겪었던 시절에 관한,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시절의 감정과 삶을 담은 이야기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보더라도 이 책, 이 녀석들 너무나 재밌다. 뭐랄까, 괜히 부러운 마음도 든다.

 그때 그 무렵의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돌아 본다. 아, 그러고 보니 나 그때 뭘 했지. 이 녀석들처럼 무언가에 미쳐서, 정말 거기에 미쳐서, 그게 너무 좋아서 다른 것들은 전혀 생각치 않고 살아본 적이 있었나. 고백하자면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다. 다른 것들은 내버려 두고 않고, 짧더라도 그 인생 전부를 걸고 전력으로 질주한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난 거의 일 년을 주기로 관심사가 바뀌면서 무언가 다른 것들을 조금씩 훑어 보며 지났던 것 같다. 딱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첫사랑과 결혼한 것처럼, 여러 경험 없이 먼저 마주한 하나만 바라보고 거기에 푹 빠져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기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미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부럽다.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좋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내게도 나타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마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라도 되는 듯이,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야구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어린 나이에 이미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다쿠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쳐 있는 이 녀석들을 보니, 나도 몸이 근질근질하다. 빨리 빨리, 어서 어서 나만의 것을 갖고 싶은 기분이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전력 질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꼬부랑 노인이 되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 졌다. 

 처음 <배터리>라는 제목과 야구하는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소개를 접하고는 우정과 감동이 넘쳐서 폴짝 뛸 것 같은 책이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배터리가 단순히 건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힘이 되어주는 친구를 말하는 거구나, 라고 짐작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배터리가 투수와 포수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왠지 민망했다. 야구 용어로서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늘 쓰고 접하는 배터리, 라는 단어에 그런 생경한 뜻도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이렇게 나처럼 야구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도 읽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야구라고는 치고 달린다는 것밖에 모르고, 박찬호 야구 중계를 몇 번 본 것이 전부인 내가 봐도 흥미진진하다. 야구가 어떤 건지 일일히 설명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야구에 미쳐있는 녀석들이 중요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본 서평을 접하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고하노니 일단 읽어 보시라.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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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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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도 클래식을 즐겨 듣는 편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더욱 그랬다. 책을 읽는 동안 소개되는 곡을 모두 다 찾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량을 들으며 읽었다. 물론 그 중에는 지금도 익히 듣고 있는 곡도 있었고, 잊고 있다가 새로 찾아 들으며 다시 한 번 감상에 빠져들게 된 곡도 있었다. 특히 바흐는 매우 유명하지만, 내게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작곡가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아 들은 몇몇 곡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책은 명곡 위주로 소개되고 있는데, 입문자에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곡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에는 딱 맞다. 누구나 처음 클래식에 맛을 들일 때면 거쳐가게 되는 관문같은 곡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서 '반드시' 입문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대중가요를 들으며 마음에 든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 그 가수의 음반을 사서 듣고, 그 가수가 이전에는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또 그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이 곡은 누가 쓴 곡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클래식도 그렇게 들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가장 처음 사주신 음반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었는데, CD가 아닌 테이프였다. 그런데 이제 막 가요를 들으며 꽃미남 가수에 매혹되던 시절이었기에 흉악하게 생긴 범죄자 인상의 베토벤의 얼굴부터가 마음에 들리 없었다. 오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돌리자 빠바바밤,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서부터가 또 고역이었다. 학교 음악 시간이나 TV의 특선 고전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나 들었을 법한 노래를 다 듣기는 너무나 곤혹스러웠다. 아버지까지 미웠다. 가요 음반을 사달라고 했는데, 들어봐야 한다며 클래식 음반을 사다 줬으니 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테이프는 FM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가요들을 녹음하는 데 희생되고 말았다. 오, 통재라. 아버지는 어느날 그 사실을 알고는 혀를 차시면서, 다시는 클래식 음반을 사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결국 다음부터는 내 소원대로 가요 음반을 가끔씩 사다 주시곤 했다. 내가 이긴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공테이프도 아닌데 거기다 다른 곡을 녹음한 철없는 행동도 행동이지만, 가뜩이나 가요 음반보다 비싼 클래식 음반이 내 무지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아까워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나 클래식을 싫어 했던 내가 요즘은 더 좋은 음반, 혹은 모르고 있던 음반을 찾아 헤매곤 한다.

 그러던 와중에 몇몇 책들은 접하며 원하던 정보들을 찾을 때는 어찌나 기쁜지 모른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 물론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책의 저자가 일본인인데, 갑자기 강원도 두메 산골을 비유하는 등의 만행이 나올 때면 이것이 정말 원본에 있었던 것인지 옮긴이의 재량에 의한 것인지 당황스럽다. 옮긴이의 재량이라면, 다른 예시들도 모두 한국적으로 바꾸었어야 할 터인데 또 그런 것은 아니라서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종종 설명하면서 들었던 예시는 물론이고, 우리나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면 이해도 되지 않고 이입도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만 개선한다면, 더욱 좋은 책이었으리라 싶다. 사진이나 그림, 악보 등이 이해를 돕고, 몰입하기도 쉽게 하며, 모르고 있었던 정보도 얻게 되어 나름대로 즐거웠던 책인 탓이다. 다만 명곡 위주로는 이미 마스터했다고 자부한 이들이라면, 이 책은 살짝 넘기고 좀더 심도있는 책을 붙잡기 바란다. 아직 입문자 티를 깨끗이 벗지 못한 나로서도 새로운 정보는 종종 발견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작곡가나 새로운 곡은 알지 못해서 약간 아쉽기도 했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하차투리안의 왈츠와 갈롭(프랑스 춤곡)을 듣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곡가는 아니지만, 클래식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고전파의 얌전한 이미지보다는 자신의 색이 분명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곡들을 작곡한 사람이다.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와 동시대 동지역 인물인데, 그냥 음악만 듣다보면 이 곡에 대한 정보나 작곡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인터넷에서는 금세 찾지 못하는 정보, 좀더 심도 깊은 정보를 원할 때면 아쉽고, 그래서 이런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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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발소 1
하일권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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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인터넷을 한다면, 여기저기서 웹툰을 자주 접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들고, 서로 보기 때문일까. 저자처럼 전업작가를 목적으로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이 툰을 그리는 경우도 다분하다.  웹툰의 소재는 지금껏 나왔던 '작가들의 만화'와는 달리 주제나 소재도 다양하고, 좀더 특색있다. 아마 이것이 프로슈머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터넷의 속성상 상호작용이 빠르기 때문에, 독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쉽다. 물론 인기를 끌면 대개 단행본을 내곤 하지만 말이다. 하일권의 <삼봉 이발소>도 그런 책이다. 웹툰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만화책으로 출판한 케이스인 것이다. 그래서 흥미면에서는 보증수표를 갖고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닐성 싶다. 
 
 <삼봉 이발소>는 '외모 바이러스'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던지는 위트가 남다르다. 바이러스라는 개념을 도입해 개성도 있고, 심각한 내용을 쉽고 재밌게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도 돋보인다. 허나 내용이 단순히 웃기지만은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외모 바이러스에 걸린 그네들의 삶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인 탓이다. 외모뿐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과 비교할 때 느껴지는 분노나 절망 등도 만만찮은데,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으로 평가 받는다는 건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책의 띠지에 "너무 불공평해.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반이 결정되어 있잖아."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를 이용한다고 해도 원판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허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이것 뿐만은 아니다. 외모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데 갖은 힘을 쓰는 삼봉이가 자신을 예쁘게 만들어 달라며 찾아 온 장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예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야? 하하, 진짜 어이없네. 야, 너 혼자서 무슨 노력은 해봤어? 그 병신 같은 안경이라도 바꿔 볼 생각은 해봤냐고?(159쪽)"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얼굴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만 탓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누구나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박한 문제라면 조금의 노력이라도 기울여 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주눅들어 괴로워 하기만 한다면, 평생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자신조차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사회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치 않다고 여겨진다면, 다른 일에 열정을 쏟으면 그뿐 아닌가. 그런데 <삼봉 이발소>의 등장인물들은 외모만 탓하며,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며 비관하기만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문제는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외모만 탓하며, 다른 일까지 내팽겨치지는 않는다. 그 점이 꽤나 안타까웠다. 타고난 외모로 인해 인생의 반이 이미 황폐해졌다고 절망하기 전에, 외모가 인생의 반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게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자신조차 그것에 물들어 있거나,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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