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45 - 사랑의 증표
소라치 히테아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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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책방을 갔는데 은혼(銀魂)이 떡하니 눈에 보이더군요. 오랜만에 44권, 45권을 잡아서 빌려봤는데 읽는 내내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번으로 부족해서 세번, 네번을 다시 읽어봤네요.

 381화. <선물은 일찌감치>로 시작된 44권 초반의 여전한 코믹 액션도 좋았습니다만 386화. <역 경국지색>부터 45권 마지막 399화. <기울지 않는 달>까지 이어진 오랜만의 진지한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벌써 연재한지 9년이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넘치는 센스를 보여주며 깨알같은 드립으로 처음부터 터지게 만드는 은혼(銀魂) 특유의 코믹 액션을 보며 소라치 히데아키(空知英秋) 작가의 대단한 테크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늙은 유녀의 부탁으로 시작된 사건에 소요의 제자들이 담긴, 은혼의 거대한 스토리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랜만의 양이 과거편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마지막의 깡통차기 장면입니다. 깡통차기로 시작해서 깡통차기로 끝나는 이번 이야기. 여타 만화였다면 웃겼어야 할 장면이 감동으로 다가오는게 은혼(銀魂)의 매력이 아닐까싶네요. 그리고 그 장면에서 마루 밑에 숨어 "어? 깡통차기는?"이라고 중얼거리는 이사부로ㅋㅋ. 미처 놓치고 지나갈법한 깨알같은 부분에서 감탄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커서 이 속도로 진행되다가는 언제쯤 떡밥이 모두 풀릴지 상상이 되지 않네요. 아마 100권은 넘어야 할 것 같은데... 하여간 여전한 코믹물에 화려한 액션, 그리고 그것들로 만들어내는 좋은 이야기를 담은 은혼(銀魂)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만화책입니다.


 2012. 12. 1.

 다시 생각해보니 은혼 44, 45권에서 과거에 나왔었던 엑스트라 캐릭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했다는걸 깨닫고 오싹해졌습니다. 예전에 "어떤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냐?"는 독자의 질문에 "주기가 있지만 모든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이전에 나왔었는데 최근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언제쯤 등장시켜 구해줘야할까 항상 고민합니다."라고 소라치 작가가 말한적이 있었는데 애독하고 있던 독자조차도 잊어버린 엑스트라들을 다시 등장시키네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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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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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옥상미사일(屋上ミサイル)>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접하게 된 야마시타 타카미츠(山下貴光)는 2008년 이 책으로 제7회 『이 미스테리가 대단해!(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대상을 수상하며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고있는 작가이다. "고민하는 세대를 위한 글을 쓰고싶다. 그들에게 친구나 인간관계를 통해 얻게되는 것은 무엇인가. 고뇌하는 세대에게 친구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해주고 싶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청춘'이다."라고 말한다. 옥상미사일(屋上ミサイル)에서는 그가 말한 그대로가 책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일본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보다
'옥상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제7회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옥상을 사랑하는 고등학생들의 상큼하고 유쾌한 청춘 미스터리물이다. 우연히 옥상에 모인 네 명의 고등학생들은 ‘옥상부’를 결성하고 평화로운 옥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상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이 특별하고 활기차게 그려진다. 작가는 옥상을 사랑하는 4인방 인물들을 그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극중 와이드쇼 출연자인 콘도의 입을 빌려 미국의, 그리고 일본의 사회와 정치세력들을 향해 일침을 놓는 사회 비판의 목소리까지 담아냈다.

미술 과제를 위해 옥상에 올라간 츠지오 아카네는 그곳에서 기묘한 세 명의 남학생을 만나 ‘옥상부’를 결성한다. 옥상의 안전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옥상부에 의문의 시체 사진과 총이 반입된 것을 계기로 그들의 옥상 지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죄를 심판하는 벌신님, 육상부 마돈나를 뒤쫓는 수수께끼의 스토커 사건, 아카네 동생 의문의 폭행 사건 등,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사랑해 마지않는 옥상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이 미스테리가 대단해!(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대상을 수상한 것과 다르게 미스테리의 성향이 굉장히 옅게 느껴졌다. 츠지오 아카네라는 여주인공이 옥상에서 개성적인 세명의 등장인물들을 만나 결성하게된 '옥상부'의 활동을 하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그 사건이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면서 큰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일련의 이야기는 미스테리 소설이라기보다 청춘물이라고 느껴졌다. 츠지오 아카네가 만나게 된 쿠니시게 요시토, 사와키 준노스케, 히라하라 케이타라는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상큼하면서도 유쾌한 청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했다.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하면 발 아래에 암운이 깔린 듯 어두우면서도 충격적인 반전과 스릴러가 생각나는데 미스테리 소설이 이렇게 밝고 활기찰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 작품이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곂쳐서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게 된 자잘한 사건들이 만들어낸 큰 흐름과 그 속에서 인기평론가 '콘도'의 입을 빌려 TV안에서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에 대해 떠들고 이야기하며 마지막에는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해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분이 인상깊다. 작가가 직접 말했듯이 청춘과 고뇌하는 세대들에게 말하고자하는 것을 테러리스트의 위협속에 금방이라도 미사일이 떨어질 것 같은 일본을 배경으로 그려냈다.
 우연히 겹쳐져서 사건이 한 곳에 모인다는 이야기인지라 사건을 해결하는데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는게 아쉽고 다른 미스테리 소설에 비해 스릴감이 부족하여 중간중간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신선함에 비해 큰 재미를 얻지 못했다. 미스테리의 경향이 연한지라 일반 미스테리를 읽으려고 한다면 비추천.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친숙한 독자라면 평범하게 읽을 수 있겠다.

 사실 이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사건들을 보고있자면 『이 미스테리가 대단해!(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대상보다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해!(このライトノベルがすごい!)』대상이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주연들 이외에도 주인공들의 가족이나 애처가 킬러, 열혈 평론가 콘도 등의 개성 만점의 등장 인물들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올해 5월에는 후속작도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정발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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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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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TH>로 시작했고 얼마 전 <ZOO>로 접하게 된 오츠이치(乙一)이지만 사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범작을 뽑아내는 작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바꾸게 만든것이 2001년에 간행한 이 <암흑동화(暗黑童話)>라는 작품이다.

16세의 나이에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로 데뷔한 이래 출간하는 작품마다 '상상을 불허하는', '유래 없는'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닌 천재 작가 오츠이치의 첫 장편소설. 문장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상미가 느껴지는 필치, 공포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애수가 깃든 감수성으로 정평이 난 젊은 작가가 이번에는 공포와 함께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유래 없는 ‘동화’로 우리 곁을 찾는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쇼크로 기억과 왼쪽 눈을 잃어버린 여고생 나미는 반의 중심이었던 예전과 달리 학교에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는 한편, 사랑받아야 마땅한 어머니에게서조차 완전한 타인으로 취급받는다. 그녀는 망가진 외모를 회복하기 위해 이식 수술을 받게 되는데, 새로 얻은 눈은 놀라운 영상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던 나미는 새로운 왼쪽 눈동자가 떠올리는 놀라운 풍경에 전율하며 빠져드는데….

 이전 <GOTH>나 <ZOO>의 몇몇 단편에서도 생각했지만 오츠이치(乙一)는 단순히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소재를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다. <GOTH>, <ZOO>에서도 느꼈지만 이번 <암흑동화(暗黑童話)>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로테스크한 소재와 싸이코패스, 어두움을 다루고 있으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단순히 호러 소설이라는 느낌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초반에는 <암흑동화(暗黑童話)>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루하고 무언가 식상하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면 이 이야기는 너무나 달라진다. 기억 상실을 단순히 '기억을 잃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과 일그러진 현실에서 고통받는 주인공 나미와 '나와 다른 나'를 맛있게 표현한 오츠이치(乙一)의 색다른 심리 묘사가 좋다. <눈의 기억>이라는 소설 속 소설로 표현한 범인의 심리 묘사나 표현력이 훌륭하다. 상황을 착각하도록 독자를 유도하다가 후반에 반전에 반전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이 너무나 놀라워 뒤집어질 정도다. 판타지, 그로테스크, 사이코패스 소재가 섞인 사건 자체와 반전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눈을 이식받은 소녀가 눈에 담긴 기억을 따라가며 느끼게 되는 '무언가'이다. 따뜻함, 행복, 사랑. 이미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느끼는 상실감과 그리움. 그 애절함과 감동을 책에 담아냈다.
 몸에 말뚝을 박고, 칼로 째고, 내장을 몸의 바깥으로 벗겨서 안쪽과 바깥쪽을 반대로 바꾸고, 팔다리를 잘라버리기도 하고, 유혈이 낭자하지만 누가 이 책을 읽고 누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상과는 다른 <암흑동화(暗黑童話)>에 감탄했다. <GOTH>가 2002년. <ZOO>가 2003년에 출판되었으니 출판 순서를 생각하면 퇴화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 슬퍼지기도 하지만 이 순간 오츠이치(乙一)의 글이 더욱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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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 4 - Soul Bet's Gamblers, NT Novel
아사이 라보 지음, 이형진 옮김, 미야기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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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이 라보(淺井 ラボ)의 대표작인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されど罪人は龍と踊る)>. 이전 3권에서부터 이어지는 잊혀진 거인. 에르노무 이야기는 지금까지 나왔었던 이야기 중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했다. 전권에서 결말부터 읽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패닉에 빠져 읽는게 두려웠으나 다행히도 이번에는 첫장부터 읽어나갔다.

지브냐는 용자 월롯의 곁으로 가버렸다. 패배한 가유스는 실의의 밑바닥에 떨어져 기기나와 함께 에리다나 거리를 헤맨다. 한편 ‘에노르무’의 본대 다섯 대의 출현으로 반지를 둘러싼 쟁탈전은 더욱 격렬해진다. 북방의 몰딘에게도 암살자의 손이 뻗친다. 몇 번씩 반전되는 폭풍우 같은 사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그리고 대투자가 다리오네트의 황금의 야망이 분명히 드러날 때 에리다나는 최악의 전장이 된다. 가유스와 기기나와 ‘에노르무’들, 용자 월롯과 익장들, 우국기사단이 목숨과 영혼을 건다!
우리의 현실과 교차하는 거대한 이야기, 드디어 종막!

 이번 이야기는 너무나 스케일이 크고 담긴 이야기가 많아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에르노무의 제(帝)인 조아이데스를 부활시키려는 에르노무들과 피에조를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려는 다리오네트, 그 모든걸 예측하고 익장을 움직이는 몰딘과 자신을 위해 모략을 세우고 개인이 나라에 대항하는 페디온, 그리고 실업으로 우국기사단에 휘말린 프류와 리제리아로 대표되는 서민들. 그들과 에리다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기기나와 가유스. 이 많은 등장 인물들의 각각의 사정이 섞여서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끔 이게 라이트노벨인지 햇갈릴 정도로 감탄할때가 있다.
 전권에서 패닉에 걸렸었던 그 결말은 다행히 이번 4권에서 해소된다. 이렇게 될줄은 알고있었지만 너무나 싫어하는 종류의 결말이었던지라 다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에리다나를 지키기 위해 몸은 적들과 싸워가며 가슴으로는 피에조의 영웅, 월롯과 지브를 사이에 두고 연적으로서 싸우는. 가유스에게 닥친 이중 구조의 시련이 훌륭했다.
 이전 감상에서도 적었듯이 선,악의 애매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されど罪人は龍と踊る)> 시리즈인 만큼 목숨을 노리며 싸울정도로 적이었던 인물들이 공통의 이익을 위해 순식간에 아군이 되기도하는 가혹한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었다. 적이었다가 아군이었다가. 책 한권 내에서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개성적인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사이 라보(淺井 ラボ)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는 이전보다 이번 이야기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불멸의 에르노무. 게힌나무 무와 주인공인 가유스, 기기나. 그리고 제자인 리제리아와의 싸움에서는 에르노무의 종족 번식을 연구하는 게힌나무 무의 인체 실험이 묘사되는데. 와... 이게 성인물 판정을 받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로 성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발밑에 암운이 깔리는 듯한 어두운 묘사와 그로테스크한 소재가 일품이다.
 조레이조 조와 가유스의 마지막 전투에서 가유스가 조레이조 조를 심리적으로 공격하는 부분 또한 감탄스러웠다. 이런 것까지 예상하고 에르노무를 이런 물질의 생명체로 만든 것인가... 화학적 설정 소재까지 빼놓지 않고 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아사이 라보(淺井 ラボ의 두뇌가 의심스러워진다.

 이번권은 지금까지 읽은(그래봐야 네권이지만)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されど罪人は龍と踊る)> 시리즈 중 가장 감탄스러웠다. 수많은 등장 인물들과 음모, 책략, 사정에 마지막 반전까지 담긴 엄청난 스케일의 이야기나 그 속에 담긴 어두움과 어두움속에서 빛나는 유머와 희망이 대단하다.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놀랍고 놀라운만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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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토피아
아스카 후지모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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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카 후지모리는 이 <네코토피아>를 출판할 당시만 하더라도 1978년 도쿄에서 태어나 25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어로 직접 써 프랑스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소개를 했지만 이후 자신은 프랑스인 남자로서 지금 도쿄에 살고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프랑스에서 조차 정체불명인 복면 작가이다.

열 살도 안 된 꼬마 아스카의 취미는 고양이 죽이기다. 그것도 평범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 찰리 맨슨, 피노체트, 에바 페론 등 유명한 살인범이나 정치인, 작가의 이름을 붙인 후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죽인다. 찌르기, 태워 죽이기, 감전시키기, 갈아 마시기, 술 먹여서 교통사고 유발하기, 때려죽이기, 하이힐로 밟기, 녹슨 커터로 배 가르기 등등 한니발 렉터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써서 고양이를 죽이는 실험에 몰두하는 아스카. 이런 딸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해 나날이 폐인이 되어가는 아스카의 부모는 결국 아스카를 정신분석가에게 데려간다.

한편 아스카가 살고 있는 성지는 지도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신처럼 추앙받던 지도자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것. 성지의 계승 문제 때문에 지도자는 평범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그의 권위에 맞는 ‘유니크한’ 죽음이 무엇일지 고심하던 신하들은 결국 고양이 킬러 아스카를 생각해낸다. 기소 당할 나이도 안 된 열 살짜리 여자애라면 마음껏 주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이제 함께 모여 아스카가 지도자를 죽이게 하기 위한 획책에 들어간다. 지도자를 죽이면 어떨까, 사탕을 주며 살살 구슬리고, 학교에서는 갑자기 ‘지도자는 고양이다’라는 주제로 백일장이 열리고, 성지 전체에 “지도자는 고양이를 닮았다!”라는 대대적 선전문구가 나붙는다. 아스카의 범죄 본능이 살아 있도록 온 성지에 있는 고양이들을 잡아 공급해주기까지 한다. 비정상적이고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모두의 걱정을 사던 아스카는 한순간에 모두의 구세주가 되고, 이 당돌한 꼬마 앞에서 허위에 찬 어른들의 모습이 까발려지는데……

 미스테리나 그로테스크한 소설로서 기대하고 읽었던 것과 달리 이 <네코토피아>는 정치를 풍자한 소설이었다. 놀라운 작명센스로 역사에 존재하는 온갖 범죄자 등의 이름을 고양이에게 붙여서 기발한 방법으로 죽이고 떼쓰며 가끔은 깜짝 놀랄정도로 철학적인 말을 하는 귀여운 꼬마 아가시 아스카를 볼때면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솔직히 지루한 책이었다.
 고양이를 죽이는 아스카와 지도자, 지도자 자문위원회 등을 통하여 권력에 물들어 지도자를 죽이고 멋대로 조종하려는 모순된 자문위원회와 언론, 성경, 법정 연령, 사회 구조 등을 놀랄 정도로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법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어른들의 발명품'이라는 말로 신랄하게 까댄다던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내건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을 규탄하고, 가난한 자는 노동을 얻고 부유한 자는 돈을 얻는 사회구조를 어린아이인 아스카의 눈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가장 인상깊었다. '도쿄, 2001년 10월 ~ 2002년 5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모습이 너무 역겹다'라고 평하지만 이 책은 고양이를 죽이는게 주제가 아니다. '어떤' 고양이를 '어떻게' 죽이고, 고양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용하여 정치를 풍자했는지가 주제인 것이지 책의 본질을 흐리면 곤란하다. 게다가 아스카의 행동에 웃음을 지었으면 지었지 실제로 그다지 역겹지 않다. 실로 재미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슴 깊히 와닿았다.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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