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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성 살인사건 ㅣ 성 시리즈 1
키타야마 타케쿠니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작가인 키타야마 타케쿠니(北山猛邦)는 이 <클락성 살인사건(「クロック城」殺人事件)>으로 2002년 제24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습니다. 상금도 없고, 유명 작가의 이름을 빌려 시작한 여타 상처럼 권위와 관계있지도 않은 메피스토 상은 개성적인 작가들을 배출하게 되면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 자체에 팬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도 메피스토 상에 빠져들어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이나 마이조 오타로(舞城王太郞), 사토 유야(佐藤友哉) 등의 작가를 접하게 되었죠. 메피스토 상은 엔터테인먼트 전반을 다루지만 엔터테인먼트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독특한 작품과 작가들에게 수상됩니다. 키타야마 타케쿠니(北山猛邦) 역시 메피스토 상을 수상받은 다른 작가들처럼 작풍 때문에 신본격 작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실제 이 클락성 살인사건(「クロック城」殺人事件)을 접해보니 스트레이트한 본격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였습니다.
클락성 살인사건(「クロック城」殺人事件)이라는 제목에서 고리타분한 본격 미스터리물을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종말로 향해가는 세계라는 배경과 게슈탈트의 조각, 그 게슈탈트의 조각을 석궁의 화살로 소멸시킨다는 일종의 퇴마물 비슷한 판타지 액션으로 시작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미스터리와 판타지의 조합이라는 부분에서 카도노 코헤이(上遠野浩平)의 사건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사건 시리즈가 세계관을 다루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클락성 살인사건은 좀 더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시크하고 위기 속에서도 담담한 매력적인 주인공 미나미 미키와 히로인 나미. 그들에게 루카라는 소녀가 찾아오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는 거대한 시계가 달려있는 클락성에서의 사건이 시작됩니다. 클락성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등장하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과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제23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던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의 데뷔작. 헛소리 시리즈를 생각나게도 만드는군요.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웠던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등장하는 SEEM, 11위원회, 한밤중의 열쇠 등 판타지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사건 자체는 본격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이 클락성 살인사건에 사용된 트릭은 고전적인 물리 트릭이었습니다. 해결은 생각보다 논리적이었고 사건의 동기에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있어도 상인 방법이나 해결에는 판타지가 조금도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판타지 소재와 미스터리를 융합한 작품은 지금에 와서는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 대부분이 심리 트릭을 사용해 "이 세계에서는 이게 당연한거니까."하는 식의 미묘한 해결방법과 마무리를 낳은 것에 비해 본격 미스터리를 위해 세계관을 창조해낸 키타야마 타케쿠니(北山猛邦)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카도노 코헤이(上遠野浩平)의 사건 시리즈만 하더라도 소설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지만 미스터리의 해결은 '마법이니까'로 끝나는 허술하고 실망스러운 결말이었는데 말이죠.
<클락성 살인사건(「クロック城」殺人事件)>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본격 미스터리인가 했더니 내용을 읽어보니 판타지 액션, 미스터리의 해결까지 가보니 메피스토 상답지 않은 본격 미스터리 작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작품 자체가 반전 덩어리군요.
키타야마 타케쿠니(北山猛邦)의 쿨한 문장으로 그려지는 하루 종일 비가 멈추지 않는 어두운 배경, 자기이상 때문에 대부분의 시계가 시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종말로 향해가는 세계에서 석궁을 손에 든 탐정 커플이 게슈탈트의 조각을 쫓다가 사건에 직면하고 SEEM과 11위원회라는 조직과 만나 클락성에 사는 도르 가문 유전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판타지적인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사건의 동기를 위한 설정이지만 유전자에 관련된 탄탄한 설정은 읽고 있던 내내 놀랐습니다. 제 전공이 생명공학이라 한층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탐정과 조수라는 추리물의 기본적인 구조와 다르게 히로인인 나미가 탐정역이었던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었습니다. 탐정과 조수가 아니라 퇴마사와 탐정같은 느낌의 커플이었습니다. 아니 미키는 퇴마사보다는 좀 더 중요한 역할지만요. 어두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주인공과 히로인 커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전 기시 유스케(貴志祐介)의 유리망치(硝子のハンマ-)에서도 느꼈듯이 제 취향이 논리적인 추리나 본격 미스터리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사건의 해결 장면에서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에 이어진 반전 등은 재미있었지만 정작 작가가 엄청나게 고민했을 물리 트릭 부분은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책 띠지에도 '뒷부분을 먼저 펼쳐 읽지 말라!'라고 적혀있고 아리스가와 아리스(有栖川有栖)도 놀랍도록 칭창한 중요한 부분이 정작 제 취향에 맞지 않는다니... 일반인의 힘으로도 사용하기 힘든 이 트릭을 비오는 날 범인이 이용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과 미온이 어떻게 미키가 레이마에게 점을 본 것을 알고있었나 하는 등의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도 있었습니다.
SEEM, 11위원회, 한밤중의 열쇠 등의 떡밥이 아직 모두 풀리지 않아 세계관을 제대로 다룬 후속작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 작품 자체는 그저 그렇게 읽었습니다.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