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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책을 다양하게 읽으라'라고 말하지만, 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은 굉장히 편파적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감상글만 보더라도 드러나듯이 자기계발서는 손 끝에도 대지 않고, 정보지나 에세이는 읽더라도 아주 가끔 읽는다. 책에는 '재미'가 기본으로 깔려있어야 한다는 신앙과 같은 신념 때문인지 소설만을 읽는다. 그나마 최근에는 다양한 시도로 인하여 소설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작가로 데뷔한 지 삼십 년 남짓, 이런저런 목적으로 이런저런 지면에 글을 써왔는데 아직 단행본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들을 여기에 모았습니다. 에세이를 비롯해 여러 책들의 서문,해설 그리고 질문과 그 대답은 물론 각종 인사말, 짧은 픽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잡다'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 되었습니다. 미발표작들도 꽤 있습니다. 좀 더 평범한 제목을 붙여도 좋았을 테지만, 편집자와 협의하는 자리에서 줄곧 '잡문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뭐, 그대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잡다한 글들이니 철저하게 잡다하게 가도 괜찮을 거라고.
이 책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소개글, 인사말, 에세이, 서문 혹은 해설, 심지어는 짧은 픽션까지 포함된 책이다. 작가조차도 '잡문집'이라 칭한, 일본 최고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데뷔하고 나서 삼십년 남짓 동안 이런저런 목적으로 써온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런데 '잡문집'이라 하더니만, 책을 펼쳐보니 내용은 전혀 잡스럽지 않았다. 책에서 느낀점을 말하자면 글이 길어져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의뢰를 받아 조금씩 일을 시작했을 무렵, 어느 편집자에게서 "무라카미 씨,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충 써나가는 느낌으로 일 하는 편이 좋아요. 작가란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니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과연 그럴까'라며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옛날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이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하고 납득이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원고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왠지 좀 뻔뻔한 것 같습니다만.
'작가는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 가는 존재'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굉장히 인상깊었던 말인데, 아마 오츠이치(乙一)의 초기 작품을 모아놓은 책. '베일'의 후기에서 읽었던 것 같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작가들끼리란 역시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일까. 지금 봐도 인상깊은 문구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 어떠한 교훈이나 시사점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책을 사랑하는 '애독자'의 시각에서, 소설가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처음에 실린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부터 시작하여 화제가 되었었던 예루살렘상 수상 인사말 '벽과 알'은 정말 감명깊었다. 이 책에는 그만큼 '작가'이자 '인간'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이 감상의 태그에 '에세이 감상'이라고 단언하여 태그를 달아놓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간에는 '음악에 관하여'라는 챕터에 그가 사랑하는 재즈에 관한 이야기가 실컷 실려있다. 내가 재즈 음악을 좋아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게 읽혔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나는 재즈를 알파벳으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라 이 챕터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없던 부분이 되어버렸다. 그가 작가가 되기 전에는 꽤 잘 나가던 재즈 카페를 운영했었다고 할 정도로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두 영화는 영화로서 작품으로서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오히려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옮겨놓는 현상적 비히클로서 유효한가 아닌가 하는 실용적인 좌표축 하나를 별개로 더 적용시켜 평가해야 옳지 않을까.
분명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써진 년도도, 시대도 다르다. 1979년부터 2010년까지, 미발표 에세이부터 미수록 단편소설까지, 장르까지 다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든 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자하는 의지가 똑같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잡다한 구성이라고 하더니만, 수록되어있는 모든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설가로서, 거짓말을 해도 비난을 받지 않는 유일한 직업을 가진, 아니 오히려 거짓말을 잘할수록 칭찬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허구를 통하여 진짜를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내면의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옮겨놓아 인생을 뒤바꾸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새 프로 작가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버린 지금보다 훨씬 이전, 아주 옛날 데뷔할 때부터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조심스레 글을 적어왔다. 그는 소설을 넘어 '문학'이라는 것이 가진 힘과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의 등불들을 알고있기 때문에, 더욱 무기, 탄압, 힘, 권력과 같은 '벽'보다 약한 자, 탄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글을 쓰고 싶은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워낙 많은 글들이 실린 작품이다보니 솔직히 어느 부분은 굉장히 큰 깨달음을 주었고, 어느 부분은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어느 부분은 너무나 지루하여 읽는데 힘든 부분도 있었다(음악에 관한 부분이라던지). 사실 에세이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읽는 도중 느껴진 재미만을 평가하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인생을 살펴본 데에는 나름의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어떤 것을 읽었었지...? 그나마 최근에 나온 '1Q84' 말고는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그의 책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인생을 먼저 살펴보았다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이후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