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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감상을 적었던 코(鼻)라는 책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藁にもすがる獣たち)이라는 책 때문이다. 소네 케이스케(曾根圭介) 작가의 최신작인 이 책을 보고는 아무 이유 없이 책이 마음에 들어(말하자면 필이 꽂혀서)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고 읽은 '코'에서 냉혹한 세계관을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이번에도 '코'와 같은, 냉혹한 세계관에서 인간 내면의 공포를 드러내는 작품일 줄 알았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예상과 다르게 한 편의 스릴러, 혹은 하드보일드 느와르에 가까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업을 그만둔 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늙은 나이에도 사우나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살아가는 칸지, 폭력배와 유탁한 끝에 거액의 빚을 지고는 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 형사 료스케, FX투자에 실패하여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미나. 이 세 '짐승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짐승들'은 단순히 이 세 주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켄지가 아르바이트하던 사우나의 젊은 아르바이트 생, 약에 취해있는 폭력배의 우두머리, 료스케가 찾아다니는 여인 최영희,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정신이상자처럼 과하게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일반적인 인물상이기에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등장 인물 전체가 '짐승들'이라는 점이 대단히 인상 깊다.
이쯤에서 작가의 특이한 인생을 이야기하자면, 작가인 소네 케이스케는 1967년 시즈오카 현 출생으로 1991년까지 와세다 대학에서 재학 중 흔해 빠진 인생을 살며 삶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학을 중퇴한다. 그 후 사우나 종업원, 만화카페 점장 등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인생을 착실하게 끝자락으로 몰아가던 중 집필한 소설 '코'로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 그 직후 '침저어'로 제53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해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이 시절 작가의 아르바이트 경험과 인생 밑바닥 경험은 그대로 이 작품에 노아들어 사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칸지의 모습 등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다. 작가 자신의 인생을 담아서인지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실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나로 모이며 마무리된다. 언뜻 하나하나 보기에는 공통되는 사건이 보일듯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다가 실타래가 풀리듯 이야기가 풀리며 하나로 이어지는 작가의 테크닉은 과연 놀랍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지루하지 않던 하드보일드 느와르였으나 정말로 아쉬웠던 것은 정작 이 책에 데뷔작인 '코'에서 느낀 것 만큼의 공포나, 상상력, 특유의 냉혹한 세계관, 그리고 시사점이나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런 것들을 와닿도록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대단히 아쉽다.
이 책을 읽기 위하여 '코'를 읽었는데, 오히려 '코'보다 아쉬웠던 작품.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안타깝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