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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 1 - NT Novel
사라이 슈운스케 지음, 이은주 옮김, 나베시마 테츠히로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진지함이나 감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犬とハサミは使いよう)>이라는 제목부터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사라이 슈운스케(更伊俊介)라는 작가명도 익숙하지 않았고 실제로 택배가 도착하고 '이런책을 구입했었나?' 했을정도로 무관심했다. 기억력이 조루인게 아니라 그만큼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의외성있는 독특한 소재와 웃기고 부조리한 이야기, 그리고 중간중간 녹아들어있는 감동에 생각보다 더 큰 재미를 얻었다.
거짓으로라도 스토리가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주인공 하루미가 어느 날 자주 찾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강도를 만나 살해당한 이후 개로 환생하고 유일하게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나츠노를 만나 결국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고 범인을 잡는 미스테리 스토리... 사라이 슈운스케(更伊俊介)가 쓰고싶어했던 모에와 미스테리, 배틀이 뒤섞인 소설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실제로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복선이나 과정도 허술해 범인이 발견되는 장면등에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으며 특히 압권이던건 결말 부분. 난잡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문장이 가독성을 낮추고 어이없는 스토리가 재미까지 함께 낮추었다. 가장 안타까웠던건 이 결말이 없더라도 스토리에는 지장이 없었을텐데 무엇을 위해서 이 마지막 장면을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것.
이런 잔혹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재미있다'고 말할수밖에 없었던건 책에 너무도 집착해 죽는 순간까지도 책을 생각하고 죽고나서도 책을 생각하며 개 - 주인공의 성격을 대변한 무심한 눈초리의 미니어처 닥스훈트 종인게 또 재미있다 - 가 된 이후에도 책을 읽고 책 이외에는 모두 무심한 하루미의 매력적인 캐릭터성이나 그가 좋아하는 작가이던 나츠노와의 만담같은 유머러스한 대화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대부분이 개그만담으로 채워져있는 이 책에서 느낀 의외의 감동이 감명깊었다. 특히 중후반부에 개가 된 하루미가 매일 아침마다 신간을 사러가던 서점 앞을 '이젠 책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다가 서점에 세워져있는 하루미의 영정사진을 보는 장면이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犬とハサミは使いよう)>에서 가장 명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정사진을 보고서는 잠깐 가슴아파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감정을 절제하고 억지로 밝은척하는 하루미와 그의 마음을 읽고는 울것같은 표정을 짓는 나츠노. 하루미가 직접 울부짖지 않았기에 더 슬펐던 이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했었다. 개한테 슬픔과 감동을 받을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나름 범인을 쫓는 장면에서 가위로 대응하는 나츠노의 액션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갑자기 문체가 확 바뀌면서 억지로 배틀물을 따라하는듯한 전투장면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전투장면에서조차 '책'이라는 주제를 계속 신경썼다는것만큼은 굉장히 좋았다. 책으로 시작된 범행과 그 범인이 책으로 인해서 계몽하고 전투장면도 책으로 이루어지며 마지막까지 책으로 해결된다는 예상외의 장치가 훌륭했다.
이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犬とハサミは使いよう)>이라는 일반적인 소설과 너무 다르고 소재 하나하나가 너무 독특하여 매니악한 라이트노벨 안에서도 더욱 매니악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건 물론이고 취향을 타는 작품이라 아마 호불호가 크게 갈릴 책. 캐릭터간의 만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책의 후기에서야 알게되었지만 사라이 슈운스케(更伊俊介)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작가가 아니라 '사라'와 '이'라는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치바현에 위치한 모 대학의 문학부와 공학부를 졸업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함께 쓰게 된 소설이 바로 이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犬とハサミは使いよう)>라고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나베시마 테츠히로(鍋島テツヒロ)의 일러스트도 굉장히 좋았다. 특히 주인공인 미니어처 닥스훈트가 재미있게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