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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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모든 게 그렇지만 사랑도 이중성을 띤다. 강하면서도 약하고, 영원하면서도 순간적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사랑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고 답은 다양할 것이다. 소설처럼 어느 한 순간 연인이 또는 남편이 멀게 느껴질 때가 온다. 그게 오해에서 비롯되었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속성을 지녔다는 걸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랑을 한다.

돌풍에 휩쓸린 헬륨 기구 속 소년을 구하기 위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든다. 그들은 무엇을 향해 달려갔던 것인가? 책에선 재앙을 항해 달려갔다고 표현한다. 재앙은 그 자체로 용광로였고 그 열기로 인간의 정체성과 운명이 얽히고 녹아 새로운 모양을 이루게 된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지만 도움을 주려던 존 로건이 사망하고 만다. 그 우연한 사건이 주변 인물들에게 크고 작은 불행의 씨앗을 안겨 주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미로 속을 걷는 듯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믿음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두 커플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존 로건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보다 남편이 외도했을 거라는 심증에 괴로워한다. 진실을 밝히기 전에는 남편을 오롯이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믿음이란 과연 실제하는 감정일까? 믿음이 사라진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그 믿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회복되어도 그 사랑은 예전과 같은 사랑일까? 여러 질문이 머릿 속을 멤돌게 하는 작품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사랑은 역시 어려운 문제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패리도 이 소설을 이끄는 중심축인데 부록에 이 증상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나온다. 일종의 애정 망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의미 없는 단순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증상이다. 이쯤 되면 사랑도 병이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파헤치며 과학과 종교, 이성과 광기, 사랑과 집착 등 묵직한 주제를 흥미롭게 펼쳐낸 소설이라고 하겠다. 절판되었던 작품을 다시 만나는 기쁨도 있다. 새로운 제목과 번역으로 찾아왔고 표지는 이 소설의 첫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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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각본집
이창동 지음 / 아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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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밀양>은 내가 꼽는 명작 중 하나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맘에 와닿았고 강렬했다. 2007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라 더 특별하다.

요즘 유행처럼 영화나 드라마 각본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다시 읽고 싶은 각본집은 단연코 '밀양'이다. 이 책에는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작가 노트, 콘티, 현장 스릴,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어 깊이를 더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장면 하나하나 다시 떠올렸다. 내가 잊고 있었던 부분이나 놓쳤던 부분을 짚고 갈 수 있어서 시나리오 읽는 맛이 남달랐다. 대사 하나 허투루 쓴 게 없구나 싶어 새삼 감탄했다. 훌륭한 시나리오에 명배우들이 만나 좋은 작품이 나온 듯싶다.

<밀양>의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이다. 이 감독은 이 소설을 읽고 반드시 영화화하기로 마음 먹는다. 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가해자의 대사는 비슷하다. 자신은 용서를 구해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피해자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있다.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정희진 에세이에 그와 관련된 말이 나온다. '피해자에게 용서와 구원은 가능하지 않은 인간성이요, 권선징악은 희망 고문이다.'

최근 방영된 '더 글로리'처럼 피해자는 복수를 하려는 게 당연한 심리다. 지옥 속에서 살게 한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자식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한다니 성자가 아닌 이상 그게 가능하느냐 말이다.

피해자에게 용서와 구원을 바라지 말라! 용서까지 바란다는 건 정말 파렴치한 행동이다. 신이 용서하고 말고는 논외로 한다. 이 영화는 공감을 넘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정답도 없고 다양한 답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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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원의 일본어 단어
한창화 지음 / 좋은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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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종종 우리말과 비슷한 단어를 알게 되는데,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생소한 단어보다는 발음이 비슷한 말은 잘 외워지기 마련이다. 낯선 언어를 공부할 때 뭔가 유사성을 발견하면 확실히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자가 아니라 우리말에서 어원이 된 일본어 단어가 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가까운 나라이니 아무래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터,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있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우리말이 어원이 된 일본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일본어와 우리말에 관련성을 비교하고 탐구하면서 일본어에 영향을 준 우리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일본어는 발음 수가 300개에 불과한 반면 우리말의 발음은 1096개로 일본어보다 몇 배는 많다. 그러니 발음 수가 적은 입장에서 발음을 도입해 표기하는 것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났다.

책이 두꺼워 사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기존 사전처럼 빽빽한 구성은 아니다. 한 페이지에 한 단어씩 할애해 그림과 사진을 적절히 넣었고 그 단어가 모두 511개가 된다. 맨 마지막엔 의성어와 의태어 27개도 더했다. 글자가 큼직하고 여백이 많아 가독성이 높고 사전이라기 보단 단어장 같은 느낌이 강하다.

외국어를 배울 때 단어 암기는 필수다. 그런데 무작정 외우려고 하면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에서 알려주듯 단어의 유래를 안다면 연상법을 통해 단어 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한 번에 다 읽기 보다는 하루 몇 단어씩 어원을 살펴보고 외우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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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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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나혜석과 후미코를 그린 표지가 일단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우 목도리를 두른 나혜석과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옆구리에 낀 후미코. 일등칸에 탄 식민지 여성 나혜석과 삼등칸에 탄 제국 여성 후미코. 이 둘의 여행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여행 이야기는 늘 매력적이다. 하물며 일제강점기 시대의 여성이 쓴 여행기 아닌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다. 지금도 쉽지 않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넘어가기. 듣기만 해도 설레는 스토리임엔 분명하다.

나혜석은 1927년 남편과 함께 구미여행을 떠난다. 일등석에 탄 이유는 단둥현 부영사로 지낸 남편 김우영에게 포상으로 주어진 여행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포상휴가 정도가 되겠다. 이런 여행이라면 아이 셋을 맡기고서라도 떠나야 맞는 거다. 반면 후미코는 1931년 나홀로 유럽여행을 떠난다. 자비로 떠나는 배낭여행이기에 후미코는 삼등석을 타야만 했다. 출판사에 글을 보내 원고료를 조금씩 받긴 했지만 넉넉하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각자 여행을 마치고 나혜석은 <구미여행기>를, 후미코는 <삼등여행기>를 남겼다. 나혜석은 당시 도쿄미술전문학교를 나온 유학파 엘리트였고 후미코는 작가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공통점은 둘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단, 나혜석은 일등칸을 이용했고 후미코는 삼등칸을 탔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그 차이점이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둘의 여행기가 함께 실려 있다보니 비교가 자연스레 될 수밖에 없다. 나혜석은 좋은 대접을 받으며 만나는 사람마저 고위급 인사들이고 후미코가 만나는 사람은 매춘부, 집시 등 꽤나 다양하다. 나혜석의 글이 일정을 기록한 보고서 느낌이 강하다면 후미코의 글을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와 같다. 나혜석의 글은 이미 접한 적이 있어 새롭게 다가오지 못한 반면 후미코의 글은 처음이라 인상적으로 읽었다.

동시대를 살아간 두 여성의 여행기를 통해 각자의 관심사, 고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이런 일정으로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시절에 이런 여행을 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히나 삼등칸을 이용해 유럽의 민낯을 보는 여행을 한 후미코의 여행기는 인상적이었다. 따로 읽어도 충분히 재밌을 여행기인데 이런 기획으로 묶어놓으니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유럽에 갈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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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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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하드SF는 어려워 선뜻 읽기 힘든데 반해 켄 리우의 작품은 과학지식이 조금 부족해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금은 다정한 SF라고 해야할까~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 3관왕을 석권한 켄 리우의 소설을 엮은 단편집이다. 11편을 엄선해서 실었는데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중국화의 아름다움을 녹여낸 <북두>라는 단편은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p.303
덕을 가져다가 온갖 악을 덮는 허울로 삼기란 너무나 쉬운 법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언제나 참된 덕을 찾아갈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저 스스로가 필연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색깔이 다른 단편이지만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이 있다. 바로 평화다. 전쟁과 불의에 반대하고, 폭력과 억압에 반대한다. <종이 동물원>과는 달리 단호한 목소리가 작품 전반에 흐르는 듯하다.

빌런과 슈퍼히어로의 티키타카가 돋보인 <카산드라>는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이다. 여우는 여러 가지 것들을 알지만, 두더지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안다.(아르킬로코스) 시작하는 페이지에 나오는 문구다.

p.228
모르는 채로 사는 것과 알기를 거부하는 것, 그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예지력을 가진 빌런은 사건사고를 미연에 막으려 한다.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심판하는 사회에서 살 수는 없다며 슈퍼히어로는 다소 회의적이다. 히틀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미리 죽였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p.236
한 명을 죽이는 정도로는 모든 학대범을 막을 수 없다면, 문화가 변화하는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면, 살상 무기의 발명을 막을 수 없다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그렇다면 더 많이 죽이는 수밖에.

하드SF처럼 어렵지는 않은데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이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곱씹고 나름 대답을 하며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 리우의 작품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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