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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ㅣ 하다 앤솔러지 4
김엄지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평점 :
#도서협찬
열린책들 하다 앤솔러지는 동사<하다:걷다,묻다,보다,듣다,안다>를 주제로 한 단편소설집이다. <걷다>를 시작으로 4번째 시리즈 <듣다>가 나왔다. 최근 눈여겨 봤던 김혜진 작가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
‘듣다’라는 동사로 다섯 명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기대가 되었다. 어떤 소리와 말을 듣게 될까. 어쩌면 ‘듣다’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 역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첫 단편 김엄지의 <사송>에서 L이 진정 듣고 싶었던 건 바람 소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 아니었을까. 오래된 연인은 서로 듣고 싶은 대답은 하나도 듣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만다. 소통의 부재야말로 더이상 관계를 이어갈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대화가 원활히 오간다고 그걸 진정한 소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김혜진의 <하루치의 말>에서 애실은 현서와의 대화에서 오랜만에 위로와 위안을 느꼈다. 속을 완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 관계에 반전이 있었으니……. 애실은 그제야 깨닫게 된다.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결코 가닿지 않는, 마음 사이의 깊이를.
전쟁은 나라 밖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실 집안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때론 말이 무기가 되어 가족에게 상처를 입힌다. 서이제의 <폭음이 들려오면>에서 연우의 엄마가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귀 기울이는 일이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단편 최재훈의 <전래되지 않는 동화>는 제목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다. 유머러스한 내용이지만 가볍지 않고 심오한 메시지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왕국, 그들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이 사라져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표현의 도구가 없으면 인간은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작은 배려로, 세심한 관심으로, 살뜰한 보살핌으로, 따뜻한 눈길로, 정다운 미소로, 넉넉한 포옹으로, 애틋한 눈물로, 말 없는 희생으로, 너그러운 이해로, 무조건적인 지지로, 웅숭깊은 용서로, 함께 꾸는 꿈으로(p.194)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이라는 말이 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가? 단어가 사라져야 비로소 보이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앤솔러지는 한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내어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여러 작가의 문체와 세계관을 한 번에 접할 수 있어 흥미롭다. 생소한 작가를 만나면서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마지막 <안다> 시리즈도 기대하며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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