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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 시간의 물리학 -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강형구 옮김, 이해심 감수 / 바다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과 시간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서평들이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질문들만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주요 결론에 의하면, 시간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건 4차원 시공간의 팽창 때문이고 지금은 4차원 빅뱅의 앞 모서리이며, 시간은 ‘지금’에서 멈춘다(p. 382).
하지만 핵심문제는 시간의 방향이 아니라 시간 자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빅뱅의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공간 팽창은 언어적 의미로 원점으로부터 방사상으로 멀어지는 것이니 당연히 한 쪽 방향밖에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시간도 공간과 함께 변하니 한 쪽 방향만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팽창 때문에 한쪽으로만 흐른다는 건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빅뱅 자체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없어서 기존의 이론들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4차원 빅뱅의 모서리”라는 표현 자체가 시간을 3차원 공간 표상을 이용해 표현한 것인데, 이는 저자가 ‘지금’을 은유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증거이며, 이는 시간과 ‘지금’을 은유로 묘사한 기존의 수 많은 철학적 문학적 표현들에 비해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시간은 지금에서 멈춘다’는 명제는 ‘날아가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제논의 역설이 역설이 아니고 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겠으나, 제논의 역설은 그저 역설일 뿐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방금 막 생성된 순간이어서 끊임없이 샘솟으며,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아 ‘지금’ 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시간은 지금에서 멈춘다’고 표현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기 위한 편리 때문에 필요한 개념일 뿐 실체 없는 개념에 불과하고(저자가 예로 들은 ‘허수(imaginary number)’처럼), 인간은 결코 ‘지금’ 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현재라는 선은 면적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시간의 역설).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0.01초 보다 짧은 시간을 지각하기 힘들고, 지각과 인지는 그보다 더 긴 일정 구간(정크)을 필요로하며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근거로 이루어진다는 게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의 결론이다. 저자의 주장이 저자가 염려하는 또 다른 ‘물리주의’는 아닐지 염려된다.
시간의 방향을 알려주는 척도가 엔트로피 증가 방향이 아니라 엔트로피 감소 방향이라는 주장은(p. 217) 새롭지만 억지스럽다. 저자가 주장하는 시간 방향으로의 엔트로피 감소 예는 생활 차원에서는 지구에서의 생물 활동과 인류 문화활동에서만 일부 관찰되는데, 이는 우주에서 차지하는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의 위치가 우주 속에서 먼지 한 점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 차원을 다루는 담론에서 예로 들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또한 생명이 태어나는 건 엔트로피 감소일 수 있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생체의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과정이며, 인류 문명 역사 속에 오직 창조와 건설만이 있었던 게 아니고 파괴와 소멸의 기록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우주에서도 새로운 별들이 태어난다고하나 지구에서의 유기체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우주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는 게 정설이다.
행동 가능한 유일한 시간인 ‘지금’, 나의 선택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는 자유의지 담론과,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엔트로피 증가 밸브 조절 결정 여부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저자의 글에 대한 이상의 소감이,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의 무지에 기인한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