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 동서양을 넘나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을 매혹한 세계미술사
줄리언 벨 지음, 신혜연 옮김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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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흔히 책을 소설과 비소설로 나누는데, 읽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소설은 이해를 요구한다기보단 공감을 요구한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사건과 인물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공감해야 그 소설을 완전히 받아 드릴 수 있으며 그 안에서 감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소설에서 특히나 그것이 교양서라면 공감보다는 이해해야 한다. 즉 여러분이 A라는 영화를 봤다고 치자. 친구한테 전화 걸어서 A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할 때 친구가 A라는 영화를 봤다면 소설처럼 이야기해야 하고 보지 않았다면 비소설처럼 얘기해야 한다. 즉 그 친구가 영화를 봤다면 그 장면 좋지 않았느냐? 난 그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 것 같아. 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겠지만 보지 않은 친구에게는 그런 공감보다는 그 영화가 뭔지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장황한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나를 이해시키기보단 동등한 혹은 얼추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미술, 세상에 홀리다-줄리언 스팰딩>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읽는데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다. 그러니깐 미술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혹은 아는 게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

또 이런 서술 방식에 더해서 이 책이 다루는 미술사는 동서양 전체를 포괄하고 있으며
(내 생각엔 그래도 서양을 더 많이 다룬다.) 그 서술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보다는 핵심만 짚고 넘어가는 식이다. 물론 이 책이 미술사 특강 요점정리 같은 성격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인들과 커피숍에 둘러앉아 미술 전반에 관해 좀 더 사적이고 폭넓은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 수다에 끼려면 좀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미술 자체가 아닌 미술가의 사적이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예를 드러나는 카라바조가 좀 별난 인물이란 건 알았지만 한 남자를 살해하고 도망 다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아무래도 처음 읽은 서양미술사에서 곰브리치 교수는 그림 자체에만 집중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미술 외적인 이야기는 잘 몰랐다. 사실, 또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나는 미술관에 미술을 감상할 때 해설을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런 해설이 내가 미술 작품을 보는데 어떤 편견을 줄까 봐 겁이 나서다. 대신 그 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예습하고 간다. 아마도 곰브리치 교수의 <서양미술사>에서 이런 미술 외적인 사건을 전혀 언급 안 한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또 그것으로 어떤 편견이 생겨 미술작품을 대하는 관람자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까 봐 우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예술가 중에 별난 사람이 참 많아서 그의 사적인 정보가 두터운 편견으로 자리 잡을 때가 잦다. 사실 그런 태도는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순수하게 어떤 한 예술가의 결과물만 가지고 평가하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반대의 역효과도 종종 자아낸다. 즉 한 인물의 사적인 선행이나 좋은 이미지가 그의 작품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아무튼 이 부분은 좀 주의를 해야 한다.

두 번째 선택한 미술사 책이 좀 버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도 약간은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아주 조금은 나도 미술사를 아는 걸까? 어쨌든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입문서로는 이 책은 좀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이 책 뒤에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저자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언급하면서 추천해주고 있다. 입문서로 아주 좋다는 말이다. 이 책은 좀 더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좀 더 지식이 많아지고서 다시 읽어보면 더 많은 부분이 공감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벌써 세 번째 미술사 책을 빌렸다.ㅎㅎㅎ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은 아쉬운 점인데 이 책의 도판은 요즘 나오는 책 답게 아주 좋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사실 옛날에 나온 미술책과 비교하면 요즘 미술책 도판이 아주 좋다. 문제는 꽤 다수의 도판이 흑백이다. 처음엔 그게 원래 흑백인가 싶었다. 원본이 소실돼서 흑백사진이나 판화 같은 걸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깐, 근데 웹에서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자는 책 안에서 색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근데 왜 흑백 도판을 실었을까? 좀 의아하다. 그거 빼곤 도판의 상태는 아주 좋고 책 제본도 무척 튼튼하다. 종이질도 아주 고급 같은데 너무 질 좋고 두꺼운 종이라 텍스트를 보기엔 눈이 좀 아프다. 아마도 도판 때문에 그런 종이를 선택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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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작은 지배자, 개미
로랑 켈러, 엘리자베스 고르동 지음, 양진성 옮김, 최재천 감수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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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 녀석이 왜 그렇게 동물학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적당한 대답을 못했다. 그냥 좋아한다고만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떤 학문이든 이해를 하는 것인데 동물학은 그 이해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한 학문이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것도 무척 힘든데 전혀 다른 종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낯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미난 것 같다.

뭐 어쨌든 그래 봐야 우리 출판시장에 동물학 책은 가뭄에 콩 나듯 나온다. 여태 지켜보니 쓸만한 동물학 책은 일 년에 한 권 나와도 얼씨구 감사할 정도다. 나머지는 애들이 보는 것이거나 <TV 동물 농장> 분위기가 충만한 것이다. 그런 것은 너무 흥미 위주라서 내용이 빈약하거나 동물의 삶이 아닌 인간에 의해서 변형된 독특한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라 도대체가 가십거리 밖에 되질 않는다.

이 책은 되게 이상적인 게 일단 저자가 개미 전문가다. 개미를 다년간 연구한 과학자여서 책 내용은 참 알차다. 거기에 따분하지 않게 과학 전문 기자와 공저를 했다. 중간마다 농담도 나오고 읽을 만하다. 거기에 번역은 전문번역가가 하고 감수를 개미에 정통한 생물학 박사가 했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조합인가. 번역이 엉망인 지뢰밭 같은 전문서적에 비해 정말 다행이다. 일 년에 몇 권 나오지도 않는 동물학 책이 번역이 엉망이면 참 서글플 거다.

일단 책의 내용은 굉장히 포괄적이다. 먼저 개미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로 처음에 시작한다. 그리고 독특한 개미에 대한 소개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또 동식물과 공생관계를 다룬 장도 무척 놀랍고 흥미롭다. 약간 어려운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개미를 이용하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책의 단점이 두 개인데. 하나는 이런 굉장히 포괄적인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는 게 너무 아쉽다. 그러니깐 흥미가 좀 생겨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할 때쯤 이야기는 끝나고 마는 거다. 당연히도 지면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자세히 다루면 일반 독자에게 자칫 지루하게 다가갈 위험도 있기에 좀 더 대중적인 성격으로 쓰인 책이라 그런 것 같다. 두 번째는 이 책이 후반부에 약간 어려운 이야기가 슬쩍슬쩍 나오는데 글쎄 이건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달라서 딱히 단점은 안될 것 같다. 역시 너무 아쉬운 건 도판도 좀 많고 좀 더 세세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몇 종 되지 않는 개미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2006년, 비교적 최근에 쓰인 책이라서 최신 정보가 많이 담겨 있다. 즉 개미에 대해 우리가 가진 오해와 상식을 보완해줄 만한 책이다. 

개미에 대해 알고 싶다면 무조건 추천해주고 싶다. 거참 개미란 녀석들은 참 독특하다. 농사짓는 개미는 얘기는 듣긴 했지만 경작지를 만들고 그렇게 정교하게 농사를 짓는지는 몰랐다. 행군만 하는 개미가 있는가 하면 베를 짜는 녀석들도 있고 불필요한 식물을 없애버리는 고엽제 개미도 있고 시체를 쌓아서 묘지를 만드는 놈들이 있지 않나……. 별의별 개미가 다 있다. 각각의 개미마다 상세히 다룬 책이 앞으로 나와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물학 책이 너무 나오지 않으니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나와줬으면 좋겠다. 간만에 읽은 동물학 책이라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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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박물학자
로버트 헉슬리 지음, 곽명단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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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눈팅하고 너무 근사한 책이라 읽고 싶었지만 사서 읽기엔 좀 그렇고, 굳이 가격의 문제는 아니었다. 소장하고 읽을 정도로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 읽었다.

일찍이 앨리스가 그림 없는 책은 시시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은 진리다. 물론 그림 없는 책 중에 시시하지 않은 것도 많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도판이 화려한 책은 정말 볼거리가 많지 않은가? 그 도판이 그림일수록 우리의 눈은 정말 즐겁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다윈까지 기원전부터 19세기까지의 유명한 박물학자에 대한 기록이다. 좀 훑어 보면 그 내용이 다소 단조로운 건 사실이다. 꼭 무슨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같은 분위기랄까. 각각의 위인들이 양력과 주요 업적들을 요약해놓은 식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많이 따분했던 게 이런 방식의 단조로운 내용 구성 때문이다. 물론 중간마다 흥미로운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정규교육을 안 받았지만, 오늘날 사용하는 일반적인 현미경을 개발한 인물이나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박물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던가 흥미로운 이야기도 다수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이 책의 내용은 좀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점에 가서 이 책을 펼쳐보면 놀라울 정도로 멋진 도판이 가득 실려 있어서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거다. 나도 그랬으니깐…. 역시 도감은 사진보다는 세밀화가 오억 만 배 예쁘고 탐난다. 그러니 그 옛날에도 그 도감이 어려운 내용을 담았음에도 잘 팔리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미각의 역사>를 만든 출판사 책인데, 한가지 칭찬할만한 것은 책값이 비싸긴 하지만 양장이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화려한 도판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책도 180도로 쫙쫙 펴지고 양장 방식도 튼튼하고 꼼꼼하다. 요즘에 말이 양장이지 정말 허접스럽기 짝이 없는 양장도 많은데 이 녀석은 정말 튼튼하다.

큼직한 도판을 시원스럽게 실은 것도 좋았다. 도판의 인쇄상태도 내가 뭐 이런 걸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내 눈에는 색감이나 인쇄질이 아주 맘에 들었다. 또 옛날 책 느낌이 나게 세심하게 편집한 것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좀 더 박물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책을 채웠더라면 덜 지루했을 것이다.


개양귀비 P.52
이 그림은 ‘레온하르트 폭스’가 16세기에 출간한 <식물 탐구에 관한 주목할 만한 논평>에 실린 목판화 도판 중 하나이다. 도판에 수작업으로 색칠한 것으로 주로 품삯이 싼 어린아이나 여성이 채색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책에서 스캔한 것은 아니며 웹에서 내려받았다.

 
이 그림도 역시 웹에서 내려받았다. 17세기 곤충학자이자 박물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그린 수채화 중 하나이다.

서양의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등 인간의 삶과 밀접한 모든 것을 다룬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공통 요소가 나오는데 그것은 종교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뚜렷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이 박물학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종교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양사람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느냐 부정적으로 작용했느냐 요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단순하게 이러쿵저러쿵 섣불리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박물학에서 종교는 성서를 과학서쯤으로 올려놓음으로써 그 발전을 가로막았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맹목적인 종교의 믿음은 사람을 얼마나 아둔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서양의 문화에서 종교는 빛이면서 어둠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두운 면이 두 개 더 있었다. 하나는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활동했던 시기가 제국주시대였고 몇몇 박물학자는 노예제도와 착취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그들의 박물학 유산은 그 착취를 통해 얻어진 부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물학의 대중적 인기는 무분별한 포획을 성행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멸종한 종을 우리는 겨우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멸종은 환경오염과 포획때문이다.

쓰다 보니 결론이 이상해졌다.ㅎㅎㅎ 어쨌든 박물학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시대는 박물학이 아니라 자연을 보전하는, 더 나아가 복원하는 학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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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역사
폴 프리드먼 지음, 주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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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서점에서 봤을 때, 그 화려한 도판에 맘이 뺏겼다. 또 대충 훑어보면서 이 책은 음식을 통한 인문학을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음식사를 통한 인문학은 아니었다. 책의 제목 그대로 미각, 즉 보편적이기보다는 미식가들의 역사를 더 중점적으로 다뤘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선사시대 때 우리는 무엇을 먹었나? 하는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하지만, 곧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 중세와 르네상스 이후를 거쳐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온갖 화려한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로 미식가도 아니면 미각에 대한 특별히 경외감이나 관심이 부족한 나로선 이른바 돈 있는 놈들의 돈 지랄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대단히 아쉽게도 이 책은 음식 문화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인문학 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의 목차 뒤에 실린 이 그림은 15세기 말에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의 한 작품이다. 책을 펼쳤을 때, 이 신비롭고 화려한 그림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이 그림과는 다르지만 똑같은 연작 작품 중 하나는 유명한 책인 <미술, 세상에 홀리다>의 표지로 쓰였다.)

미식과 미각을 부자들의 돈 지랄로 취급한다면 대단히 편견에 휩싸인 아둔한 주장이 될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그리 비싸지 않은 맛있은 음식이 많기 때문이고 미식가들이나 식도락가들이 전부 부자도 아니며 건전한 취미생활의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귀족과 사회 엘리트 집단의 음식 문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것이 거부감이 든다기보단 별다를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봐야 하겠다. 책을 쓰는 양식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과거엔 어떤 주제를 다룰 때 대다수 민중보다는 특정한 계층의 문화를 주로 다뤘다. 분명히 거기에는 평범한 사람이 소수의 엘리트 계층의 문화를 흉내 내려는 심리와 욕망이 표출된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그 양상은 조금 변했다. 여전히 우리는 역사책에서 영웅이나 귀족을 공부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역사책에선 좀 더 보편적인 사람들이나 소수자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책을 읽은 사람 대다수가 보통사람이고 그들은 보통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며 또 어떤 특정한 문화가 소수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유지되었던 것은 과거 지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죄부처럼 이 책의 제목은 <미각의 역사>라고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이 <음식의 역사>정도만 됐어도 뭔가 부당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이 전부 특정 계층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적어도 보통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한 챕터를 중국의 음식 문화 (대략 명에서 청나라까지)를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깊이는 그다지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서양 음식사라고 해도 다름이 없겠다.
서양음식, 즉 프랑스 음식이 세계 곳곳에 전파된 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우리 음식을 먹고 있다. 그 이유가 책에서는 다른 문화권의 음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우리 입맛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도판은 책을 읽을 때 흥미를 부여하고 텍스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도판도 많지만, 그에 비해 본문과 별 상관없는 도판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약간 아쉬움을 남긴다. 또 몇몇 글에선 지나치게 전문용어를 마구 쏟아내서 도대체 이게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글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거기에 글이 전체적으로 명료하고 깔끔하다기보다 약간 산만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저자가 쓴 것을 엮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흥미로운 책은 틀림없으나 좀 더 포괄적인 음식 문화사를 다룬 책이 아니라서 아쉽긴 해도 우리가 지금 흔하게 먹고 마시는 음식의 기원이나 음식과 관련된 외식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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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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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 리뷰 쓰기가 참 어렵다. 정말 재밌게 읽긴 했는데 너무 큰 이야기고 책을 덮고 나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리뷰를 올리기 전에 이 말부터 해야겠다. 왜 다른 리뷰에선 이 책의 양장 상태가 허술한지를 말하는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외형은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장 책의 그 쓸데없이 튼튼함이 싫은 사람이다.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건 좋은데 가격 비싸고 읽기 불편해서 싫었다. 이 책도 양장인데 놀라울 정도로 표지가 허술하게 제작됐다. 내가 양장 책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허접하게 만든 책은 처음이라 좀 놀랐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을 때마다 앞표지가 뜯겨 나갈 것 같은 불안감에 진짜 조심조심 마치 수천 년 된 고서를 읽는 것 마냥 다루었다. 급기야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뤘는데도 앞표지가 너절해져서 노숙자 면상 포스를 자랑하니…. 얼른 반납하고 사버렸다. 물론 책이 맘에 들어서 샀긴 했지만, 혹여나 도서관에 들어온 책만 불량인가 했는데, 산 책도 마찬가지였다.
아. 책값도 딱히 싼 것도 아니고 평균 수준인데…. 왜 그렇게 양장이 허술한가요? 두 번만 읽으면 표지가 뜯겨 나갈 기세다. 그럴 거면 그냥 양장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별점에서 별하나 감점 이유는 순전히 양장의 문제이다. 

뭐 어쨌든 책 내용은 무척 좋다. 내가 이 저자의 스승인 '존 키건'의 <2차 세계대전사>를 읽었는데 참 힘들었다. 특히 힘든 부분이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서 문장을 읽어내려가다가 자꾸만 주어를 놓치는 거다. 예전에 '도리스 레싱'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는데 전쟁사를 읽으면서 그러고 있으니 좀 짜증이 났다. 그래서 영국의 전쟁학자들은 이렇게 글을 쓰나? 생각했는데 '엔서니 비버'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이 사람도 소설가여서 문장이 평범하진 않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존 키컨'보다 훨씬 편했다. 

스페인 내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전쟁은 한때 방귀 뀌어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던 왕족과 군부 꼰대, 자칭 애국자들과 그리고 지옥 간다고 사람들 협박해서 피를 쪽쪽 빨아먹었던 가톨릭 세력이 합세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전쟁이다. 이에 내전 내내 그다지 큰 도움은 안 되고 오로지 공산주의 전파에 힘썼던 소련의 원조를 받은 공화군이 맞서 싸운다. 공화군 세력은 초기에 아나키스트와 기타 등등의 힘이 강했지만,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결국 이 내전에서 패하게 된다. 이때쯤은 스탈린은 군부 숙청을 시작했고 머지않아 히틀러에게 속아서 손을 잡았다고 호되게 당할 예정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국민군은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는다. 히틀러는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새로운 군사기술과 무기들을 대량으로 실험할 수 있었고 전쟁 전 시선을 돌리는데도 성공했고 전쟁 준비에 쓰일 오일과 광물자원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솔리니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그냥 도와준다. 이건 좀 미스터리인데…. 내 생각엔 무솔리니는 시대의 바보, 멍청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영악한 살인자보다 바보, 멍청이 살인자가 조금은 낫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럼 영국과 프랑스는 뭘 했느냐? 눈치만 살살 보며 불간섭조약 같은, 있으나 마나 한 조약을 구실로 그저 구경만 했다. 미국은 중립을 선택했지만 여기저기 무기 팔아먹어 돈 좀 챙겼다.

우리가 좋아할 대목은 다음부터도 세계 각지의 젊은이가-그래도 유럽이 가장 많았겠지만- 파시스트에 맞서서 국제 여단을 조직해 싸웠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전쟁이 한 2-30년 전쯤, 혹은 50여 년, 100여 년 전쯤에 일어났다면 그런 불의?에 맞서서 조직된 군대가 감동적인 승리를 쟁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 내전은 현대전의 양상을 띠었다. 대규모 폭격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공수부대의 개념이 도입됐으며 전차의 전투가 중요하게 대두하였다.

이 내전에서 공화국은 왜 질 수 밖에 없었나?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지원했던 가장 큰 힘은 소련뿐이었다는 점이다. 거기에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지도층이 합세했고 또 가장 큰 세력인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스트와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국제 여단도 그랬다.
물론 뭐 이건 너무 간략한 요약이고 내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다. 또 내전은 더 복잡하기 때문에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다. 

우리가 스페인 내전에 묘하게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의 부제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념이란 이념은 모조리 충돌하는 역사적인 시점이라는 점이다.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왜 그 수많은 젊은이가 자국의 전쟁도 아닌데 피 흘리며 목숨을 바쳤을까? 이 대목에선 꽤 가슴이 뭉클해지긴 하다. 그것도 잠시 나는 책을 덮고 나서 좀 혼란스러웠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이념과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을 자신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나서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는 더 복잡해진다. 또 사람들은 때때로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고 찬반양론으로 서로 헐뜯고 싸운다. 그게 내가 나이를 먹어서 어릴 때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시기가 매우 암울하고 막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어떤 신념에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뛰어들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뿐이다.

이 책은 무섭다. 잔인하고 흉포한 책이다. 그 내용이 너무 소름끼치기도 하다. 종종 나는 이런 전쟁사나 잔혹한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그 시대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다행이다.'라는 한심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나마 간간이 문장들이 웃겨서 다행인 것 같다. 전쟁사를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쓰는 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나중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스페인 내전을 자세히 다루는 책은 이 책뿐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만하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역사는 규정되는 게 아니라 질문되어야 한다면 여러분도 그 역사를 읽어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이제 세계사 교과서에서 간략하게 역사를 배우는 시기가 지났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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