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리뷰 쓰기가 참 어렵다. 정말 재밌게 읽긴 했는데 너무 큰 이야기고 책을 덮고 나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리뷰를 올리기 전에 이 말부터 해야겠다. 왜 다른 리뷰에선 이 책의 양장 상태가 허술한지를 말하는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외형은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장 책의 그 쓸데없이 튼튼함이 싫은 사람이다.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건 좋은데 가격 비싸고 읽기 불편해서 싫었다. 이 책도 양장인데 놀라울 정도로 표지가 허술하게 제작됐다. 내가 양장 책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허접하게 만든 책은 처음이라 좀 놀랐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을 때마다 앞표지가 뜯겨 나갈 것 같은 불안감에 진짜 조심조심 마치 수천 년 된 고서를 읽는 것 마냥 다루었다. 급기야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뤘는데도 앞표지가 너절해져서 노숙자 면상 포스를 자랑하니…. 얼른 반납하고 사버렸다. 물론 책이 맘에 들어서 샀긴 했지만, 혹여나 도서관에 들어온 책만 불량인가 했는데, 산 책도 마찬가지였다.
아. 책값도 딱히 싼 것도 아니고 평균 수준인데…. 왜 그렇게 양장이 허술한가요? 두 번만 읽으면 표지가 뜯겨 나갈 기세다. 그럴 거면 그냥 양장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별점에서 별하나 감점 이유는 순전히 양장의 문제이다. 

뭐 어쨌든 책 내용은 무척 좋다. 내가 이 저자의 스승인 '존 키건'의 <2차 세계대전사>를 읽었는데 참 힘들었다. 특히 힘든 부분이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서 문장을 읽어내려가다가 자꾸만 주어를 놓치는 거다. 예전에 '도리스 레싱'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는데 전쟁사를 읽으면서 그러고 있으니 좀 짜증이 났다. 그래서 영국의 전쟁학자들은 이렇게 글을 쓰나? 생각했는데 '엔서니 비버'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이 사람도 소설가여서 문장이 평범하진 않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존 키컨'보다 훨씬 편했다. 

스페인 내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전쟁은 한때 방귀 뀌어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던 왕족과 군부 꼰대, 자칭 애국자들과 그리고 지옥 간다고 사람들 협박해서 피를 쪽쪽 빨아먹었던 가톨릭 세력이 합세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전쟁이다. 이에 내전 내내 그다지 큰 도움은 안 되고 오로지 공산주의 전파에 힘썼던 소련의 원조를 받은 공화군이 맞서 싸운다. 공화군 세력은 초기에 아나키스트와 기타 등등의 힘이 강했지만,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결국 이 내전에서 패하게 된다. 이때쯤은 스탈린은 군부 숙청을 시작했고 머지않아 히틀러에게 속아서 손을 잡았다고 호되게 당할 예정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국민군은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는다. 히틀러는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새로운 군사기술과 무기들을 대량으로 실험할 수 있었고 전쟁 전 시선을 돌리는데도 성공했고 전쟁 준비에 쓰일 오일과 광물자원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솔리니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그냥 도와준다. 이건 좀 미스터리인데…. 내 생각엔 무솔리니는 시대의 바보, 멍청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영악한 살인자보다 바보, 멍청이 살인자가 조금은 낫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럼 영국과 프랑스는 뭘 했느냐? 눈치만 살살 보며 불간섭조약 같은, 있으나 마나 한 조약을 구실로 그저 구경만 했다. 미국은 중립을 선택했지만 여기저기 무기 팔아먹어 돈 좀 챙겼다.

우리가 좋아할 대목은 다음부터도 세계 각지의 젊은이가-그래도 유럽이 가장 많았겠지만- 파시스트에 맞서서 국제 여단을 조직해 싸웠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전쟁이 한 2-30년 전쯤, 혹은 50여 년, 100여 년 전쯤에 일어났다면 그런 불의?에 맞서서 조직된 군대가 감동적인 승리를 쟁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 내전은 현대전의 양상을 띠었다. 대규모 폭격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공수부대의 개념이 도입됐으며 전차의 전투가 중요하게 대두하였다.

이 내전에서 공화국은 왜 질 수 밖에 없었나?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지원했던 가장 큰 힘은 소련뿐이었다는 점이다. 거기에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지도층이 합세했고 또 가장 큰 세력인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스트와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국제 여단도 그랬다.
물론 뭐 이건 너무 간략한 요약이고 내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다. 또 내전은 더 복잡하기 때문에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다. 

우리가 스페인 내전에 묘하게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의 부제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념이란 이념은 모조리 충돌하는 역사적인 시점이라는 점이다.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왜 그 수많은 젊은이가 자국의 전쟁도 아닌데 피 흘리며 목숨을 바쳤을까? 이 대목에선 꽤 가슴이 뭉클해지긴 하다. 그것도 잠시 나는 책을 덮고 나서 좀 혼란스러웠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이념과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을 자신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나서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는 더 복잡해진다. 또 사람들은 때때로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고 찬반양론으로 서로 헐뜯고 싸운다. 그게 내가 나이를 먹어서 어릴 때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시기가 매우 암울하고 막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어떤 신념에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뛰어들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뿐이다.

이 책은 무섭다. 잔인하고 흉포한 책이다. 그 내용이 너무 소름끼치기도 하다. 종종 나는 이런 전쟁사나 잔혹한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그 시대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다행이다.'라는 한심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나마 간간이 문장들이 웃겨서 다행인 것 같다. 전쟁사를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쓰는 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나중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스페인 내전을 자세히 다루는 책은 이 책뿐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만하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역사는 규정되는 게 아니라 질문되어야 한다면 여러분도 그 역사를 읽어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이제 세계사 교과서에서 간략하게 역사를 배우는 시기가 지났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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