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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박물학자
로버트 헉슬리 지음, 곽명단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서점에 눈팅하고 너무 근사한 책이라 읽고 싶었지만 사서 읽기엔 좀 그렇고, 굳이 가격의 문제는 아니었다. 소장하고 읽을 정도로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 읽었다.
일찍이 앨리스가 그림 없는 책은 시시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은 진리다. 물론 그림 없는 책 중에 시시하지 않은 것도 많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도판이 화려한 책은 정말 볼거리가 많지 않은가? 그 도판이 그림일수록 우리의 눈은 정말 즐겁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다윈까지 기원전부터 19세기까지의 유명한 박물학자에 대한 기록이다. 좀 훑어 보면 그 내용이 다소 단조로운 건 사실이다. 꼭 무슨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같은 분위기랄까. 각각의 위인들이 양력과 주요 업적들을 요약해놓은 식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많이 따분했던 게 이런 방식의 단조로운 내용 구성 때문이다. 물론 중간마다 흥미로운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정규교육을 안 받았지만, 오늘날 사용하는 일반적인 현미경을 개발한 인물이나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박물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던가 흥미로운 이야기도 다수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이 책의 내용은 좀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점에 가서 이 책을 펼쳐보면 놀라울 정도로 멋진 도판이 가득 실려 있어서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거다. 나도 그랬으니깐…. 역시 도감은 사진보다는 세밀화가 오억 만 배 예쁘고 탐난다. 그러니 그 옛날에도 그 도감이 어려운 내용을 담았음에도 잘 팔리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미각의 역사>를 만든 출판사 책인데, 한가지 칭찬할만한 것은 책값이 비싸긴 하지만 양장이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화려한 도판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책도 180도로 쫙쫙 펴지고 양장 방식도 튼튼하고 꼼꼼하다. 요즘에 말이 양장이지 정말 허접스럽기 짝이 없는 양장도 많은데 이 녀석은 정말 튼튼하다.
큼직한 도판을 시원스럽게 실은 것도 좋았다. 도판의 인쇄상태도 내가 뭐 이런 걸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내 눈에는 색감이나 인쇄질이 아주 맘에 들었다. 또 옛날 책 느낌이 나게 세심하게 편집한 것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좀 더 박물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책을 채웠더라면 덜 지루했을 것이다.

개양귀비 P.52
이 그림은 ‘레온하르트 폭스’가 16세기에 출간한 <식물 탐구에 관한 주목할 만한 논평>에 실린 목판화 도판 중 하나이다. 도판에 수작업으로 색칠한 것으로 주로 품삯이 싼 어린아이나 여성이 채색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책에서 스캔한 것은 아니며 웹에서 내려받았다.

이 그림도 역시 웹에서 내려받았다. 17세기 곤충학자이자 박물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그린 수채화 중 하나이다.
서양의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등 인간의 삶과 밀접한 모든 것을 다룬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공통 요소가 나오는데 그것은 종교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뚜렷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이 박물학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종교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양사람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느냐 부정적으로 작용했느냐 요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단순하게 이러쿵저러쿵 섣불리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박물학에서 종교는 성서를 과학서쯤으로 올려놓음으로써 그 발전을 가로막았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맹목적인 종교의 믿음은 사람을 얼마나 아둔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서양의 문화에서 종교는 빛이면서 어둠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두운 면이 두 개 더 있었다. 하나는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활동했던 시기가 제국주시대였고 몇몇 박물학자는 노예제도와 착취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그들의 박물학 유산은 그 착취를 통해 얻어진 부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물학의 대중적 인기는 무분별한 포획을 성행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멸종한 종을 우리는 겨우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멸종은 환경오염과 포획때문이다.
쓰다 보니 결론이 이상해졌다.ㅎㅎㅎ 어쨌든 박물학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시대는 박물학이 아니라 자연을 보전하는, 더 나아가 복원하는 학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