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 동서양을 넘나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을 매혹한 세계미술사
줄리언 벨 지음, 신혜연 옮김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가 흔히 책을 소설과 비소설로 나누는데, 읽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소설은 이해를 요구한다기보단 공감을 요구한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사건과 인물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공감해야 그 소설을 완전히 받아 드릴 수 있으며 그 안에서 감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소설에서 특히나 그것이 교양서라면 공감보다는 이해해야 한다. 즉 여러분이 A라는 영화를 봤다고 치자. 친구한테 전화 걸어서 A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할 때 친구가 A라는 영화를 봤다면 소설처럼 이야기해야 하고 보지 않았다면 비소설처럼 얘기해야 한다. 즉 그 친구가 영화를 봤다면 그 장면 좋지 않았느냐? 난 그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 것 같아. 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겠지만 보지 않은 친구에게는 그런 공감보다는 그 영화가 뭔지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장황한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나를 이해시키기보단 동등한 혹은 얼추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책을 읽으며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미술, 세상에 홀리다-줄리언 스팰딩>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읽는데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다. 그러니깐 미술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혹은 아는 게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

또 이런 서술 방식에 더해서 이 책이 다루는 미술사는 동서양 전체를 포괄하고 있으며
(내 생각엔 그래도 서양을 더 많이 다룬다.) 그 서술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보다는 핵심만 짚고 넘어가는 식이다. 물론 이 책이 미술사 특강 요점정리 같은 성격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인들과 커피숍에 둘러앉아 미술 전반에 관해 좀 더 사적이고 폭넓은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 수다에 끼려면 좀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미술 자체가 아닌 미술가의 사적이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예를 드러나는 카라바조가 좀 별난 인물이란 건 알았지만 한 남자를 살해하고 도망 다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아무래도 처음 읽은 서양미술사에서 곰브리치 교수는 그림 자체에만 집중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런 미술 외적인 이야기는 잘 몰랐다. 사실, 또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나는 미술관에 미술을 감상할 때 해설을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런 해설이 내가 미술 작품을 보는데 어떤 편견을 줄까 봐 겁이 나서다. 대신 그 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예습하고 간다. 아마도 곰브리치 교수의 <서양미술사>에서 이런 미술 외적인 사건을 전혀 언급 안 한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또 그것으로 어떤 편견이 생겨 미술작품을 대하는 관람자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까 봐 우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예술가 중에 별난 사람이 참 많아서 그의 사적인 정보가 두터운 편견으로 자리 잡을 때가 잦다. 사실 그런 태도는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순수하게 어떤 한 예술가의 결과물만 가지고 평가하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반대의 역효과도 종종 자아낸다. 즉 한 인물의 사적인 선행이나 좋은 이미지가 그의 작품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아무튼 이 부분은 좀 주의를 해야 한다.

두 번째 선택한 미술사 책이 좀 버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도 약간은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아주 조금은 나도 미술사를 아는 걸까? 어쨌든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입문서로는 이 책은 좀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이 책 뒤에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저자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언급하면서 추천해주고 있다. 입문서로 아주 좋다는 말이다. 이 책은 좀 더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좀 더 지식이 많아지고서 다시 읽어보면 더 많은 부분이 공감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벌써 세 번째 미술사 책을 빌렸다.ㅎㅎㅎ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은 아쉬운 점인데 이 책의 도판은 요즘 나오는 책 답게 아주 좋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사실 옛날에 나온 미술책과 비교하면 요즘 미술책 도판이 아주 좋다. 문제는 꽤 다수의 도판이 흑백이다. 처음엔 그게 원래 흑백인가 싶었다. 원본이 소실돼서 흑백사진이나 판화 같은 걸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깐, 근데 웹에서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자는 책 안에서 색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근데 왜 흑백 도판을 실었을까? 좀 의아하다. 그거 빼곤 도판의 상태는 아주 좋고 책 제본도 무척 튼튼하다. 종이질도 아주 고급 같은데 너무 질 좋고 두꺼운 종이라 텍스트를 보기엔 눈이 좀 아프다. 아마도 도판 때문에 그런 종이를 선택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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