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역사
폴 프리드먼 지음, 주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서점에서 봤을 때, 그 화려한 도판에 맘이 뺏겼다. 또 대충 훑어보면서 이 책은 음식을 통한 인문학을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음식사를 통한 인문학은 아니었다. 책의 제목 그대로 미각, 즉 보편적이기보다는 미식가들의 역사를 더 중점적으로 다뤘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선사시대 때 우리는 무엇을 먹었나? 하는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하지만, 곧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 중세와 르네상스 이후를 거쳐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온갖 화려한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로 미식가도 아니면 미각에 대한 특별히 경외감이나 관심이 부족한 나로선 이른바 돈 있는 놈들의 돈 지랄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대단히 아쉽게도 이 책은 음식 문화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인문학 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의 목차 뒤에 실린 이 그림은 15세기 말에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의 한 작품이다. 책을 펼쳤을 때, 이 신비롭고 화려한 그림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이 그림과는 다르지만 똑같은 연작 작품 중 하나는 유명한 책인 <미술, 세상에 홀리다>의 표지로 쓰였다.)

미식과 미각을 부자들의 돈 지랄로 취급한다면 대단히 편견에 휩싸인 아둔한 주장이 될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그리 비싸지 않은 맛있은 음식이 많기 때문이고 미식가들이나 식도락가들이 전부 부자도 아니며 건전한 취미생활의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귀족과 사회 엘리트 집단의 음식 문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것이 거부감이 든다기보단 별다를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봐야 하겠다. 책을 쓰는 양식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과거엔 어떤 주제를 다룰 때 대다수 민중보다는 특정한 계층의 문화를 주로 다뤘다. 분명히 거기에는 평범한 사람이 소수의 엘리트 계층의 문화를 흉내 내려는 심리와 욕망이 표출된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그 양상은 조금 변했다. 여전히 우리는 역사책에서 영웅이나 귀족을 공부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역사책에선 좀 더 보편적인 사람들이나 소수자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책을 읽은 사람 대다수가 보통사람이고 그들은 보통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며 또 어떤 특정한 문화가 소수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유지되었던 것은 과거 지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죄부처럼 이 책의 제목은 <미각의 역사>라고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이 <음식의 역사>정도만 됐어도 뭔가 부당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이 전부 특정 계층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적어도 보통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한 챕터를 중국의 음식 문화 (대략 명에서 청나라까지)를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깊이는 그다지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서양 음식사라고 해도 다름이 없겠다.
서양음식, 즉 프랑스 음식이 세계 곳곳에 전파된 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우리 음식을 먹고 있다. 그 이유가 책에서는 다른 문화권의 음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우리 입맛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도판은 책을 읽을 때 흥미를 부여하고 텍스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도판도 많지만, 그에 비해 본문과 별 상관없는 도판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약간 아쉬움을 남긴다. 또 몇몇 글에선 지나치게 전문용어를 마구 쏟아내서 도대체 이게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글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거기에 글이 전체적으로 명료하고 깔끔하다기보다 약간 산만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저자가 쓴 것을 엮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흥미로운 책은 틀림없으나 좀 더 포괄적인 음식 문화사를 다룬 책이 아니라서 아쉽긴 해도 우리가 지금 흔하게 먹고 마시는 음식의 기원이나 음식과 관련된 외식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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