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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평점 :
90년대 학급문고에서 스릴러와 호러, 순정만화를 주로 읽으며 자란 저자는
하이텔부터 인터넷까지, 지금도 이곳저곳을 떠돌며
다양한 장르 소설을 읽고 쓰는 중입니다.
늑골(rib), 폐(lung), 심장(heart)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한 조각씩 떼어 와
지은 필명이며 '어떤 식으로든 가슴에 닿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제1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를 보겠습니다.
주인공 서주는 친척도 아니고 지금까지 키워준 할머니가 내준 등록금으로
대학을 합격했으나 아직 졸업을 못 했고, 장학금을 못 받아 휴학 중이며,
오후 3시부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 늦게 버스 타고 집에 옵니다.
서주를 키운 할머니의 주 수입원은 커다란 단독주택 빈방들입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연 있는 흉가를 목전에 둔 꼴입니다.
나무 문짝들도 조금씩 휘었고, 곰팡이가 많고, 습하고, 서늘하고, 덥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오래 묵은 세입자들이 돈을 모아 떠났고,
월세를 낮춰도 새 세입자는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지옥이랑 계약을 했답니다.
지옥이 리모델링하느라 죄인들 둘 데가 모자란대서 빈방이랑 남는 공간을 빌려줬대요.
죄인들이 복도를 한 번씩 오가고,
빈방을 함부로 열면 험한 꼴 볼 수 있다고 주의를 줍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을 못한 서주는 임차인으로
세상에 나타난 '지옥'을 만나게 됩니다.
이 집에 들어오기도 전인 아주 옛날, 경찰이 할머니의 장남을 끌고 나갔다고 합니다.
출소 후 할머니를 볼 면목이 없었는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떠돌다
교통사고 자해공갈 실패로 죽었답니다.
지금은 없는 세입자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로
그 때문에 할머니는 경찰을 두려워합니다.
둘째 아들은 매번 돈을 돌라고 하다가
몇 년 전 절대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서주가 일하는 주변 식당에서
인상착의가 비슷한 남자를 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불안해합니다.
서주는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들과 일 마치고 술을 먹고
12시를 넘겨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문이 잠겨있어 담을 넘고, 현관문까지 잠겨 있어서 살펴보는데,
반지하로 통하는 작은 철문이 있습니다.
잠겨 있지 않아 문을 열자 방치된 연탄이 쌓여 있고
집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작은 문이 보여서 문을 열였더니 작은방으로 연결됩니다.
불빛은 부드러웠지만 어둠 속에서 나온 터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인기척이 들려서 집주인 손녀인데, 현관문이 잠겨 있어서
창고 문으로 들어왔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지나가라고 합니다.
서주는 눈을 천천히 떴고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보고 방긋 웃습니다.
손에 쇠꼬챙이를 들고, 이 남자 뒤에 의자에 묶인 채 발버둥 치는 또 다른 남자가 있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로 엄지손가락만 한 뿔 두 개가 보여서
악마냐고 물었더니 인사를 합니다.
자신이 할머니와 계약서를 작성했다며 가능한 조용히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불편사항이 있다면 쪽지를 남기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미숫가루를 타주고, 맥주도 주고, 할머니 몰래 문도 열어주며
서주에게 악마는 잘해줍니다.
왜 그런지를 물었더니 악마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좋아한다며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그것을 줄 수 있으며,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유치한 전능감을 느낀답니다.
자신은 서주가 좋아하는 것을, 서주를 웃게 할 수 있는 걸 전부 할 거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녀를 파멸로 몰아간다고 해도, 원치 않아도요.
악마와 서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에서 확인하세요.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래서 지옥을 상상하는 이야기와 그림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을 직접 본 사람은 없기에 보통 사람들은 지옥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지옥이 눈앞에 있다면, 그것도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산다면 어떨까요.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의 죄인들처럼 벌을 받으며 복도를 다니고,
닫힌 문에서 비명 소리와 잘못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만약 지옥에 끌려갔을 때 나는 무고한 인간이라며 악마를 설득할 자신은 없습니다.
게으름 피운 자, 욕설을 한 자,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받은 자, 거짓말을 한 자 등등
그 모두에게 맞춤형 지옥이 준비되어 있다면, 대체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지옥을 피할 수 있을까요.
지옥에게 임대를 내준 할머니는 우리 사는 데가 다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명줄 두고 버티려면 돈으로 디딤돌을 쌓아 계속 뛰어야 하는 꼴이
지옥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요.
어지간해서는 비틀어지지 않는 지옥 같은 일상을
그래도 조금은 괜찮다고 느끼며 살기 위해 인간들은 오늘도 용을 씁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온 자신을 칭찬하고 위로해야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