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 건들건들 컬렉션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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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하마모토 다카시는 일본 가가와현에서 태어나 

지겐 대학에서 유럽문화권과 비교문화론을 공부했습니다. 

긴사이 대학 문화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명예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자 스가노 미치나리는 일본 후쿠야마현에서 태어나 

만하임 대학에서 결투문화사와 독일어권 사회문화사를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교토 외국어 대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두 명의 저자가 쓴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를 보겠습니다.



2020년인 지금도 일부 학생들이 진검 결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독일 학생의 결투인 멘주어는 약 90센티미터의 예리한 진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마주 선 상대의 얼굴과 머리를 공격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고 발을 움직이거나 얼굴을 젖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불과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꼿꼿하게 마주 서서 오로지 칼만 휘둘러야 하니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멘주어는 중세의 결투처럼 원한을 갚거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라 결투가 끝난 후 두 결투자는 동료가 됩니다. 도대체 멘주어가 남성에게 사랑받으며 오늘날까지 중요한 전통으로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류 역사상 첫 결투는 언제였을까요. 유럽에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의 대결을 유럽에서는 결투의 기원으로 여깁니다. 진검을 쓰는 결투의 기원은 고대 로마 및 고대 게르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검을 글라디우스라고 하고, 검투사를 글라디아토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글래디에이터는 이를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중의 눈앞에서 목숨을 걸고 무기를 휘두르며 싸웠던 노예 검투사였습니다. 고대 게르만 사회는 개인과 씨족의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사적 결투인 '페데'를 인정했습니다. 기독교 출현 이전의 고대인은 신이 수복, 물, 불, 성별된 음식으로 선악을 판단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중세 이후 기독교 사상과 융합해 신명 재판이 됩니다. 신명 재판은 불 재판, 물 재판, 음식 재판, 제비뽑기 재판 등으로 나뉘며, 결투 재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기사 계급은 기독교와 결부되었고, 기사단도 존경받는 집단으로 변해갔습니다. 기사도가 생겨났고 명예 결투란 것도 나타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스포츠와 신사도가 보급되어 결투를 칭송하는 분위기가 사라졌으나 남유럽 사람들은 결투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유럽의 결투 금지령과 근대 계몽사상과 합리주의의 대두로 재판도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결투가 살아남았는데요, 그 이유를 역사와 더불어 설명합니다. 결투가 스포츠로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자면, 사회 집단에서 생겨난 알력이 결투가 되고, 이것이 신명 재판, 페데, 결투 재판을 걸쳐 진검(권총) 결투로 변했고 펜싱으로 바꿨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나, 결국 결투의 뿌리는 인규의 근원적인 생존 본능, 경쟁심, 명예심일 것입니다. 유럽의 스포츠는 왕과 귀족이 즐겼던 기마 창 시합이나 사냥에서 유래한 승마, 펜싱, 양궁, 사격 등의 종목과, 민간의 민속 행사나 축제, 또는 단체, 협회, 클럽의 오락에서 출발한 크리켓, 골프, 테니스, 축구 등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테니스와 축구는 근대 공립학교의 체육이나 클럽의 오락에서 유래했습니다. 근대 스포츠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많은데,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식민주의의 대표 주자였던 영국은, 7개의 바다를 지배하며 자국의 스포츠 문화를 급속히 보급했습니다. 식민지의 민심을 장악하는 데 스포츠가 제공하는 오락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에 열중했을 때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건전한 사회적 카타르시스는 비일상 공간을 만들어 일상의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발산하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스포츠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감정은 정치와 결부되면 큰 반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나치 전당 대회 같은 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장에서 감정이 폭주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국가주의를 초래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특정 인종의 선수를 향한 인종 차별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단 이런 국가주의와 인종주의는 감정적인 반응이라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확 줄어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포츠에서 발생한 감정을 일부러 정치와 결부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스포츠는 공평한 규칙에 기초한 인간의 도전입니다. 다만 이것은 원래 선수의 출신이나 인종을 따지지 않는 개인 간의 경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오늘날 패럴림픽 정신은 우리에게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투에는 선악 판단, 명예 회복, 투쟁심 해소, 신명 재판 등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의미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결투 안에 종교, 정치, 사회 규범 등이 깊이 개입해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가 되자 결투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고, 그 역할을 법적 재판과 스포츠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했기 때문에 결투는 분해되고 해체되어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에서 결투가 스포츠로 변하는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결투가 소멸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분쟁이 재판이나 스포츠로 대체되고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전쟁은 여전히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없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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