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ㅣ 금강인문총서 2
석길암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심난하지 않고 무척 편했다. 그것은 이 책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이 책속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어찌보면 종교란 인간의 공짜심리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주지않으면서 오로지 뭔가를 받고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인간은 강요받기를 싫어한다. 아무리 좋은 종교도 누군가 강요하면 왠지모르게 반발하고 발뺌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불교에 관한 책이면서 불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종교책이지만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양서임에 틀림없다. 전체를 이야기 하면서 부분적인 불교상식도 갖추고 있어 산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뒷표지에서도 얼핏 나와 있듯이 저자는 "이미 존재했던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면서 불교에 의해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대만, 티벳, 동남아시아 일부)에서 불교의 위치는 빼놓을 수없는 중심축에 있으며 바로 문화로 직결되어 있다. 저자는 그런 불교의 화려했던 역사적 위치와 침잠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상식적인 애기일지 모르나 고대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는 인도의 북쪽지역을 경유하여 전파된 북방불교(대승불교)와 남쪽지역으로 전파된 남방불교(소승불교)로 크게 대별된다. 이 중 대승불교는 실크로드(비단길)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때부터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문화적 개념이 정착되었다.
한때 불교에 심취해서 3경3게(천수경,반야심경,금강경,법성게,화엄경약찬게,무상게)를 암송하고 다닌 적이 있다. 비록 능엄경과 천주팔양신주경까지 욕심내다 마군에 무릎꿇고 사도(私道)에 빠져 형편없이 전락(轉落)해 버렸지만 아직도 불교를 생각하면 돌아온 탕자처럼 믿는 구석이 남아있다. 이 책에서도 역경(譯經)의 역사를 소개하며 구마라집과 현장법사 그리고 위경(僞經) 부모은중경과 천주팔양신주경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보통 읽는 한문섞인 금강경이 바로 서역 구자국(龜玆國,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쿠차 현) 출신인 구마라집(344-409)의 한역본이다. 구마라집의 일화가 재미있다. 구마라집이 죽음에 임박하여 대중앞에서 맹세하길 "만약 내가 번역한 것이 잘못됨이 없다면 나를 화장한 후에도 내 혀만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오직 그의 혀만은 재가 되지않아서 그의 혀를 모신 사리탑을 장안 초당사에 세웠다고 한다.(33p) 현장법사는 서유기의 삼장 현장법사로 잘 알려졌는데 그가 벌인 역경사업이 너무 방대하고 영향이 커서 현장이전의 번역을 구역(舊譯), 현장의 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를 정도였다.(38p) 여기서 삼장(三藏)이란 경과 율과 논의 삼장에 달통한 자를 지칭한다고 한다.(30p)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승경전과 보살에 대한 설명도 역사적 배경을 통해 잘 설명되어 있고, 구족계를 포기하고 노동을 택한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540-594)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출가 승려는 네가지 규칙(四依)을 지켜야 했는데 사의란 분소의(糞掃衣), 수하주(樹下住), 걸식(乞食), 진기약(陳棄藥)을 말한다. 분소의는 시체감싼 천이나 분(똥)을 닦은 천으로 만든 옷이고, 수하주는 집없이 나무아래서 머무는 것이며, 걸식은 재가자의 호의에 의존하여 먹는 것을 말하고, 진기약은 소의 소변으로 만든 약으로 출가자는 이것만 약으로 사용할수 있었다.(105p) 이러한 기본생활 규정에 의하여 일체의 세속적 직업이나 생산노농을 금지했던 구족계를 포기하고, 일체의 비전(悲田,중생)과 경전(敬田, 삼보) 공양하고 중생구제를 위해 노동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인도불교와 다른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특징이라는 구절은 감동스럽기 그지 없었다.. 아울러 마지막 부분에 불국사의 석가탑(무영탑)과 다보답의 이불병좌(二佛竝座)를 거론하며 화엄경의 연화장세계해를 신라인들이 화엄불국으로 재창조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