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집 1 안데르센 동화집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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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겁던 한여름의 열기못지 않게 한 달 넘게 책장을 접었다 폈다 지지부진하게 읽었던 장 폴 샤르트르의 <구토>를 다 읽고 한마디 외쳤다. 자! 이젠 <안델센 동화집>을 읽자.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렵다는 실존주의 철학자의 소설을 완독 후 동화책이라니. 그러나 인생이란 그 보다 더 아이러니하지 않을까. 먼 곳을 돌고 돌아 수많은 세월을 헤집고 돌아와 그렇게 다시 이 동화집을 집어 들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를 줄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유치찬란할 뿐이다. 그냥 다시 찾은 인연처럼 옛생각에 잠기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공간이 사라지고 잊혀졌던 기억들이 춤을 추며 아련한 상념과 옛추억들이 어루만져 질 것이다. 책이 없었던 초등학교시절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동화집이 바로 이 <안델센 동화집>이었다. 다리가 없는 앉은뱅이 책상위에 세칸짜리 나무 책꽂이가 있었고 그 위에 노란색표지의 3권짜리 <안델센 동화집>이었다. 그 이야기들 중에 압권은 역시 <인어공주>이었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때문에 슬퍼했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에 선하다. 그렇게 다시 찾은 <인어공주>는 익산역에서 무궁화를 타고 읽기 시작하여 논산역을 지나칠 무렵 다 읽었다. 그리고 <백조왕자>로 기억되어 있던 <들판의 백조>를 읽으니 어느새 하차역인 서대전역에 와 있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인어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 곳 성벽은 산호로 쌓여 있고 위가 뾰족한 높은 창은 한없이 투명한 호박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은 조개겁데기로 만들어져 있지요. 그 성에 인어 임금님이 왕비을 잃고  몇해째 혼자 지내고 있었고, 늙으신 임금님의 어머니는 여섯 명의 어린공주들을 무척 귀여워하셨답니다. 그중에서도 막내공주가  가장 사랑스러웠어요. 공주들은 바다 밖의 세상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즐거워했고 열 다섯 살이 되면 바다 위로 올라갈 수 있었어요. 다섯 언니들이 세상 구경을 한 뒤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드디어 열 다섯 살이 된 막내 공주도 바다 위로 올라갔어요. 해질무렵 구름은 아직 장밋빛과 황금빛으로 빛나고, 분홍빛 하늘에는 초저녁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지요. 바다 위에는 돛이 세개 달린 배가 떠 있었고 배안엔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눈이 크고 검은 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왕자였어요. 밤이 깊어지자 파도가 거칠어지고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배가 집채만한 파도에 부딪쳐 두 동강나고 왕자님도 물속에 빠졌어요. 물속에 빠진 왕자님을 구한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사랑하게 되고 영원히 죽지않은 영혼을 가진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는 마녀를 찾아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댓가로 주고 물고기 꼬리 대신 인간의 다리를 가질 수 있는 물약을 얻습니다. 마녀는 말합니다. "한번 인간의 모습이 되고 나면 다시는 인어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리고 왕자가 자기 부모보다 널 사랑하여 부부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영혼을 얻을 수 없다. 만약 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너는 그 다음날 아침 물거품이 될 것이다"  물약을 먹고 인간의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다시 만나게 되고  왕자님도 인어공주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을 구해준 아가씨를 더 찾는데 벙어리가 된 인어공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왕자님은 이웃나라의 아름다운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왕자님의 사랑스런 신부가 되지 못해 인간의 영혼도 얻지못하고 물거품이 되어야 할 인어공주가 상심에 젖어 있을 때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있는 언니들을 보게 됩니다. 언니들은 말합니다. " 우린 마녀한테 머리카락을 잘라줬어. 너를 살려 달라고. 그랬더니 마녀가 단도를 줬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이걸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야 해. 왕자의 따뜻한 피가 다리에 묻으면 다리는 예전처럼 물고기의 꼬리로 변해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단다. 그리고 죽어서 물거품이 될때까지 300년은 너끈히 우리와 행복하게 살 수 있어. " 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비수로 찌르지 못하고 아침해가 떠오르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답니다. 

  "사라져 버린다는 것"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이고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는 것" 그것은 동화책에 나오는 애기이지만 철학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 적이 있었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새파란 청춘이 있었던가.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이것은 늙은이의 넋두리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젊고 아직도 사라지기엔 이르다. 아니 모두에게 자신은 항상 사라지기엔 이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동화책속에서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속에서도 사라지고 가정에서도 사라지고 기억속에서도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짐은 항상 우리곁에 있다. 사실 동화책도  내 기억속에서 오래동안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몇십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역시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늦기전에 애들에게 권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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