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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 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
혜초 지음, 지안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책이 무척 얇다. 그러나 쥐색표지에 원문으로 가득 매워진 책표지가 너무 멋지다. 보통 불교관련 책은 어렵고 두꺼운데 반해 이 책은 시집처럼 얇고 내용 또한 기행문이라 그런지 크게 어렵지 않다. 저자 혜초스님(704년-787년)은 신라시대에 태어나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인도출신의 밀교승 금강지를 만나 사사받고, 스승의 권유로 인도로 구법여행을 다녀와 이 책을 서술했다.
<왕오천축국전>은 가로 42cm, 세로 28.5cm의 황마지 9장을 이어붙인 종이 두루마리에 총 227행, 5893자의 한자가 필사되어 있는 절략본으로 1908년 중국 감숙성의 돈황 천불동에서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발견했다. 아울러 저자인 혜초가 신라사람으로 밝혀진 것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고 7년이 지난 1915년 일본의 불교학자 다카쿠구 준지로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한다(15p). 그 이전만해도 혜초는 중국의 밀교승으로 불공 삼장의 제자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중천축국에서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진다. 그리고 여기 중천축국 경내에 네개의 큰 탑이 있다. 하나는 사위국(슈라바스티) 급고독원에 있고, 둘째는 비야리성(바이샬리) 암라원에 있으며, 셋째는 가비야라국(카필라바스투)에 있은 것으로 그곳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성이다. 거기서 무우수(無憂樹)는 봤으나 성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넷째는 삼도보계탑으로 중천국의 왕이 사는 성에서 서쪽으로 7일 거리의 두 항하(갠지스) 사이에 있다. 이곳은 부처님이 도리천으로부터 삼도보계가 만들어지자 염부제 땅으로 내려온 곳이다.(53-54p발췌)"
기행문이라 저자는 그 지역의 특색과 불교의 모습만을 간단히 기술하였고, 역자는 원문을 실고 그 원문아래 해설을 뒤붙였다. 급고독원은 금강경에 나오는 "기수급고독원"으로 기원정사라고 부르던 절이다. 제타(한역으로 祇樹)태자가 그 땅의 일부를 기증하고, 수다타(한역으로 須達)장자가 그위에 절을 지어 부처님께 헌납하여 두 사람의 이름을 넣어 절이름으로 삼았다. 수다타는 아나타핀다다(한역 給孤獨園, 외로운 이를 돕는자)라는 별명이 있었다. 아울러 무우수나무는 부처님의 생모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가지에 피어 있던 꽃을 따려다 싯다르타 태자를 낳으셨는데, 어떠한 고통이나 근심도 없이 태자를 낳았기에 무우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리천은 욕계의 여섯 하늘 가운데 아래에서 두번째 하늘이다. 삼십삼천이라고도 하는데, 사방으로 각각 8개의 천계가 펼쳐지고 중앙에 선견천이라는 천계가 있어 모두 합하여 33천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우주를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큰 대륙이 네 개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쪽은 불바제, 서쪽은 구야니, 남쪽은 염부제, 북쪽은 울단월이다. 염부제의 염부는 본래 나무 이름인데, 이 염부나무가 많이 자라 번청한 곳이라는 뜻에서 염부제(閻浮提)라고 하였다. 사바세계, 즉 인간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때로는 섬부주(贍浮州)라 부른다.
책 중간에(61p) 한시가 있다. "편지라도 써서 구름편에 부치고 싶건만.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누가 고향 숲을 행해 날아가려나"라는 구절이 눈에 뜬다. 저자는 마지막 해설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돌보지않고 온갖 고행을 자초한다)라는 말로써 혜초의 고행을 말하고 있다. 8세기 천축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현대인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라고 한다. 혜초나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이외에도 수많은 구법승들이 서행구법(西行求法)여행을 떠났고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법을 위해 그렇게 당당히 걸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종교의 힘인가 인간의 위대함인가. 천년전 그 시절에도 이 가을처럼 단풍들고 낙엽지는 쓸쓸함이 있었을텐데 그 인간적인 옹벽을 넘어 구도행각을 떠났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조용히 합장하고 아울러 이 책을 남긴 스님과 다시 만나게 해준 인연들에 대해 고개숙여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