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허준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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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허준의 동의보감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 허준(許浚 1539~1615)의 삶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이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역사적 기록이 많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의 유년 시절이나 어떻게 의원이 되었는지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 소설 속에 나오는 유지태란 스승도 허구적 인물이라고 한다. 하기는 역사라는 것이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을 알아보고 스스로 그것을 기록할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위인들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발자취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역시 후세 사람들의 사료분석과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허준의 호가 구암(龜巖)이란 사실과 그가 서자(子)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물론 의원이란 신분이 양반 신분이 아니니 중인정도의 신분정도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이 소설을 읽고 또 다른 정보들를 검색하여 그가 서자였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의 청년시절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역사소설은 다른 소설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을 읽기 전 작가의 다른 역사 소설인 <토정비결>를 30대 중반에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감동은 이 책과는 전혀 다랐다. 토정 이지함이란 사람의 일생을 상중하 세권의 책에 걸쳐 흥미롭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사주와 육효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을 부드럽게 곁들인 작가의 문장을 보고, 이 작가가 과연 소설가인지 사주쟁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 때 그 책을 통해 육십갑자의 의미를 처음 알았고, 그 이후로 순수 문학소설책만 고집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장르의 소설도 인정하게 되었으며, 기타 사주명리와 주역 등 동양철학들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것도 혹시 한의학에 대한 작가의 미친 듯한 지식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다. 그러나 단권이라 지면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작가가 이제 나이를 먹어 겸손해져서 그랬는지, 혹은 나의 이해력이 예전과 달리 많이 상승되어서 그랬는지, 이 소설은 의외로 너무 쉽게 읽혀졌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의과대학의 인기가 많이 수그러진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의과대학은 이과계열 최고의 엘리트들이 가는 대학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지방의대가 약하다고 해도 서울대를 포기하고 가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내 자식 놈 하나가 공부 좀 한다고 의대를 가겠다고 작년까지 고집을 피웠다. 그런데 고삼이 되면서 의대간다는 애기가 쑥 들어갔다. 다른 애들은 중학교때 미리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학습했는데 아들 놈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 수학성적이 뒤받침되지 않아 자의반 타의반 포기한 모양이다. 제대로 뒷받침을 못해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잘된 결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어 봐도 의원이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 봉사정신 및 헌신하는 인문적 소양과 자질이 필요한데, 요즘 의사란 직업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일부 전환되었어도 그저 고소득 출세지향적인 직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허준과 같은 의성이 되기가 어디 쉽겠는가. 설령 허준과 같은 의성이 존재한다 해도 그런 분들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세태도 문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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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사람혁명 -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힘
신동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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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간웅 조조가 현세들어 잘 나가는 기업의 CEO처럼 각광을 받고 있다. 초한지에서는 유방이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고, 삼국지에서는 한나라가 황건적의 난으로 기울어 갈 때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각축을 벌이다 위촉오시대를 만들어간다. 삼국지관련하여 어느 책에서는 천지인에 비유해  땅을 잘 지킨  수성의 손권, 그리고 너그러운 인성의 유비 그리고 조조를 하늘이 내린 인물로 그럴 듯하게 분류해 놓았다. 

  아울러 저자가 편역한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통치학>에서는 후흑학의 도(道)인 면후심흑(面厚心黑)를 말하며 삼국지의 영웅들을 색다르게 평가한다. 면후심흑이란 "천하의 두꺼운 낯가죽과 천하의 시커먼 속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비는 낯가죽이 뻔뻔한 면후의 대가로 난관에 봉착할때 마다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하여 패배를 성공으로 바꾸어 놓았고, 조조는 시커먼 속마음을 가진 심흑의 대가로 여백사를 죽인 뒤에 "내가 남에게 버림을 받는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굴은 온후한 듯 두꺼워야 하고 속마음은 그 누구도 알수 없을만큼 시커먼 면후심흑(面厚心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하여 비교적 얕고, 본문의 내용은 삼국지의 내용과 시중에 깔린 여타의 전략적인 성공지침서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조조의 인물상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현대적 관점에서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열다섯장으로 나누고 사자성어을 함께 곁들여 풀어 놓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조조의 인재등용정책이 드러난 "제5장 십보방초(十步芳草 열 걸음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 인재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편이었다. 사실 인재가 중요하고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누구나 절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간쓸개 다내놓고 인재를 얻고 그 인재을 내 수족처럼 믿고 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조조는 현세의 CEO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난세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본문보다 해설편은 오히려 저자의 색깔과 집필 의도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는 원대말기 나관중이 <조만전>과 <이동잡어>등을 토대로 쓴 <삼국연의>를 번역한 역사소설이다. 그래서 실제 유비나 조조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관중의 원본이 아닌 청대의 모종강부자가  개정하여 쓴 개정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얼치기 창작 삼국지가 횡행하고 있어 제대로 된 역사상의 인물 조조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삼국지만 읽으며 한 해를 다 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삼국지와 관련된 이 책을 읽으니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다. 왜 구지 현세와서 조조같은 사람이 조명받아야 하는가.  왜 하필 하후씨 조맹덕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조조가 득인(得人)의 천재, 용인(用人)의 연금술사이기 때문인가. 내 보기엔 오히려 성공과 출세가 제일 화두가 되어버린 현 세태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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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식인의 죽음 - 김질락 옥중수기
김질락 지음 / 행림서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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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라고 하면 사춘기 적에 읽었던 사랑의 체험수기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읽을거리가 부족해서 갱생지에 펜팔할 수 있는 주소들이 적힌 삼류잡지나 체험수기만을 모아 따로 펴낸 책들도 촌구석에서는 귀했다. 그리고 그 때는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체험수기들은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옥중수기라고 하여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나 감옥에서의 체험담을 담은 <야생초>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옥중 체험수기가 아니라 옥중에서 직접 쓴 북한 공산주의 체험수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도 성장소설형식의 장편소설이라 할 만큼 훌륭한 글솜씨를 자랑하고 있는 소설같은 수기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했던 1960년대 지은이 김질락(가명 이영수)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 친삼촌 김종태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청맥>의 주간이 되고,  통일혁명당 발기인이 되었으며, 학사주점을 운영하던 이문규와 같이 입북하여 북한의 실상을 보고 돌아온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 죽음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정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가능한가였고, 두번째는 그렇게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확고한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어떤식으로 변화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가능한가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초반부는 성대했으나 그 마지막은 미약했다. 특히 북한을 다녀온 것으로 수기가 아쉽게 끝나버려 맥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본 것을 계기로 사상의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 났는지, 그렇다면 검거되기 전에 왜 자수하지 않았는지, 사형이 선고되고 난 후에야 살기위해 전향을 했는지 그런 이후의 애기가 빠져 있다.  그런 면에서 혹시 이런 반공 수기를 써야만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거나  예상치 못했던 사형집행때문에 북한을 나녀온 이 후의 이야기를 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마음 한구석에 울분과 화가 치밀어 온전하게 사물들을 대면하고 있을 수 없다. 특히 815부터 625와 419사이는 차라리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게 속편할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망국과 동족간의 이념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 흔한 노벨문학상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미약한 국력이나 언어의 장벽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살아야 할 사람은 다 죽어 버리고 죽어야 할 사람만 살아 남아서 부끄러움조차 사라져버린 이 땅에  무슨 의리가 살아 있고 무슨 진리가 남아 있겠는가. 요즘 세대는 공산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불온서적이 있을 리 없고 주암산에 다녀온 어느 지식인의 죽음엔 더욱 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오로지 색과 욕과 술이 있을 뿐이다.

" 유물론적 변증법은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에서 우연을 인정한다. 변증법의 기본 이론은 물질을 정의하되 물질을 물건이나 물체와 구별하고 모든 물체의 궁극적 구성인자를 물질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분명 인식론의 영역이며 과학은 아니다. 그들은 모순이 격화되면 투쟁의 상태가 일어난다는 유물론만 알았지 모순도 투쟁도 맥을 못추는 반야의 세계는 모른다. 무수상행식하고 무안이비설신의하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하고 오장이 개공인 상태를 깨달을 만한 큰 지혜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가리켜 아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종교가 현세적인 권위를 결코 영원을 지배하는 권위 위에 두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랑을 주고받고 사람을 용서해 주는 관용의 창구가 없다. 다만 지령의 창구가 있을 뿐이다. - 122P, 329P에서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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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Han Gyul 2025-06-26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 실상보면 당연히 전향되는 거 아닌지?.. 북한에대한 환상이 있으신가요
 
위대한 철학자들은 철학적으로 살았을까 - 세상을 바꾼 철학자 30인의 알려지지 않은 철학 이야기
강성률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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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생각하는 게 귀찮고 사는 게 버겨울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게 어디 쉽겠는가. 그래서 까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관객의 특권적 자질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삶의 지겨운 시간들을 인식하고 현실의 답답함을 직시하며 담담히 살아갈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은 영화나 신화에서 가능할 뿐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학생시절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시험들을 준비하다 소리없이 사라졌고, 혈기왕성 때에는 생활의 궁핍함과 성적 허전함을 해결할려는 순간 훌러덩 지나갔으며, 지금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퇴근과 예금통장의 잔고를 헤아리다 한 해가 가버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끽연을 하며 사색을 도모해 보지만 어느새 간사한 손가락은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나마 빈틈없이 흘러가는 시간속에 감정적 충족을 주는 것은 옛 선인들이 남긴 생각이나 신간의 책장을 넘기는 순간인 것 같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철학적으로 살았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책 제목을 보니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제목이 마뜩찮다. 위대하다기보다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아닌가.  철학이란 단어가 두번이나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다는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내용이 너무 평이하다는 애기다. 철학적으로 안살았다는 측면으로 보면 당연히 어렵지 않아야 하지만 뭔가 색다른 냄새를 풍기는 듯한 책제목에 끌렸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저자가 교육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인 이유로는 저자의 다른 책인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가 집에 어엿하게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던 아이에게 철학에 대한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선물했던 책이 저자의 책이었고 그 다른 모습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철학자하면 서양의 기라성같은 철학자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 지면을 유독 동양의 철학자들에게 많이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동양의 철학적들은 흔히 철학자라고 말하지 않는데 말이다. 공자, 노자, 장자를 누가 모르겠는가. 누가 공자를 철학자라고 하고 누가 노자를 철학자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도가도 비상도"처럼 철학자를 철학자라고 부른다면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구성상 다행은 탈레스를 처음 언급해서 균형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상앙이나 현장이나 이규보나 김시습은 정말 예외다. 그들을 누가 철학자라고 부르겠고 그것을 누가 쉽게  언급이나 하겠는가. 부럽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과연 철학을 했을까. 철학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배고픈 자는 허기를 달래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다복했다. 너무 다복해서 무료함에 힘겨워 서커스를 원했던 것이다. 철학 자체가 정신적 유희가 아닌가. 이 책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철저하게 파문당했던 스피노자야말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보다도 휠씬 인간적이고 철학적으로 살았다. " 스피노자의 철학 외에 철학이라 할만한 것은 도대체가 없다. 213p"  하물며 괴테조차  나의 정신보다 더 심오하고 순수하다고 말했겠는가.  스피노자에 말로 유명한 철학자가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라 감히 선언하고 싶다. 내가 진리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정말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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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리바다
김누리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잇북(Itbook)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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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보았을 때 인터넷 mp3 다운로드 사이트인 소리바다와 관련된 젊은이들의 현대적인 사랑을 담은 장편소설이라 생각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사랑하며 어떤  감정에 괴로워하고 또 어떠한 사랑을 꿈꾸는지 자못 궁금했었지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서 책을 읽은지 일주일이 지나갔지만 지은이가 어떤 사랑을 말해주려했는지 아직도 가늠이 가질 않는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소리바다는 인터넷과 관련된 장소도 그런 느낌의 무대와도 전혀 다른 느낌의 장소이다. 그것은 흡사 어린왕자가 살고 있고 인어공주가 사는 곳 같은 상상속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손에 잡기 전 알베르 까뮈의 <작가수첩1>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볍게 국내소설이나 한편 읽자고 택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역시 여고생이란 지은이의 나이가 말해주듯 애써 어려운 문장을 구사할려고 하지 않았다. 지은이의 말처럼 글쓰는 것 자체를 즐기는 듯 일상의 언어들을 한편의 동화책처럼 가볍게 그려 놓았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느낌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까뮈의 책과 비교하려던 생각에 콧웃음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아울러 작가는 "살고 싶어서 글을 썼고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서 글을 썼는데 이제야 비로서 전자를 이룬 기분이다"라고 책 후기에 써놓았느데 글쎄 나도 한 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 보았으나 그정도로 그랬는지 이젠 그런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지은이는 1993년생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그정도라면 정말 어느 정도 책을 좋아하는지 상상이 간다. 가끔 도서관에 가보면 정말 책속에 묻혀서 놀고 있는 애들을 보며 놀라곤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책 읽기보다 책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촌에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이라고 해봐야 겉장이 떨어져 나간 위인전이나 대를 물린 곰팡이 핀 동화책정도의 책이었다. 그러니 요즘 애들의 독서량을 어찌 감히 따라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책보다 더 재밌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니 한편으로는 애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선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쩌면 책 읽는 속도보다 책 나오는 속도가 더 빠른 세상인지 모르겠다.

   이 책의 줄거리는 유의라는 고3 수험생이 J라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소리바다를 경험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흥미롭다. 유치 찬란한 사랑놀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미신중한 사랑애기도 아니다. 책 중간 중간에 그려진 삽화는 동화책을 보는 듯한 옛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재생종이가 아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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