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 학교 1 - 꼬마 산신령들 샘터어린이문고 43
류은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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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한국스러운 마법사 이야기. 마법을 우리식으로 바꾸면 도술이 될까?
도술을 부리는, 그러니까 서양의 마법사에 대비될 수 있는 존재는 '산신령'이 되겠다.
산신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산신령 학교 1]에 나오는 산신령은 그와는 전혀 다른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꼬마 산신령들이다. 그러고 보니 '산신령'이라고 해서 꼭 할아버지일 필요는 없을 것인데...
고정관념이 '산신령'의 다른 모습을 미처 상상하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달리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긴 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굉장히 경직된 사고 속에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산신령 학교 1]의 '산신령 학교'는 산을 잘 다스리기 위한 산신령의 기본을 배울 뿐만 아니라 이곳을 졸업해야만 정식 산신령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산신령 입문 코스다.
이곳을 배경을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정식 산신령이 되기 위해 도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배움을 갈고 닦고 있는 꼬마 산신령들이 있다.
 
 
정통 산신령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지혜와 인성이 살짝 모자란 '달봉(귀선)', 아무런 연고 없이 스스로 산신령이 된 '장군', 선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컴플렉스를 안고 있는
'두레' 그리고 빼빼와 동글이가 그 주인공이다.
 
 
장군과 두레가 전학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달봉은 우월한 가문을 등에 업고 산신령 학교를 주름 잡고 있었다. 누구도 그의 말을 가로 막거나 부정하지 못하는 절대 권력으로.
그러나 새로 전학 온 장군과 두레는 자신보다 출신도 배경도 한참 못미침에도 기싸움에서 전혀 눌리지도 않고, 달봉의 약점을 간파함으로써 오히려 달봉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결국 달봉은 장군과 정식 대결을 하게 되고, 어느 편도 아닌 두레가 심판을 보게 된다.
한 번씩 홈그라운드에서 대결을 펼치는 과정에서 달봉과 장군, 두레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야흐로 옥황상제마저도 손꼽아 기다리는 산신령 학교 최대의 잔치가 시작된다.
마치 장군과 두레가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을, 산신령 학교 친구들이 서로 친구가 된 것을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이 책은 전 3권의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어서 1권은 전체 이야기의 시작 역할을 하고 있다.
인물들의 등장과 서로 친해지는 과정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산신령에 대한 배경 설명, 인물들과의 관계, 개성과 특성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을 준비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산신령은 고리 타분한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신처럼 약점도 있고, 인간적인 맛도 있는 유쾌하면서도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재미있는 것은 상상의 존재로서 느껴질 수 있는 거리감을 '선녀와 나뭇꾼' '연오랑 세오녀'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구전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킴으로써 친근한 존재로 다가오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이야기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은 자연스럽게 그 옛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또한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잘 짜여진 구도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산신령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산신령임에도 완벽하기는 커녕 각각 부족함과 약점을 가지고 있는 꼬마 산신령들.
그럼에도 이들은 그것을 당당히 극복하며 진정한 산신령들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즐기게 되리라.
 
우리 만의 정서와 독특한 상상으로 펼쳐 낸 한국식 마법 이야기.
벌써 다음 내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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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뉴욕 - 마음을 읽는 고양이 프루던스의 샘터 외국소설선 11
그웬 쿠퍼 지음, 김지연 옮김 / 샘터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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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과 교감한다는 내용은
어쩌면 신파에 가까울 정도로 흔한 포맷일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그리고 한 두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할 때는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고양이 역할과 그 관점에서 보는 시선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핵심 인물의 갈등과 해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무엇보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교감을 한 대상이다.
그 고양이의 시점으로 서술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는 별개로 고양이 관점의 서술 형식은 신선한 각도로 인물들을 관찰해보는 재미를 주며,
인물과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낯설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 이상이었던 주인 '사라'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곧이어 그녀의 딸과 사위가 나타나 자신과 주인이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사라의 짐을 챙겨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양이 프루던스는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에 당황한다.
그럼에도 영원한 친구이자 가족 '사라'를 기다린다. 자신을 데려 온 사람이 다름아닌
그녀의 딸이기에, 프루던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사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다시 함께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사라'의 딸 '로라'는 엄마와 많이 닮았지만 둘 사이는 몹시 건조하며, 두터운 벽이 존재한다.
레코드샵을 경영할 정도로 음악을 즐겼던 사라와는 달리 로라는 음악을 거부한다.
고양이에게도 거리감을 유지한다.
닮은 듯하지만 다른 그녀에게 프루던스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대신 사라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로라의 남편 '조시'는 프루던스와 친해지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여러 노력 끝에 결국 프루던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음악으로 교감했던 그의 장모 '사라'와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본다면 이야기의 입체적인 전개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라와 로라의 과거를 이야기를 할 때는 프루던스의 시선에서 벗어난
전지적인 작가 시점을 택한다.
 
'고요함'을 병적으로 추구하던 엄마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맞이하면서
'사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선택하게 된다.
모처럼 허락을 받아 떠난 여행에서 열차를 잘못 타면서 맞게 된 인생의 전환점은,
우연하게 들르게 된 중고품을 파는 가게, 이 책의 제목이자 상징적 의미인
'러브 인 뉴욕(Love in New York)'에서 시작되었다.
사라는 이 가게를 통해 일생을 이어가는 우정의 주인공 '애니스'를 만나게 되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을 얻게 되었다.
그 시작점이 바로 '러브 인 뉴욕'이었다.
 
만일 그녀가 제대로 기차를 탔더라면 그녀는 다시 그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봉인된 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녀는 그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법처럼 이끌린 상황에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음악으로부터, 그보다 더 소중한 그녀의 딸 로라로부터.
 
그러나 로라가 14살이 되던 어느 날.
그들은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는 가족만큼 사랑했던 이웃,
'만델바움'씨와 그의 고양이가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던 사라와
순수하게 사랑할 줄 알았던 로라는 '고양이' 사건으로 인해 점점 멀어지게 된다.
'프루던스'와 '사라'의 만남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사라가 로라에게 사과하기 위한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모녀 간의 사랑과 같은 개인의 사랑에서, 
그 사랑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더 큰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라의 남편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 낸 약자에 대한 박애의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태동, 확산이 어울어진 그 곳이 바로 '러브 인 뉴욕'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도 같은,
자본주의의 마수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의 과정을 따라 가노라면
결코 책장이 가볍게 넘겨지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인물과 사건은 허구적 상상력일 지라도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무겁게, 아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우린 희망을 가져야 한다.
거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래 불러야 한다.
 
겨울은 지나갔지
눈도 녹아 내렸고
모든 것이 화창해
그리고 모든 게 환히 빛나고.......
 
지금 사라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우리가 서로를 발견했던 날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 사라의 노래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아름다운 것, 우리 삶의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한꺼번에 다같이 다가오는 것과 같다. --- p.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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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다 - 그림책에서 만난 열다섯 개의 철학 에세이
진선희 지음, 한우리북스 편집부 엮음 / 한우리문학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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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처음 다시 접하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라야 종류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퀄리티도 떨어졌을 것이니 요즘과 같은 수준의 그림책은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접한 것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 싶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집보다는 단행본 위주로 읽히려다 보니 사는 것도,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외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을 하는 엄마로서 자유롭게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확산되기 시작했던 도서대여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그때 그림책에 대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이 확 바뀐 계기가 되었다.
 
그림책이라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물론 연령 발달상 그런 류의 책도 있지만, 정말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책들이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그런 책을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맘껏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 좋아하는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때로는 같이 그려도 보고 흉내도 내보는 것이 그때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었다.
 
둘째는 가브리엘 벵상의 [셀레스틴느 이야기] 시리즈를 유난히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 시리즈를 모두 구입해서 읽고 또 읽곤 했었다. 그 책들은 어른인 내가 봐도 너무 따뜻하고 좋았고, 어른의 고민과 아픔도 느끼질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연령층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외롭고 슬픈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작가의 슬픔이, 그럼에도 순수한 어린 아이의 천진함이 공존하고 그대로 묻어나는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책이자, 작가의 작품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를 너무 좋아해서 수 십 번을 반복해서 봤던 큰 아이. 아무리 심각한 내용도 아이들 특유의 시선으로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따로따로 행복하게]의 작가 배빗 콜의 작품을 너무도 좋아했던 나. 서로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웃고, 이야기하며 행복해했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그림책을 자주 접하지도 그림책에 대한 얘기도 자주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좋아했던 그림책을 소중히 간직하며 때때로 그때의 추억과 함께 이야기 한다. 지금도 책을 정리하다가, 혹은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어서 아니면 그림의 위안을 얻고 싶을 때 그 때 그 그림책들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 줄글로 쓰여진 책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휴식과 위안, 웃음을 얻는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림책이 좋다.
2년 전에는 모처럼 그림책에 대한 강좌를 신청해서 들었었다.
그간 너무 잊고 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좀더 그림책을 체계적으로 배워 보고 싶은 마음에서 신청을 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서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그림책을 읽다]는 그런 아쉬움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사실 읽다 보니 이 책은 그림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매개체로서의 그림책 역할은 중요하지만 그림책은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고, 그 그림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유해야 할 사랑, 행복, 자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책의 수는 총 15편으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사랑', '행복', '자유' 주제별로 4~6편의 그림책이 소개된다. 그림책도『강아지똥』, 『100만 번 산 고양이』, 『아모스와 보리스』, 『만희네 집』, 『지각대장 존』, 『작은 집 이야기』, 『동물원』 등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고전이라 일컬어 지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림책을 적극적으로 보지 못한 지 한참 되었음에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처 읽지 못한 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책들을 읽지 못했던 것은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이 되었었다. 다른 메타북들과는 달리 단순한 책 소개가 아니기 때문에 섬세한 그림의 해석을 쫓아가다 보면 그림을 직접 보지 못해서 그런 지 그 감정의 흐름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공감도가 달라지는 것에서 늦게라도 나머지 책을 구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처음에는 <그림으로 동화 읽기>부터 시작한다. 책의 스토리와 장면장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그림책의 흐름을 전한다. 다음으로는 그림책이 전해주는 핵심 메시지를 그림과 함께 찾아서 해석해본다.
 
 
 
마지막으로 스토리와 그림 속에서 꺼낸 철학적인 메시지를 좀더 깊이 사유해보면서 우리 생활 속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그리고 저자의 시선으로 더 확장해서 생각해 봐야 할 질문들을 던지면서 마무리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부제 '그림책에서 만난 열다섯 개의 철학 에세이' 그대로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그림책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에서 종종 잊고 살고 있는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글머리에'에서 저자가 밝혔지만 '사랑' '행복' '자유'를 통한 그림책의 구분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사랑의 주제로 뽑은 책이라도 행복과 자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사랑, 행복, 자유는 그 자체가 분리할 수 없는 감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인간의 밑바닥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이 본능적인 감정마저도 외면하고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삭막하고 위험한 질주에 잠깐 브레이크를 걸고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하는 마음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을 순수히 열 수 있는 매체로 '그림책'만한 것은 없을 듯 싶다.
나 역시 바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잊고 살았던 '그림책'을 다시 한 번 꺼내 들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맨얼굴이 전하는 본능의 목소리에 잠시 귀기울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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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자 5명이 풀어 쓴 최초의 청소년 인문서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지음 / 글담출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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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수록 요즘은 무겁게 내리 누르면서도 조금은 불편한 책이 좋다.
한 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뇌이며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요즘은 읽고 싶어진다.
육중한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남은 고전에서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겁지겁 책을 읽어 치우다가 문득 방향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갈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 고민의 시점에서 읽게 된 책이 바로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이다.
또한 스마트폰 들여보기 바쁜 딸들에게 책의 진중함을 느껴보라는 간접 항의 차원에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즐겨 읽는 편이긴 하지만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왜 고전과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지 잔소리처럼 얘기해 봐야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 뻔할 터 내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의 목록을 소개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출판사 서평을 읽었을 때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그렇게 읽고, 판단했다.
정말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가 보다.
 
책을 펼쳐 들어 읽기 시작하는데....'어?' 하는 의문부호를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인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 형식도 아니고, 책을 위주로 설명하는 것도 아닌,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공부할 것도 많은 청소년들이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가?'
 
 
이 책은 이처럼 인문학을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인문학 자체부터,
문학, 역사, 철학, 신화, 언어학 분야별로 나누어 그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 선봉에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자 5명 서 있다.
그들은 거창하게도, 어렵게도, 무겁게도, 지루하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최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때로는 유쾌하게 차근차근 설득해나간다.
오로지 목표는 한 가지.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지, 알고 싶다는, 알아야겠다는 열망을 끌어내는데 전력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문학 분야마저도 책이나 작품은 단지 수단에 불과해진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인문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1장 인문학'은 스티브 잡스로부터 발화하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을 짚어보고,
과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인문학의 기원부터 인문학을 하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 지,
그동안 우리는 왜 인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없었는 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들여다 본다.
간결하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시계추처럼 답습해가지 않기 위해 현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저자의 실질적인 조언이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저자가 이렇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선생님이 골라주는 인문학자부터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도해보면 좋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2장 문학 분야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문학의 재료가 이야기이다 보니 설명이 쉬울 수 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지루하고 뻔할 수 있다.
저자는 『캔터베리 이야기』중 「바쓰 여장부의 이야기」와 『제인에어』, 『아서왕의 죽음』 중 「성배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서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어을 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질문을 던진다.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한 자세를 설명한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경험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를 인물의 입장에서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 돼요. 그래서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만약 네가 그/그녀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이런 연결 혹은 접속하는 훈련을 통하여 작품 속 인물들과 공감대를 만들어 가면 전에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되며, 이런 경험은 일차적으로는 나를 바꾸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되죠.
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여러분들이 다양한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 p.72
 
마지막 선생님이 알려주는 꼭 알아야 할 문학 용어에서는 들어는 봤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지 못했던 용어에 대한 정의들을 정리해줌으로써 문학 작품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3장 역사 역시 흥미로운 접근이 재미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한 후에 저자는 그림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방식을 제안한다.
역사는 흔히 외울 것 많고, 현재의 우리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뜨거운 논쟁으로 재점화 되고 있는 광해군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해 살펴보면서
역사의 관점, 즉 '사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마지막은 역사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선생님의 초이스 코너에서는 '중고생에게 추천하는 역사 영화' 5편을 만날 수 있다.
 
 
같은 형식으로 철학, 신화, 언어학까지 독자는 인문학으로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코스로의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여정들을 통해 결국 독자는 인문학이란 내 속의 본질적인 '나'를 찾아가는 여행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을 쓰면서 인문학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려 하지 않고 인문학의 정신을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상상력을 발휘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고 집필했고요. 아마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설 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을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랍니다." --- 프롤로그 中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렇게 지루하고 높게만 보이던 인문학의 문턱을 사뿐이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도전에 동참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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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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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자 '강신주'를 처음 알게된 것은 2년 전 한 강연 프로그램에서였다.
철학자라고 하는데...물론 철학이라는 것,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을 때였으니 지식의 두께도 얇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통렬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의'를 듣는 순간,
'저 사람 누구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그에 대해 궁금증을 털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김수영에 대하여]라는 독특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가 철학자로서, 저자로서 점점 파워가 커나가고 있는 사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보다는 그의 강연을 먼저 알게 되었기에 그의 강의를 먼저 찾아 들었다.
의외로 그의 주 전공은 동양철학이었고, 그중에서도 '묵자'에 대한 그의 찬사에 어리둥절했었다.
'묵자?' 아무리 동양철학에 무지해도 그렇지 '묵자'가 누구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묵공'으로 그나마 알려졌다는데 이렇게 생소할 수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혁명가였던 '묵자'를 기득권이 받아들이고, 전파했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그러한 그 '묵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강의하던 저자의 모습.
어찌 인상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황, 이이 모두 주자의 앞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홀로 과감히 그 울타리를 뛰어 넘으려 했던 유일한 인물이 정약용이었다는 것을. 고립된 유배지에서 조롱하듯 주자의 주장 하나하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모습은 요즘 그의 수식어 '돌직구 철학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 낯설지만, 포장하지 않고, 덧붙이지 않은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후련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강의가 좋아서 이것저것 찾아 들었던 것 같다.
한참 재미있게 듣고 있었는데 중단된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부터 다시 혜화동에서 부활한 '벙커1'의 '다상담'까지. 벙커1 특강은 방송보다 더 솔직하고, 밑바닥까지 들어간 것 같아 불편하고 힘들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그의 말대로 마주하고 껴안아야만 진정 거듭날 수 있어서 그런가.
그 사연들과 공통 분모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듣는게 녹록치 않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들어야만 했다.
 
어찌되었건 나는 '강신주'라는 철학자에 흠뻑 빠져 있건만 (그는 마지막 강의에서 자신은 종교 지도자가 아니니까 자신을 믿지 말라고 했지만...ㅎㅎ) 주위에는 사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친구같아 좋기도 했는데...
 
이런... 어제 'SBS 힐링캠프'에 전격 출연하며 그 이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물론 그전에 'SBS 아이러브인' 강의에도 나오긴 했었지만. 그때보다 파장은 훨씬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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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다. 그의 책이, 그의 강의가 많이 알려지면서 가식없이, 솔직하게 이 힘든 세상과 마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 좋겠다.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이 지쳐 있으니까.
나만의 비밀 친구를 뺏긴 것 같은 아쉬움이 들 때쯤....
맙소사...! 방송 시작하자 마자 그가 하는 말.
"저를 처음 봤다면 잘 살고 계시는 거고, 제 책을 보거나 저를 만나러 온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슬프기도 하다. 뭔가 훔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부끄럽게도 그의 책은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먼저 읽었다고 해야 하나. 도서관 반납일에 맞춰 허둥지둥 반납해버려 사실 거의 읽었다고도 할 수 없고, 제대로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에 대하여]를 읽고 싶었는데 어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도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강의 외에 책으로 대면한 그의 첫 번째.
5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은 읽기도 전에 압도 당한다.
그러나 [철학이 필요한 시간]보다는 훨씬 편하고 쉽게 읽혔다. 물론 개념을 정리할 때는 한참을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수고가 들어가 쉽게 술술 넘겨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살뜰한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를 읽다 보면 여전한 그의 돌직구에 웃음이 나고 '아~' 하며 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떤 설명보다도 확실하게 이해를 하게 해주는 강력한 힘. 바로 스토리가 가미되었기에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선의 느낌도 온전히는 아닐 지라도 충분한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가 있어 감정에 더 잘 몰입이 되고, 그 감정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500페이지의 분량이 결코 지루하지도, 많게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는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감정이 48가지나 되나?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우리는 느끼면서 살고 있나?
 
 
"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감정을 누르는 것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만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삶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 p.17
 
"이 모든 감정들의 분출로 우리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원하는 감정일 수도 있고, 결코 원하지 않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감정이든지 간에 그것이 내 안에서 발생하고, 또 나 자신을 감정들의 고유한 색깔로 물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슬픔, 비애, 질투 등의 감정도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에, 내일을 더 희망차게 기다릴 수 있으니까. 장차 내게 행복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는 설렘,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지." --- p.18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시대, 그래서 감정에 대해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는 일은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감정수업'을 받아야 할 만큼 망각되었는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왜곡되어 온 감정,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 그대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감정의 윤리학'을 추구했던 스피노자가 정의한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들여다 보노라면 그 감정의 감각이 하나 둘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어떤 한 감정에 꽂히게 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내어 느끼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감정의 인식이 나쁜 감정에서는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좋은 감정이라면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자, 이제 돛을 펼치고 넓고 깊은 감정의 바다로 항해할 준비가 되었는가? 48명의 세이렌(Siren)의 노랫소리를 마음껏 즐겨라. 하지만 어느 한 감정에만 매혹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감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오디세우스처럼, 지금 우리는 나 자신만의 감정에 이르려는 항해를 떠나는 것이니까. Bon Voyage!" --- p.26
 
책을 읽다 보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당황도 하게 된다.
'당황'에 대한 정의... 우스개소리로 당황을 정의했던 기억은 있는데...
과연 '당황'은 어떤 감정일까?
 
 
"당황(consternatio)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무감각하게(stupefactum) 만들거나 동요하게(fluctuantem) 만들어 악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두려움이라고 정의된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당황의 감정을 정의하면서, 스피노자는 이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무감각하게 된다는 것은 악을 피하려는 그의 욕망이 경이로움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요하게 된다는 것은 악을 피하려는 욕망이 다른 악을 고려하는 소심함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이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사태에 당황하고 있는 멜러즈의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설명 아닌가. 여자를 피하겠다는 욕망도 새롭게 꿈틀대는 욕망에 대한 놀라움으로 제약되니, 멜러즈는 '무감각해지게' 된 것이다. 동시에 여자를 피하겠다는 욕망은 여자를 피했을 때 발생하는 악을 고려할 수밖에 없으니, 멜러즈는 '동요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당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신 상태, 요즘 말로 멘붕 상태의 감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당황은 단순히 멘붕 상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을 수반하는 감정이다." --- p.155
 
감정의 응용편이자 실전편이라는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당황'이라는 감정에 대해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후배나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욕망이 머리를 들 때가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결혼했지만, 허니문에서 그와 섹스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클럽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폄하했던 내가 부득이하게 클럽에 들어갔는데 음악과 조명에 몸을 맡기는 낯선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욕망을 내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 혹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당황이라는 감정의 정체다. 그러니까 당황의 감정은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일거야."라고 생각했던 나와 실제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때 발생한다. 어쩌면 당황의 감정에 빠진 사람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당황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 혹은 자기의 맨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가면의 욕망과 맨얼굴의 욕망이 우리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면, 당황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러니 당황에 빠질 때 걱정할 건 없다. 무조건 맨얼굴의 욕망, 즉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경이롭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여린 사람들은 맨얼굴의 욕망을 거부할 수도 있다.
-중략-
뭐, 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에게 저항해 보라. 맨얼굴의 욕망을 부정하고 가면의 욕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낯빛은 피폐해지고 삶은 무기력해질 테니까"
 
 
심각한 감정의 정리에 머리 아프다가도 저자의 이러한 명쾌한 처방전을 들으면 말그대로 당황스럽지만 마음은 편안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이랄까. 낯선 곳에서 그 감정을 만나더라도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각 감정들에 대한 정의와 소설의 인용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것은 그 소설의 저자에 대한 소개이다. 자전적인 소설들이 많다 보니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할 터, 그에 대한 친절한 소개는 책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고맙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부분은 매 장마다 삽입된 '감정'과 연결선상에 있는 '그림'이다. 처음에는 '뭐지?'하는 느낌으로 봤는데, 책을 읽어 갈수록 그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분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는 느낌이었다. 잘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에 대한 시각화가 되기도 휴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멋진 문학작품과 함께 48점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책은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 책이 있는 가하면 어떤 책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한장한장을 아껴가며 읽는 책도 있다.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내겐 줄어드는 것이 몹시 아까웠던 책이다.
저자의 강의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 책을 읽을 때에도 저자의 목소리, 말톤으로 읽힌다. 그래서 편안하게 앉아서 저자의 개인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자 특유의 말버릇이 아마도 글 속에서도 살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강의가 줄어들어 들어 갈 때마다, 만날 수 있는 문학 작품의 수가 적어질 때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그림의 환의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 때마다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에필로그를 읽어 보니 문학작품을 함께 뒤지고, 그림을 선별하는 작업에 저자 못지 않은 편집자의 고된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저자, 편집자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저자, 책 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꽤나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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