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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자 5명이 풀어 쓴 최초의 청소년 인문서 ㅣ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지음 / 글담출판 / 2014년 2월
평점 :
책을 읽을수록 요즘은 무겁게 내리 누르면서도 조금은 불편한 책이 좋다.
한 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뇌이며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요즘은 읽고 싶어진다.
육중한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남은 고전에서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겁지겁 책을 읽어 치우다가 문득 방향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갈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 고민의 시점에서 읽게 된 책이 바로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이다.
또한 스마트폰 들여보기 바쁜 딸들에게 책의 진중함을 느껴보라는 간접 항의 차원에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즐겨 읽는 편이긴 하지만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왜 고전과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지 잔소리처럼 얘기해 봐야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 뻔할 터 내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의 목록을 소개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출판사 서평을 읽었을 때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그렇게 읽고, 판단했다.
정말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가 보다.
책을 펼쳐 들어 읽기 시작하는데....'어?' 하는 의문부호를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인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 형식도 아니고, 책을 위주로 설명하는 것도 아닌,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공부할 것도 많은 청소년들이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가?'
이 책은 이처럼 인문학을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인문학 자체부터,
문학, 역사, 철학, 신화, 언어학 분야별로 나누어 그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 선봉에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자 5명 서 있다.
그들은 거창하게도, 어렵게도, 무겁게도, 지루하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최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때로는 유쾌하게 차근차근 설득해나간다.
오로지 목표는 한 가지.
왜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지, 알고 싶다는, 알아야겠다는 열망을 끌어내는데 전력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문학 분야마저도 책이나 작품은 단지 수단에 불과해진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인문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1장 인문학'은 스티브 잡스로부터 발화하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을 짚어보고,
과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인문학의 기원부터 인문학을 하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 지,
그동안 우리는 왜 인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없었는 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들여다 본다.
간결하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시계추처럼 답습해가지 않기 위해 현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저자의 실질적인 조언이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저자가 이렇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선생님이 골라주는 인문학자부터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도해보면 좋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2장 문학 분야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문학의 재료가 이야기이다 보니 설명이 쉬울 수 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지루하고 뻔할 수 있다.
저자는 『캔터베리 이야기』중 「바쓰 여장부의 이야기」와 『제인에어』, 『아서왕의 죽음』 중 「성배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서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어을 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질문을 던진다.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한 자세를 설명한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경험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를 인물의 입장에서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 돼요. 그래서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만약 네가 그/그녀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이런 연결 혹은 접속하는 훈련을 통하여 작품 속 인물들과 공감대를 만들어 가면 전에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되며, 이런 경험은 일차적으로는 나를 바꾸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되죠.
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여러분들이 다양한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 p.72
마지막 선생님이 알려주는 꼭 알아야 할 문학 용어에서는 들어는 봤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지 못했던 용어에 대한 정의들을 정리해줌으로써 문학 작품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3장 역사 역시 흥미로운 접근이 재미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한 후에 저자는 그림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방식을 제안한다.
역사는 흔히 외울 것 많고, 현재의 우리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뜨거운 논쟁으로 재점화 되고 있는 광해군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해 살펴보면서
역사의 관점, 즉 '사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마지막은 역사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선생님의 초이스 코너에서는 '중고생에게 추천하는 역사 영화' 5편을 만날 수 있다.
같은 형식으로 철학, 신화, 언어학까지 독자는 인문학으로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코스로의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여정들을 통해 결국 독자는 인문학이란 내 속의 본질적인 '나'를 찾아가는 여행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을 쓰면서 인문학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려 하지 않고 인문학의 정신을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상상력을 발휘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고 집필했고요. 아마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설 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을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랍니다." --- 프롤로그 中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렇게 지루하고 높게만 보이던 인문학의 문턱을 사뿐이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도전에 동참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