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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백영옥은 내 기억에 자리 잡지 못한 수많은 작가 중에 하나다.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스타일’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베스트셀러라는 유명세와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혹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설 ‘스타일’에 환호하는 이유를 나는 결코 그 작품에서 느끼지 못했다. 원래 스타일리쉬하지 못하고 나만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 보통 사람들이 알만한 웬만한 명품도 모르는 수준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패션의 이야기에 별로 혹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소설보다 영화에서 감동한 걸 보면, 영화에서만 보여주던 편집장과 비서의 관계, 공감, 서로를 향한 마지막 시선을 보며 나의 감성은 패션아이콘보다는 인간의 감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런 내게 작가 백영옥은 색다른 제목의 소설을 다시 들고 나타났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소설 제목 치고 유난히 길고, 사랑과 이별이 아닌 ‘실연’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모습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스타일의 작가라고 홍보하는 띠지를 보며 오히려 잠시 망설였다. 작가 이름은 어색하지만 ‘스타일’은 내게 실망스런 모습이었기에 오히려 이 소설마저 내 손으로 가져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이었는지 내 품에 안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작가 백영옥의 새로운 모습과 그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며 내 책장에 남게 되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p26)”
그 흔한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서 실연당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쌍방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이별이라해도 한 사람, 아니 두 사람 모두 실연당한 입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이별’이다.
여기 네 남녀가 있다.
사강과 정수.
지훈과 현정.
그들은 이미 헤어졌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결코 이별을 완료하지 못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 백영옥을 이야기한다면 문장 하나로 추억을, 사람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네 남녀의 이야기와 정미도, 전직 영화감독이자 미도의 회사 대표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어간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스타일에서 보여준 패셔너블한 그녀의 지식이 여전히 샤넬의 이야기로 나오고, 등장인물들의 패션 이야기에서 엿볼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그녀만의 독특한 문장은 전작 ‘스타일’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니, 전작에 있었지만 패셔너블한 소재에 오히려 가려졌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계절 음식을 먹는 건 그 계절의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거.(p29, 정수 曰)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P31)
그가 명훈을 형이라 쓰고 동생이라 읽었던 세월(p305)
침묵은 실연의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보편적인 언어(p344)
또한 작가 백영옥은 사강과 정수의 이야기, 지훈과 현정의 이야기, 그리고 사강과 지훈의 이야기, 미도와 대표의 이야기에서 각각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하나의 큰 줄기를 만들어 독자들을 안내한 후 극의 클라이 막스로 돌입한다.
작가는 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깊어졌다. 인간의 감정을 다룸에 있어 그 내면을 좀 더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작가 백영옥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무거워지며 깊어질 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