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문둥이.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 어린 아이들을 잡아가 인육을 먹는 사람으로 비춰졌던 사람들.

온 몸의 피부가 내려 앉아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들에게 제대로 된 손과 발의 모습은 없었다.




얼마 전 소록도의 모습을 TV프로그램에서 보았다. 그 곳이 한센인(문둥병환자를 한센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들을 격리했던 곳이라는 것을 소개하며 우리들의 잘못된 편견에 일침을 가하면서 지금의 소록도,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소록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중간에 5분 정도 본 것이 고작이었지만 대충 내용이 짐작되는지라 채널을 돌렸다.

그렇기에 <보리밭에 달 뜨면>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 생체실험이라고 하면 중국에 있었던 731부대가 생각나건만, 소록도라니….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단지 소록도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다. 몇 해 전 보았던 그 아름다운 섬에서 자행되었다니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일은 세계 대전을 치르는 중 유태인 학살에 앞서 인종을 가리지 않고 장애인들을 가스실에 들여보냈다. 사회적 약자, 우리와 다른 이들을 대하는 인간의 악랄함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소록도는 물론 이와 조금 다른 이유로 실행된 이야기다. 소설에 의하면 당시 전염병으로 인식된(전 세계적으로는 전염이 안 된다고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독 일본만은 자국 내에서도 한센 인들을 감금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병환자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소록도로 모두 보내 관리하는데 편리성을 위함이었고, 나중에는 생체실험의 대상자로 사회적 기피대상자로 낙인이 찍힌 그들을 이용함으로서 사회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유복한 집안의 독자로 태어나 꽃길만이 펼쳐질 것 같았던 한 소년(상혁,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온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사랑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을 지녔던 그 소년은 결국 집을 나와 한센 인들의 낙원이라 일컫는 소록도로 향한다.

장터 싸움꾼으로 시장에 나타나는 문둥이들을 내모는 일을 담당했던 한 사내가 있다. 장터 상인들에게 문둥이들을 내쫓는 덕에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는 그는 평소에도 싫어했던 문둥이들이 장터에 나타날 때면 죽을 만큼 손을 봐줬다(때론 죽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에게 하늘의 노함이 온 것일까, 나병이 찾아왔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가서 나름의 행복을 찾고자 노력했던 한 여인이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든 나병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문둥이, 나병환자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한 아름씩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소록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였다. 몸도 성치 못한 그들에 의해 그들을 생체 실험할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지어졌고 많은 이들이 한 줌의 뼛가루로 바다에 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소록도를 탈출했다 해도, 독립을 맞이했다 해도 문둥이, 나병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못했다. 산 속에 숨어 살며 나쁜 일들이 벌어지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했던 그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그리고 그들을 품지 못했던 우리의 무지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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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은 2009-06-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보고갑니다. 책을 읽기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소록도의 안타까운 역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