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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정원 - 히틀러와의 1년, 그 황홀하고도 고통스런 기억
에릭 라슨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제 2차 세계대전. 히틀러, 독일.
한국전쟁도 겪어보지 않은 내게 그 시대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다. 많은 영화에서 하나씩 얻은 정보들이 쌓여 이제는 제법 그 테두리가 두꺼워졌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다룬 책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몇 년이 되었는데, 뜻하지 않게 논픽션작가 에릭 라슨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마치 소설책처럼 생긴 <야수의 정원>은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제 2차 세계대전의 독일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야수의 정원>은 외교관의 신분으로 독일에 머문 도드 일가의 시선으로 독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작가의 엄청난 자료조사를 밑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이 책의 전반을 가득 메우며 1933년부터 도드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1933년 6월 8일.
역사학자인 윌리엄. E. 도드는 당시 미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로부터 주독대사로의 부름을 받는다. 자신이 집필하고 있던 책 ‘옛 남부’를 탈고하고자 바쁜 교수보다는 한가한 나라의 외교관 집무를 원했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성격이 외교관과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렀던 외교관의 자리.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교수 자리보다 더 바쁜 주독 대사로 그가 임명이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매티와 아들 빌, 딸 마사를 데리고 도드는 티어카르텐(야수의 정원. 과거 귀족들의 사냥터였던 데서 비롯된 명칭)가에 자리 잡고 집과 집무실을 오간다. 그러나 제퍼슨 주의였던 도드는 당시 ‘상위 1% 클럽’의 독무대였던 외교관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게다가 독일의 정치인들 역시 힘을 강조하는 시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드를 ‘그는 소박한 남부 역사 교수로, …(중략)… 화려한 나치에 대적할 만한 백만장자가 필요한 시기에, 도드는 아직도 대학 캠퍼스에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p104)'라고 평했다. 당시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탄압과 외국인에 대한 폭력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채권을 갖고 있었던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독일을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미국인들의 정서, 날카로운 시선을 놓친 언론의 영향으로 독일의 상황을 빠르게 직시하지 못한 미 정부를 비롯, 도드 역시 히틀러의 평화주의를 의심하지 못했다.
길거리에 갈색제복 돌격대, 검은색 친위대, 파란색 정규 경찰이 돌아다니고, 엽서 한 장의 소환장을 발급하는 게슈타포가 공포로 자리 메김 하는 순간에도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세계의 시선이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파펜 부 수상이 히틀러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속단한 점, 그리고 힌덴부르크의 사망 이후 자신을 총통이라 일컬으며 모든 권력을 잡은 히틀러 앞에 독일 국민은 항쟁이 아닌 히틀러 경례로 충성을 다짐했다. 물론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심각한 빚더미, 높은 실업률(통계학 상으론 실업률이 낮아졌지만) 등 다른 사회적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히틀러가 완전히 집권하기 전의 상황을 접한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것이 변하는 순간, 리히터펠데가 끝없는 총성으로 뒤덮인 ‘장검의 밤’이 끝나고 독일은, 그리고 세계는 2차 세계 대전으로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다.
도드와 자유분방한 딸 마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독일의 상황을 다룬 <야수의 정원>은 논픽션이란 장르에 대해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그들의 삶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신이 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당시 느낌과 생각을 모두 접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서에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접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에 주관적으로 생각하며, 미래에 과거가 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숙제를 남긴다. 정치, 경제에 앞서 우리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인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