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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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1984

지은이: 조지 오웰

   : 자오샹 하오! 오웰 시엔셩(早上好! 奥威尔先生) , 응답하라 1984!

 

 

내가 전해 듣기로 조지 오웰(1903~1950) 의 소설 <1984>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낸 소설이라고 했다.

'빅 브라더' 가 텔레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감청하고 사상을 세뇌, 통제 하는 미래 사회를 그려냈다고 많은 평론가나 독자들은 조지 오웰의 미래 예측에 호평을 했다.

더구나 시대가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고 인공지능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자  조지 오웰이 예측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가 정말로 현실화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함께 존재 한다.

이렇게 <1984>의 명성에 대해서 드문드문 어릴 때 부터 들어 왔었지만 읽어 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언제가는 읽어 봐야지 하고 미루어 왔다가 이제야 비로소 책을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1984년 이라면 지금 기준으로 40년 전이다. 즉 현재 2024년 기준으로는 과거다.

하지만 소설 속에 1984년은 미래다. 오웰이 1948년에 책을 썼기 때문에 그 시간 기준으로는 겨우 36년 미래를 예측한 소설인 셈이다.

1948년에 내다본 미래1984년은 생각 보다 암울하다.

그런데 더 암울한 것은 그 내용에 대한 공감이 하나도 안됐다.

중간에 읽다 말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나의 문해력 문제도 한 몫 했겠지만 이렇게 까지 가독성이 안 좋을 줄 몰랐다.

그동안 들어 왔던 이 책에 대한 정보와 호평이 무색하게도 나에게는 전혀 와 닿지가 않았다.

 

 

 

먼저 이 책을 읽기전에 오웰의 <동물농장> 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1984> 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컸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고 했는데 도대체 빅 브라더가 뭘 어쨌길래 다 들 그렇게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고 했을까?

<동물농장> 처럼 미래 사회의 전체 주의에 대한 풍자나 비판를  우화식으로 풀어 낸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데 이 책, 내가 생각 했던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아예 읽기 자체가 싫어졌다.

대체 이건 왜 그런거지?

 

 

어쩌면 내가 실제로 경험한 1984년도의 현실과 소설 속의 1984년 미래세상 사이의 간극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너무나 커서 그런게 아니 였을까?

내가 경험했던 현실속의 1984년 세상은 소설속 세상처럼  디스토피아 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세상이였다.

 

그 시절 나는 어린이 였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 하면 몇가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1984년도엔 미국에서  L.A 올림픽이 열렸다. 그때 우리나라는 전체 10위를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있었고 다음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에는 서울에서 개최하는 걸로 확정이 되어 온 나라가 시끌벅적 했었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국민은 국뽕에 취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새나라의 어린이인 나는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라고 생각 했다.

TV만 틀면 맨날 뉴스 첫머리에는 '전두환 대통령은  어쩌구 저쩌구' 로 시작하고 올림픽에서 우리 나라 선수들의 감동적인 금메달 따는 장면에 감격했다.

그 시기엔 학교 가기전에  항상 꼭 '뽀뽀뽀'를 저녁 시간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가족 오락관이 우리를 텔레비 앞으로 모이게 했다.

또 우리들 사이에서는 배추머리 아저씨의 '지구를 떠나거라~' 같은 유행어를 따라 하는게 당시 코 흘리게 아이들의 일상이었다.

현재의 나에게 1984년은 동심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난 시절의 추억을 소환 했던 <응답하라 1988> 처럼 나에게는 '응답하라 1984' 가 되어 버렸다.

 

 

 

이 처럼 조지 오웰이 예측한 미래의 <1984> 와 현실의 1984년은 전혀 달랐다.

현실의 1984에는 빅 브라더는 존재 하지 않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국가는 전 세계를 통 털어 중국, 소련, 동독, 북한 정도의 공산권 국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그들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무시 당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오웰이 예언한 1984 같은 미래세상은 오지 않았다.

이러한 오웰의 틀린 예언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 출신으로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오른 백남준은 1984 1 1일에 그의 대표적인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는 당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통해 5개 국가를 동시에 연결하여 생방송으로 <굿 모닝! 미스터 오웰>을 진행 한다.

당시 미국에 거주 했던 백남준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 5개 국가를 동시간 으로 연결하여 라이브 퍼포먼스를 내 보낸 것이다.

T.V 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오웰이 두려워 했던 텔레 스크린의 도청, 감시라는 악()기능이 아닌 '시 낭송, 무용, 락 음악, 행위 예술' 등을 통해 문화의 선()기능을 보여준 것이다.

, 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감시하고 통제 수단이 되는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간의 연결, 그리고 소통, 마지막엔 화합을 이룬다는 메세지를 과거의 오웰에게 전달한 셈이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드디어1984년이 됐네요. 우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네요.

당신의 걱정은 이제 끝났으니 이제 그만 미래는 우리에게 맡겨 두세요' 라고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 이 시대는 전세계로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는게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너도 나도 다 유튜브를 본다. 또 영상 하나 쯤은 혼자 찍고 만들고 세상 누구와도 공유하는 세상이 왔다.

수십억의 리틀 백남준이 연결된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 1984년 백남준이 보여준 TV퍼포먼스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어린이 였던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백남준의 이러한 시도는 미래세상에서 벌어질 다양성과 연결성을 보여준 또 다른 백남준식의 예언이 아닌가 싶다.

 

결국 오웰 예측한 소설속의 1984 미래는 확실히 틀렸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한 마음이 드는것은 무엇 때문 일까?

 

 

 

<1984>에 나오는 주인공 윈스턴은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오세아니아 가 싫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는 텔레 스크린 속의 수염 달린 빅 브라더가 싫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를 한다니...

끊임없이 자신의 기억을 말살하는 당의 통제 방식이 싫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거짓말, 모든게  다 거짓이다. 모든게 다 날조다.

이중사고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통제하는 빅 브라더 체제는 타도해야 한다.

빅 브라더를 배반하고 지하 세계에서 활동 중인 골든 스타인의 형제단에 가담하고 싶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런 자유를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 보면 윈스턴은 철저한 혁명가가 될 것 같았다.

 

<브이 포 벤데타> 라는 영화속 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V' 처럼 민중과 함께 싸워 빅 브라더를 타도하고 당을 전복시켜 승리하는 형제단의 영웅이 되길 바랬다.

 

 

 

실제 역사속에서 '가이 포크스(1570~1606)' 1605 11 5, 영국 국회의사당을 화약으로 폭발 시키려 했던 16세기 테러리스트였다.

가이 포크스는 당시 지배체제를 전복 시키려 했다.  웨스트민스터 궁을 통째로 날려 버릴 심산 이였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는 내부자의 밀고로 준비했던 거사는 결국 실패 하고 말았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V'의 상징이었던 승리(Victory)는 소설<1984>에서는 당의 선전용 브랜드로 전락했다.

'승리 맨션, 승리 담배, 승리 술, 승리 면도날' 등으로 초라한 물품에 붙혀진 '승리'란 이름은  당의 모든 선전은 거짓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도 형제단이라고 믿고 싶었던 '오브라이언' 에게 결국 변절 당하고야 만다. 또한 자신은 육체적, 사상적 유일한 동지나 다름없는 '줄리아'를 변절 하고야 만다.

고문과 세뇌를 통해 자신이 가졌던 신념은 모두 남김없이, 깨끗하게 지워져 버린다.

윈스턴은 눈을 감으며 자신의 투쟁은 승리했다고 믿었다.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아니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라니?

 

 

도대체 왜 이런 결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의 소설에서도 역사속 '가이 포크스' 사건 처럼 윈스턴의 바람은 실패가 되고 말았다.

오웰은 환타지 소설같은 혁명을 하고 멋지게 성공을 하고야 마는 결말보다 승리의 역설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더 강한 메세지를 남겼다.

그렇게 보면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가이 포크스 일화의 성공 버젼인 셈이다.

어쩌면 오웰은 '가이 포크스' 의 실제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1984>의 결말은 과거 영국에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을 반영했고 또한 작가 자신이 윈스턴의 입장에서 내릴 수 밖에 없는 결론이라 생각된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조지 오웰' 은 영국인이란 사실에서 실마리가 있다.

그가 작품을 쓴 1948년의 영국은 2차 대전 승리국중 하나였다.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였던 대국이였다.

오웰은 그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뱅골에서 태어 났다.

그는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 나라였던 버마(미얀마) 에서 경찰로도 활동 했다. 또 후에는 스페인 내전까지 경험한 이력도 지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나라 제국주의인 영국과 그의 식민지 사정을 누구 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어떤 수단으로 식민지를 다스리는 지를 몸소 겪은것이다.

남을 다스리려면 수단은 통제밖에 없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핍박했듯이 영국이란 나라도 그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당시 소련의 스탈린식 체제에 대한 오웰의 경계심은 또 다른 제국주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였을까?

그래서 오웰이 묘사한 빅 브라더의 모델은 사실 스탈린 모습이라고 한다.

 

 

오웰은 제국주의 , 전체주의가 싫었던 것이다.

자신도 제국주의에 속한 사람이지만 오웰은 작가적 양심을 지녔다고 보아진다.

나치즘의 광기를 보여준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 '아돌프 아이히만' 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웰은 윈스턴의 마지막 모습에서 작가적 양심을 역설로 대답한다.

그냥 믿고 사는게 행복이고 승리라고. 그리고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고.

 

 

책을 덮고 나야 마지막 결말이 의미 하는 바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점차 두려워 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1984년 이란 시간에 집착하면  그 시절 추억이나 굿모닝 오웰 같은 감정에 빠지게 된다. 오웰의 예언은 틀렸다고.

이 책이 시간이 지날 수 록 무서운 통찰이라 여겨지는 점은 '빅 브라더' 가 진짜로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위의 수많은 CCTV ,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는 수많은 알고리즘, 내 편 아니면 전부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정치, 빈부의 격차, 가짜 사이비 뉴스의 범람, 그리고 사상을 통제 하는 언론들등 소설속의 빅 브라더와 골드 스타인이 바로 우리 곁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다시 질문해 보자.

2더하기 2 4라고 말 할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과연 가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집단이 4가 아닌 답을 한다면 나는 집단의 의견에 반대 할 수있는가?

내 적이라고 규정한 집단이 옳은 소리를 했어도 난 그 의견에 동조 할 수 있는가?

더 쉽게 말해 내가 지지한 당이 사실 틀렸어도 난 따라야만 하는가?

나는 과연 떳떳하게 세뇌 당하지 않았다고 자신 할 수 있는가?

보이고 들리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가 나에게 진정 있는가?

소설속 마지막의 윈스턴 처럼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 했다고 믿으며 사는 것은 아닌가?

 

 

니체(1944~1900)는 여동생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너의 영혼이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그러나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길 자처한다면 질문하라'

<1984>를 통해 오웰이 던지 메세지는 희망을 전해 주는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려했었고 실제 역사 1984년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4' 같은 추억을 떠올렸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 로 그가 그린 세상이 오질 않았다고 자신 했다.

그러나 다시 40년이 지난 오늘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또 다른 불안을 느낀다.

결국 오웰이 진정 두려워 했던 것은 자유가 없는 미래였다.

그래서 그의 두려움은 이제는 현재 우리의 두려움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2더하기 2 4 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자유.

이미 대답하기에 망설여 지는 시대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그가 말 한 1984는 지났지만 우울 하게도 빅 브라더는 그 날 태어났다.

 

어쩌면  우리는 윈스터와 같은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 다가 올 미래에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써야 될 지도 모르겠다.

 

오브라이언은 분명히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거요.‘ 라고 말했었다. - P40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쓰는 양피지 위의 글씨와도 같은 것이었다. - P59

위기의 순간에 싸워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육체라는 사실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 P142

그들은 당이나 국가나 이념에 충성을 바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충실했다. - P230

우리 사회에서 현재 어떤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른다. - P295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능한 존재가 된다네. - P365

마지막 까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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