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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 - 정현진 사진집
정현진 지음 / 파랑새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다양한 고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게있어 그 고통 중 하나가 바로 창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고통은 내게 독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창작의 세계 중 그 어느 하나도 내가 마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그 창작에 대한 갈망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같습니다. 스케치를 비롯한 그림부터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못하는 음악 그리고 같은 시선이지만 서로 다른 무언가를 담아내는 사진까지. 오늘은 그 중에서 사진을 만나보았습니다.
<아타락시아>는 정현진 님의 사진집입니다. 아타락시아? 아타락시아의 사전적의미를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그리스어로 철학에서 말씀하는 궁극적 목표이자 행복의 필수조건으로 고요한 마음의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원래 표지를 한번 더 감싸안은 검은 표지는 아무말씀 없이 그냥 책을 펼치게하는 묘한 매력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단색의 검은 표지는 원래 표지보다 심플하지만 그 심플함이 정현진 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아타락시아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타락시아>는 형상, 사유, 동심, 사랑, 행로 그리고 장면까지 여섯 가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씀을 시작으로 첫 번째 이야기 형상을 만나봅니다. '엄마와 산책', '결승선', '가로수' 등 사진들은 사진 옆 친절한 안내글이 있지만 사진과 타이틀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게있어 사진은 가족이나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 이외에는 담아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진을 잘 모르면서도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 깊이 있게 생각에 잠기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스치는 바람마냥 지나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사진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조금은 알 것 같은 사진들과의 만남이였습니다.
무엇보다 두 번째 이야기 사유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도하고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이나 모르는 사람의 발걸음처럼 훌쩍 벗어나기도 합니다. 상호 모순되기도 하면서도 분명 생각의 틈에서 작은 무언가를 건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장면들을 이미 만났지만 다만 담지 못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 '동요는 대상을 모를 때 일어나는 마음이다. 그럼 우리의 일상이 사유의 연속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한참을 머물다가 넘긴 이 페이지는 <아타락시아> 사진집을 다 보고나서도 다시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 동요는 대상을 모를 때 일어나는 마음이다. - 사유 39. 아타락시아 중에서
사진집을 보다가 사진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어떤 사진기를 이용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보통 사진을 담은 책자들을 보면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기는데 <아타락시아> 사진집에는 일절 그런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사유-65의 '눈을 뜨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어떻게 촬영했을까? 했는데 사진 위 안내글을 보니 스마트폰으로 담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이 붓을 탓한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냥 무엇이 되었든 담고자 하는 그 마음을 제대로 담으면 되는 것을 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사유는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기도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동심에서는 아이, 소년, 소녀를 만나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동심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이야기 사랑에서는 사랑-01 '사랑'을 통해 최근 내가 다양하게 만나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만났습니다. 사랑을 어떻게 보느냐? 누가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사랑일수도 아닐수도 있음을 글이 아니라 한 장의 사진으로 느껴봅니다. 사랑을 담은 사진은 대부분 멀리, 흐릿하게, 넌지시 던져주는 물음표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섯 번재 이야기 행로의 길을 따라 걷다가 여섯 번째 이야기 장면을 만나면서 다양한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넓게 멀리 그리고 다양한 창으로 사진 밖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집 <아타락시아>는 여섯 개의 다양한 창으로 보여주는 놀이터 같습니다. 물론 그 놀이터는 사진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을 담기도하고 시선을 담기도하지만 그냥 놀이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예술사진이 될수도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냥 사진 놀이를 즐기는 사진집이 될수도 있음을...
내가 담는 사진이 당장은 지워버리고 싶은 어설픈 것들이라도 그 안에 내 이야기가 담겨있다면 그것은 분명 또다른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이라는 놀이의 즐거움을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얻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