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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사랑. 나는 오늘 또 다른 사랑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니 사랑이라고 말씀하기에 부족함으로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이 안의 사랑 이야기는 가엽기도하고 슬프기도하고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그 누군가에게는 역겹고 지저분하고 더러울지도 모릅니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한 남자 그리고 역시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한 여자와 또 다른 한 여자. 셋이 보여주는 행위는 섣부르게 사랑이라고 말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행위는 분명 또다른 사랑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소한 풍경>은 ㄱ이라는 한 여자. ㄴ이라는 한 남자와 ㄷ이라는 또 다른 여자. 그리고 화자인 ㄱ의 이야기를 듣는 작가가 있습니다. 화자인 ㄱ에게서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를 보셨어요?' 라는 질문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이들의 사랑과 비밀은 가시와 데스마스크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시는 살아 있는 선인장의 데스마스크라 할 수 있다. - p. 31
선인장의 가시. ㄱ과 ㄴ의 몸부림은 또 다른 가시를 보여주고 있는듯 합니다. 둘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숨겨두었던 가시를 밖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가시는 서로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로 가득한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 같습니다. ㄱ과 ㄴ이 어쩌면 이러한 수순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숨겨둔 그의 가시가 숨겨둔 내 가시를 건드려 몸뚱어리 밖으로 끌어낸 형국이라 할 수 있다. - p. 78
ㄱ과 ㄴ. 그리고 ㄷ의 몸부림은 덩어리입니다. 시작하기 위해서 끝내야하고, 끝내기 위해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처와 순수의 단어 속에서 덩어리의 실체 혹은 광체를 보는듯 합니다. 덩어리의 실체는 어쩌면 죽음 이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면은 광채로 가득한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덩어리라는 말에선 '상처의 주머니'가 아니라 '순수의 집합체' 같은 광채가 느껴져서 좋아요. - p. 200
ㄱ과 ㄴ. 그리고 ㄷ이 보여주는 암묵적 계약은 분명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ㄱ은 혼자 사니 참 좋다고 했습니다. ㄴ과 함께하면서 둘이 사니 더 좋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ㄷ과 함께하고서는 셋이 사니 진짜 좋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이 덩어리지는 것은 음란하기도하지만 사랑의 다른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ㄱ인 그녀가 음란한 것인지, 아니면 남자 ㄴ이 그러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ㄷ이 그러한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아주 음란한 여자인 모양이다. - p. 319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해 말씀해보라하시면 선뜻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또 다른 사랑에 대해 보았구나. 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운명을 가졌든 어떤 식으로 불리우던...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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