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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 ㅣ 탐 청소년 문학 10
우르술라 포츠난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탐 / 2013년 8월
평점 :

아주 독특한 설정의 소설 <에레보스>를 만나보았습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에레보스는 게임입니다. 게임도 그냥 게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이 살아있다? 그러면 게임이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키울 수 있나? 혹시 인공지능 게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게임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임을 수시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물론 나의 경우 그정도 몰입을 해본 게임이 너무나 오래되었지만 말입니다. 아주 가끔 에레보스와 같은 이상적인(?) 게임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설 <에레보스> 속의 게임 에레보스를 접속해서 게임을 제어하고 있는 주인공 닉을 통해 내가 게임을 바로 앞에서 하고 있는 착각도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적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아야겠지만 말입니다.
"때로는 일부러 못하게 해. 널 시험하면서 기다리는 거야. 가끔은 게임이 살아 있는 것 같다니까." - p. 105
게임 에레보스에 접속하면 한 줄의 문장부터 게임을 자극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게임을 하고자 하는 유저로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게임의 속성이 자극적이면서 무언가를 계속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중독성을 키웁니다. 에레보스 역시 게임의 기본은 같지만 게임 유저끼리 레벨을 빼앗을 수 있는 시스템에 또다른 매력도 느낌니다. 그리고 내가 소설 <에레보스>를 읽고 있는지 게임 에레보스를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들어오라. 아니면 돌아가라. 여긴 에레보스다. - p. 41
게임 에레보스가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게임 유저에 대한 관찰을 통해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통제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앞에서 언급했던 살아 있는 게임, 인공지능 게임에 대한 생각의 확장을 하게 됩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게임 유저로 인해 무너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빛과 어둠, 가상과 현실은 게임 에레보스가 추구하고자 했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게임 대상이나 독자층이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을 두고 게임 속 이야기로 채웠다면 좀 더 자극적이고 어둠이 깊이 있게 내려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스 신화를 알고 있다면 소설 <에레보스>와 소설 속 게임 에레보스를 좀 더 재미나게 읽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아들은 제목을 보더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인가? 라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던 부분이 맞다고 좋아했답니다. 책장을 덮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런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장르의 게임이 앞으로 충분히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는 어둠보다는 빛을 추구하는 게임이기를 바래봅니다. 게임 이야기로 가득차다보니 게임 중독에 대한 위험한 이야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