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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오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 한 권을 여기에 올려놓습니다. <외면하는 벽>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8개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놓은 작품입니다.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책,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사람이 만든 책. 이 책 <외면하는 벽>은 급속한 근대화 바람속의 변화가 소통의 단절을 불러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 <외면하는 벽>에 있는 작품들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지금의 우리의 삶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미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소통의 갈증으로 허우적거리는 나와 우리의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8개의 작품 중에서 처음 만나는 '비둘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말'과 '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을 만납니다. 함께하고 있어도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흘려듣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말은 절대적인 행동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꼭 자기계발서에서 나를 만드는 하나의 힘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은 소통임을 강조하고 있는듯 합니다.
말은 말 앞에서 말일 수 있는 것이지 소리 앞에서는 부질없는 소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말을 소리로 전락시키는 것만큼 비열하고 치사한 짓이 또 있을 수 있는가. 말은 절대적인 행동인 것이다. - p. 17 '비둘기' 중에서 |
네 번째 작품 '한, 그 그늘의 자리'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닫습니다. 누구나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가 말하는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되돌림표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혹은 내 모습 속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생각으론 꿈이란 야망하고 가까운 것이 아니라 상처하고 친구예요. 아픈 과거의 되풀이가 꿈인 것 같아요." - p. 213 '한, 그 그늘의 자리' 중에서 |
여섯 번째 작품 '외면하는 벽'에서 좀 더 가까운 지금의 우리를 보는듯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독에 갇혀살아가는 현대인들. 그 안에 나 또한 자리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단지 보이는 벽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는 보이는 벽보다 가슴속에 남아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서로를 외면하는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긴 아파틉니다. 넓지도 않은 13평짜리예요. 거기다가 여름이고, 모두 가난한 사람만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지 쓰레기도 제대로 안 쳐가 파리가 얼마나 들끓습니까. 내 말을 야속하다고 생각진 마십시오. 벽 하나를 사이에 놓고 위아래, 양옆으로 사람들이 사는 아파틉니다. - p. 270 '외면하는 벽' 중에서 |
일곱 번째 작품 '미운 오리 새끼'를 읽으며,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식축구선수 '하인즈 워드' 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래 문장이 지금 우리의 변화되지 않는 모습 때문에 괴로워 하며,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재탄생 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섞여버리고 싶다, 묻혀버리고 싶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단일민족'이라는 허울속에 살아가는 나와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리 지르지 말어. 깜둥이놈 하나쯤 꼬시는 건 자신 있어. 미국에 가서 이혼하는 조건으로라도 난 하날 꿰차고 말거야. 거기 가서 혼장 청소부를 하거나 식모살이를 한들 얼마나 행복하겠어. 난 거기선 최소한 구경거리는 아니란 말야. 섞여버리는 거야. 묻혀버리는 거야. 그것만으로 난 미치게 행복할 거야. 어렸을 때 받은 천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렇게 다 커가지고 손가락질당하는 외톨이로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어. 난 더 못 견뎌. 아무도 붙여주지 않고 아무 데도 몸 숨길 수 없는 여기선 더 못살아. 차라리 죽고 말 거야. 철이 들고 어른이 되면서는 무엇이든 참고 견디게 된다지만 이것만은 그 반대야. 난 꼭 가고 말 거야." - p. 306 ~ 307 '미운 오리 새끼' 중에서 |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 그 안에 갇힌 우리들의 고독!' 이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결국 사람간의 '소통'이 최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이지도 끝도 없는 벽 속에 스스로 갇혀 살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