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사랑이다 2
피에르 뒤셴 지음, 송순 옮김 / 씽크뱅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 시를 통해, 노래를 통해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과 일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랑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시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을 통해 영원까지 사랑하고 그 무엇도 자신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 <아프니까 사랑이다>를 한 편의 시로 만날 수 있다면 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 칼릴 지브란

 

그 깊은 떨림.

그 벅찬 깨달음.

그토록 익숙하고

그토록 가까운 느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껏 그날의 떨림은 생생각합니다.

오히려 천 배나 더 깊고

천 배나 더 애틋해졌지요.

나는 그대를 영원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이 육신을 타고나

그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살아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알아버렸습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 <아프니까 사랑이다> 1권을 덮고 2권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와의 싸움일수도 사랑이 꼭 보수와 진보를 논하고 싶지도 않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부득이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시대적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실화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 혹은 민주주의나 사랑의 표현에 있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프랑스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것들은 과거 그리고 현재 아니 어쩌면 몇 년 아니라 몇 십 년이 지나도 이해하거나 용서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는 내가 어디에 있고 어느 관점에 있느냐가 그 사랑을 사랑으로 보느냐 아니면 17살 철부지 소년과 15살 연상의 여교사의 불장난으로 생각하느냐를 결정지을 것 같습니다.

 

제라르와 다니엘은 제라르의 아버지 혹은 보수 진영과 괴로운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로서 아니 부모로서 겉으로 보이는 진보성향 보다는 가족과 아들을 지키려는 보수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권 서평에서도 언급했던 꼭 보수와 진보 보다는 만약 내가 제라르의 입장이라면 혹은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둘 모두가 맞고 또 둘 모두가 틀리는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사랑도, 두 사람의 사랑을 비추어 줄 따뜻한 햇빛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무너지는 심정을 태양의 존재에 비춰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라르!

  태양이 존재한다고 말해 줘. 그리고 진실과 순수함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이런 것들이 나의 몽상은 아니었다고 말이야.

  나는 내일의 아침이 <이방인>처럼 끝나길 바라게 되었어. 그러나 여기서는 불가능해. 부조리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야. 나는 바위에 눌려 아주 형편없이 짜부러지고 있어.

  제라르!

  터널에도 끝이 있는 법인데, 내 절망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 p. 191 태양이 존재한다고 말해 줘 中 

 



 

  

 

 

 

멜로 영화나 사랑을 다룬 책들은 종종 '사람을 사랑한 죄'에 대한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두 사람도 그 죄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죄가 서로를 사랑한 것이 문제일까요? 사회에 대한 도전,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은 인간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한 사회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 나의 소원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으면, 비록 그 문제가 파국의 양상을 드러낸다고 해도, 비록 그 문제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비록 그 문제가 패배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 p. 219 슬픔의 초상 中 

 



 

 

 
 
다니엘을 부정한 사회를 다니엘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제라르는 다니엘이 부정하며 떠나며 못다 쓴 유서를 살아서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라르는 다니엘을 자신의 가슴에 안아 그녀를 재웠습니다.
 
  


 

   "나의 소원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으면, 비록 그 문제가 파국의 양상을 드러낸다고 해도, 비록 그 문제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비록 그 문제가 패배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더 이상은 그 누구도 희생되질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 죽음이라면, 이제 남은 자가 할 일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한 사회를 나는 거부했으나, 누군가는 끝까지 남아 싸워야 합니다."  

- p. 227 에필로그 中

 


 
 
 
옮긴이는 이 책이 '소설로 나오기까지'에 대해 프랑스의 시대적 배경과 두 사람의 사랑이 사회에 던진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나이가 바뀌었거나 시점이 조금만 바뀌었다면 그들의 사랑도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비슷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같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문학과 현실에서 나의 위치와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은 어쩌면 보수와 진보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열려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사랑이 우리 아이들 이야기라는 전재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럴 것이라고 100%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그 문제에 대한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풀이는 해보려고 찾고자 할 것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 수 있음은 이 사회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가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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