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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죽을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그 답을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여서 일지도 모르고 또 사랑을 위해 그렇게 그리워하고 싶지도 않다. 더더욱 사랑을 위해 죽고 싶지도 않다. 너무 이기적인라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난 나를 제일 사랑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애절한 사랑에 대해 더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 더 그립고 애절하고 한이 함께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랑이 싫다. 난 아픈 사랑이 싫다. 난 착한 사랑이 좋다. 가슴 따뜻한 사랑이 좋다. 애절해도 아픈 사랑은 싫다.
이 책 <그리워하다 죽으리>는 18세기 조선의 시인이자 유배객인 김려와 함경도 부령 관기 연화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마도 18세기 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들이 그때와 같이 사랑을 한다고 하면 아이들의 불장난 이거나 혹은 미성년자 보호법 등의 이유로 부적절한 논란에 휩싸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시대를 거슬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뜻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아름답고 애잔한 그들의 사랑 노래를 듣다보면 나도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리만족을 위해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두 눈이 소녀를 보고 있었다. - p 28
"서방님은 볼수록 잘나셨어요."
"핫핫핫! 그대도 정녕 아름답소."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백두산의 맑고 맑은 정기를 받고 2천년 만에 태어난 꽃이랍니다. 무슨 꽃인지 아셔요?"
"연꽃(蓮花)이지."
연화의 이름 자체가 꽃이었다.
"그래요. 연꽃이에요. 나는 꽃의 정령이에요."
"나는 2천년 만에 태어난 꽃을 꺾었으니 행운아일 것이오."
"서방님, 서방님....."
"왜 그러시오?"
"꽃이 예뻐요? 내가 예뻐요?"
연화가 국화꽃을 내 얼굴에 갖다대고 흔들었다. 나는 킁킁거리고 들국화의 향기를 맡았다. 문득 로려말의 문장가이자 시인의 이규보의 <절화행(折花行)>이라는 악부체 시가 떠올랐다.
p. 43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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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곳이 어디일까?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 머물러 있는 곳이 또 어디일까? 김려와 연화가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무릉도원이란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무릉도원에 있습니까? 라고... 사랑을 한다고 해서 이들처럼 무릉도원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는 이들의 사랑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묻노니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 나는 북쪽 바닷가 미인을 그리워한다네' 김려는 연화를 그리워한다. 연화는 김려를 그리워한다. 그 생과 사의 거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한다.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사랑을 믿는가? 오지 않는 님을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일까? 그리워하다 죽는 것이 사랑일까? 그것이 만약 사랑이라면 난 사랑을 하지 않으련다. 난 아픈 사랑이 싫다. 아픔 이후에 행복이 올 수도 있지만 난 그런 기다림을 그리움으로 채우기 싫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시대를 떠나 바보 같지만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바보같은 사람들... 바보 같은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