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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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교류를 통해 내 손안에 쥐어진 두 권의 책 중국 작가 장윈의 <길 위의 시대>와 한국의 박범신 작가의 <비즈니스> 이다. 이번 주 다른 책들과 함께 이 두 권의 책도 함께 읽었다. 중국에서 출간된 책을 읽지 못해서 일까, 조금은 신선하고 또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동양의 그 느낌 이라는 서정적 이미지는 중국과 한국이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시의 슬픔과 고독 그리고 무섭도록 아름다운 잔인한 것들을 보았다.

 

시인 망허와 작은 도시의 대학 중문과에 재학중인 여인 천샹. 천샹은 시인 망허를 통해 자신이 시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하룻밤, 그 하룻밤의 인연은 천샹에게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가질수 있게 한다. 소설의 배경은 낭만과 순수의 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시가 내뿜고 있는 기운을 조금씩 함께 마음에 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많은 대화나 만남보다도 한 줄의 시가 모든 것을 의미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이 이러할까? 내가 엄마가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세상 모든 엄마들은 이미 시인일 것이다. 천샹의 마음 속에 망허는 세상 최고의 시인이다. 한 사람을 시의 일부로 또 시 그 자체로 창조 했다. 또한 천샹은 한 아이에게 시인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망허의 시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창조는 바로 그녀와 망허 두사람의 걸작 '샤오촨' 이다.

 

 

 



 

 

 

 

망허는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시인이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낯선 자극을 찾아 나서지만 망허의 사랑은 그 위에 있다. 그녀의 사랑이 평범함을 원할 때 망허는 새롭고 낯선 자극을 찾는 망허가 아니다. 평범한 한 여인의 사랑을 함께하는 한 남자일 뿐이다. <길 위의 시대>를 읽다보면 문장 하나, 하나가 모두 아름답고, 설레이고, 가슴시린 시 한편 인 것 같다. 아마도 감정의 그 선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망허가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은 '예러우'... 그렇다면 '천샹'은...  



 



 

 

 

 

책 중간 중간 시적인 표현이 많다. "천리를 배웅한다 해도 결국 이별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망허와 예러우가 답사를 위해 훙징톈과 이별을 하며 던진 말이다. 세상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했는데 이 문장이 결국 이별을 암시하고 있음을 느끼게끔 해주는 것 같다.

 

망허는 알고 있었을까? 예러우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약해지지 않으려는 느낌이 책 장 한장, 한장 마다 깊이 묻어 난다. 그러나 그녀도 결국 여자이였던 것일까? 아니면 결국 이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결말로 다가가면 천샹과 망허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아니 책 중반 이전에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만난다. 시에 대한 서로의 생각 속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인이였지만 한번도 시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망허와 시를 사랑한 여인 천샹은 잔인한 것들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속에는 시도 함께 있음을 알고 있다. 시대의 흐름 속에 아름다움도 변하고 중요시 여기는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것 같다.



 



 

 

 

 

중국 소설가의 <길 위의 시대>를 통해 무협지를 제외한 중국 소설을 처음 접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지금 내 안에는 따뜻한 느낌이 남아 있다. 그것은 처음 만나본 소설이 물론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답기에 이 소설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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