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 <루시퍼의 복음>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에 영향을 준 작가 톰 에겔란의 최신작으로 노르웨이 2009년 최고의 과학 스릴러 소설에 수여되는 리버튼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성경, 신화, 사탄 등 저자의 지식과 상상력이 만나 이 모두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하르마게돈의 예언을 담은 또 하나의 고문서 <루시퍼의 복음>이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의 '저울의 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는 것을 책의 끝을 읽고 내려놓기까지 무한 반복의 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책이 어느 방향 어느 시점까지 나아갈 것인지 미리 짐작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였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다면 역사, 종교, 미래, SF를 총 망라한 책의 읽는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약 40년의 시간과 공간을 왕래하며 신학자이자 악마학의 최고권위자인 지오반니 노빌레 교수와 고고학자 비외른 벨토를 만나는 나는 시공을 초월한 <루시퍼의 복음>으로 점점 빠져 들게 되었다.

 

SF 소설속에서 흔히 만나는 주인공과는 너무도 다른 어쩌면 일반적인 성향을 지닌 이 책의 주인공 '비외른 벨토'는 어머니의 배신 혹은 아버지의 배신으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 책은 <루시퍼의 복음>으로 두러싼 시공을 넘나들며 진실이 무엇이고 그 깊이는 어디까지 인지 찾고 있다.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와 성향을 들여다 보며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들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상대에 대해 방어적이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루시퍼의 복음>을 향한 진실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기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책을 읽는 내내 힘을 불어 넣기도 한다.  

 

고문서, 필사본, 빛의 전달자, 예수 탄생, 루시퍼, 사탄 등 종교와 문명을 엮어 나갈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책을 지배하는듯 싶지만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 책 속에는 운명뿐만 아니라 진실의 외곡 혹은 자신들의 '알지 못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짖누르며 자신들의 진실만을 남겨두기를 원한다. 책 속의 진실은 <루시퍼의 복음>은 현존하는 어떤 필사본 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이고, 외곡은 종교, 특정집단이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외곡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운명이란 눈에 보이는 실과 보이지 않는 실로 짠 천 같은 것이다.얼키설키 엮어진 실이 만들어낸 무늬는 마치 인간의 운명와도 같앗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p. 25

 



 

 

 

 

로마와 노르웨이의 공간과 40년 이라는 시간의 차를 <루시퍼의 복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양파껍질을 파헤치듯 서서히 파고들어간다. 그러나 양파껍질이 그러하듯 벗겨도 벗겨도 그 안의 진실의 깊이는 도무지 알수가 없다. 진실에 다가서기도 전에 다가오는 종교적 파생이 부르는 지옥, 악마 그리고 드라큘라 기사단은 진실로 접근하기 보다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자꾸 미끄러져만 가는것 같다. 1970년 로마에서는 지오반니 노빌레와 그녀의 딸 실비나 그리고 그녀의 수호천사 '로로'를 통해 나는 저자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함정 속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빠져들며 날개잃은 천사 혹은 비행기 처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책을 다 읽기 전에 나락으로 빠져드는 함정이 아니라 일반적 흐름으로 나아간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악마, 사타니즘, 신, 사탄 등 종교적 의미와 신화적 가치를 담은 수많은 존재들을 통해 생각하지도 못한 결론과 나의 아둔한 두뇌로 그 향방을 쫓아가는 힘겨운 싸움은 천사, 루시퍼 등의 신화적 이야기의 재미로 만족을 할 수도 있었다. 66개의 양초와 몸에 한방울의 피도 남아있지 않는 시신 등은 이 책이 이끄는 결과을 도달하기 위한 아닌 저자의 함정 중 하나라고 생가한다.

 

소설속에서의 진실은 무엇일까? 또 허구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책은 깊이 있는 만족을 느끼기 위해 몰입하는 단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싶다. 한번쯤 들어보았을 2012년 종말론에 대한 언급도 서슴치 않고 나온다. 도대체 <루시퍼의 복음>이 어느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을래 지금까지 언급되며 세상을 놀라게한 이야기들로 하나가득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치는 것일까? 어느 순간 신화적 이야기에서 반전되는 아니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해야 하나 싶다. 신화적 이야기에서 공상과학 영화 같은 새로운 장르로 진입하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한대의 우주. 이것은 이제 이 책이 나아가고자 하는 진실을 이제야 내려 놓고 있는 것이다. 

 

'하르가-메-기도-돔'

 

나는 무신론자이다. 어쩌면 신을 믿고 싶어진다. 또 어쩌면 지금까지의 무신론자이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무엇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을테니 말이다. 진실은 모두가 안다고 해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진실로 인해 혼돈의 세계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표지에서 언급하듯 창조론과 진화론, 신과 악마 그리고 종말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믿지 못하는가. 나는 지금 책을 덮고 이 끝없는 주제에 의구심 한 점을 찍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세상에 대해 무관심 했다면 그냥 그렇게 아니면 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뜻과 진실은 정반대로 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로 끝나는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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