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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구판절판
나에게 번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는 공기와 같이 항상 내 안과 밖에 자리잡고 있고 지금도 내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다. 이 책 <번뇌 리셋>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 정말이지 진정으로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책은 스스로가 심리학 책인가 라고 묻더니 그렇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은심리학 책이라고 하니 심리학 책이기는 한 것 같다. 이 책은 불교의 근본을 네 컷의 만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네 컷의 짧은 만화는 수많은 생각을 재탄생 시키고 있다. 내가 이 책 <번뇌 리셋>을 통하여 나의 번뇌를 잠시나마 리셋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는 순간 순간이 오히려 한순간 우물속에 가득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번뇌가 내 머리 속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도 점점 편안함을 찾으며 마음의 안정으로 되돌아 오는 것을 느낀다. 처음의 번뇌는 아마도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이거나 제목으로 인해 부담스러웠던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네 컷 짜리 만화를 통해 우리의 내면의 번뇌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 번뇌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3장에서는 불교의 근본인 깨달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네 컷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개하는 장에서데 인물이라기 보다는 생명체 라고 보아야 맞을 것 같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이 책의 주인공 격이 동자 스님, 동자스님의 빛나는 머리에 즐겨 앉는 꼬마비둘기 뽑뽀 그리고 꼬마아가씨와 고양이, 구름, 말많은 곰돌이, 환멸선생,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드바이서, 내면의 또다른 자아 속물군으로 아홉 생명체가 이 책을 엮어가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카르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카르마란, 마음속에 쌓아놓은 에너지라고 하는데 긍정과 부정의 힘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뒷면 혹은 내면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잠재되어 있는 힘을 카르마 라고 한다. 카르마 중에서도 탐욕, 진에, 우치의 번뇌가 가장 강력한 근본번뇌라고 한다. 이 세가지를 불교에서는 삼독이라 하는데 욕망, 혐오감 그리고 미망이 엮어져 발생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 '카르마'가 내면의 자아를 성찰하는 불교 혹은 자기자신과의 조화를 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기본이 아닌가 싶다.
마음속에서 조금이라도 밀어내려는 반발력으로 '분노'는 분출한다고 하는데 이 분노는 충동을 항상 대동하고 다닌다고 한다. 나는 우리는 이 분노를 얼마나 조절할 수 있을까? 순간 순간 찾아오는 이 분노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도 하고 때론 그 분노가 나를 집어 삼키어 이후의 행동이 내가 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밀어냄이 없다면 분노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결코 쉽지 않은 것을 저자는 너무 쉽게 설명하고 있고 실천하는 것 같다.
불교 입문을 3초만에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나는 수천번이라도 했을 것 같다. 어쩌면 3초마다 계속 불교 입문을 하다보면 그 답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 혹은 비움을 깨닫고 배워야 할 것이다. 이 3초가 숫자 3이 아니라 그 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을 뒤늦게 알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 3초를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씀처럼 3초가 아니라면 2초 그것도 아니라면 1초를 시도해 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 만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아폴로 신전에 쓰여 있던 '너 자신을 알라'의 글귀를 소크라테스가 몸소 실천했던 것과 같이 그 깨달음의 세계에만 빠짐을 말하는 것인가? 깨달음은 깨달음 자체를 말한다고 한다. 욕망이 포함된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처럼 세상의 욕망을 먹고 사는 사람은 과연 깨달음을 알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 욕망의 굴래를 벋어 던지는 그날을 기약하며 이 책을 다시금 천천히 생각을 비우며 읽고 싶다.
번뇌를 리셋하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 번뇌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나의 또다른 친구로 받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