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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
주원규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7월
평점 :
망루를 읽었습니다. 아니 망루를 보았다고 해야 할 것 갔습니다. 이 책 <망루>를 읽고, 보고 있는 동안 책 내용이 머리속에서 실루엣 영상이 아닌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2009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주원규 작가의 소설입니다. 이 책에서는 종교와 철거민들의 주 배경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책의 결말은 어느정도 예상을 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한다고 봅니다. 꼭 종교를 기독교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도 삶을 살아가며 배웠거나 느끼면서 체험했던 것들을 되돌려보면 결말을 어렵지 않게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더럽거나 깨끗한 것, 높거나 낮은 것, 많거나 적은 것을 포함한 이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들은 이미 그가 만든 세상이므로 누구를 두둔하거나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는 바로 '망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망루란? '방어, 감시, 조망을 위하여 잘 보이도록 높은 장소에 또는 건물을 높게하고 사방에 벽을 설치하지 않은 건물 또는 그와 같은 장소'를 말하고 있지만, 이 책 <망루>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 '망루'는 창조자 혹은 방관자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칼은 누구의 것이오? 결국 당신의 것, 인간의 것이오. 이 칼의 심판의 칼이 되는 순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 심판은 외로울 수 있을 것이오. 그 심판은 정의와 공분, 마땅한 신의 정의가 이 땅 위에 선포되는 영과스러운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그 칼을 쥘 수 있는 권리가 없소."
"도대체 왜! 잡을 수 없다는 거요?당신은 창조주요. 모든 것을 지은 자요. 만유는 당신으로부터 발출되었고, 당신의 의지와 당신의 말씀 하마디에 의해 모든 것이 조성되었소. 그런데 왜 당신 맘대로 하지 못하는 거요? 어째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난 저들을 심판할 수 없소."
"뭐요?"
"저들 역시 내가 창조해 낸 피조물들이기 때문이오."
"......"
"저들의 욕망, 저들의 쾌락, 저들의 욕구, 저들의 야만, 저들의 타락, 저들의 비열함, 저들의 마성 모두 나의 창조의 터전 안에 있는 것들이오."
"......"
"그렇기 때문에 난 저들을 심판 할 수 없소. 심판할 권리가 없는 것이오."
"......"
"이제 나를 찌르시오. 당신의 사명을 감다하시오.
<중략>
그것만이 지금의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이오. 기적의 계시가 될 거란 말이오."
- p. 315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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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교회는 신도들 미래의 비젼이나 하느님의 은혜로 나아가기 보다는 단 한 사람 '정인'의 독선과 야망의 힘을 받쳐주는 주춧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민우'이며, 결국 그 길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사람 역시 '민우'가 되어 버립니다.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교회'는신성시 되며 절대권력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에 대해 견제할 수 있거나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신 일까요? 아니면 사람들 일까요? 사람들 일 것입니다. 신은 '나에 대한 신'일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그러한 권력이나 행사를 하는 이'에게도 신 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를 견제하거나 심판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는 바로 사람인 것 입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 정인ㅇㄴ 세명교회 예배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중략>
그 어느 때와 마찮가지로 촘촘하고 조밇게 지면을채우고 있을 A4 용지 서너장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봉투 속의 내용물을 꺼낸 이후로도 거의 1분이 지나가도록 정인은 말문을 열지 않았다.
<중략>
정인이 봉투 안에 담겨 있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봉투에서 꺼낸 내용물 외에 다른 모든 사물들이 캄캄한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기괴한 착시를 체험해야만 했다.
<중략>
정인이 꺼낸 봉투 안에 담긴 A4 용지 석 장엔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단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백지였다.
<중략>
"정...... 정민우...... 전도사, 어디 있습니까?"
<중략>
- p. 302 ~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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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타락을 할까요? 사람은 어디까지 타락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책 곳 곳에서는 '재림 예수'와 '벤 야살'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 책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펼쳐져 보이는 그림이 그들의 이야기에서 시공간의 차이와 인물의 차이를 두고 벌어지는 현상을 옮겨놓은듯 합니다.
내가 찾는 신. 당신이 찾는 신. 어디에 있을까요? '재림 예수'와 '벤 야살'의 또다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하느님을 믿든 아니면 종교도 없고 하느님을 믿지 않던간에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이 땅 위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파랑새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뒤지고 다니는 것처럼 나의 신 그리고 당신의 신을 이자리에서 찾지 않고 헤메이지 않는가 돌이켜 보게 만듭니다.
"난 저 성전에 머물러 있지 않소. 난 여기에 있었을 뿐이오. 이 땅 위에.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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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화 한 편과 시 한권을 읽은 듯합니다. 종교가 없어도 아직 하느님을 섬기지 않아도 그 말씀을 성경이나 지침서가 아닌 소설책 한 권이여도 온전하게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에 다시한번 노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