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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이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1. 데뷔 16년 차 젊은 작가 김중혁의 신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작가가 나이를 심하게 속인 것이 아니라면 1971년생, 우리 나이로 46세를 지나 47세로 옹골차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십니다. 거의 반백년을 살아낸데다가 데뷔한 이후 16년째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각종 방송 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애정 작가님입니다. 이런 분이 도대체 언제쯤 젊은 작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젊고 늙음에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연차가 16년쯤 되면 일반 기업에서도 적어도 부장급 이상은 될 텐데 뭔가 신인 같은 "젊은"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은 젊은 작가로 계속 불리는 것을 딱히 싫어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방송 등에서 드러나는 이분의 성향이나 스타일을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책 제목처럼 농담을 즐기고 항상 즐거운 태도인데다가 위트가 있죠. 그 와중에 필요할 때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농담이다"라는 제목은 이분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합니다.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생소함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스탠드 업 코미디언과 우주비행사라는 조합을 만들어 냈고, 이야기의 흐름이 유연하게 잘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조화를 잘 이룬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아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어지는데다가 항상 이야기에 약간의 위트와 유머가 담겨있어 부담이 없습니다. 이야기 초반부터 캐릭터의 직업 설정도 식상하지 않아 좋았고, 이야기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도 진중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보통 신선한 이야기를 생각해서 뭔가 설정을 하고 써내면 억지스럽거나 어색하기 마련인데 역시나 데뷔 16년 차 젊은 작가는 노련했습니다. 에세이도 그렇지만 항상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를 보면 "젊은" 이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김중혁 작가는 이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말에서조차 약간은 희화된 표현들을 하고 있는데, 사실 내용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극중 주인공 송우령은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남성인데, 잘 살펴보면 마치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말로 전하느냐, 글로 전하느냐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웃음과 감동을 준다는 데서 본질적으로 송우령과 김중혁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김중혁 작가는 팟캐스트나 방송을 통해서 종종, 아재 개그 같은 이야기를 "말"로 자주 전하기도 합니다.
작품 속의 송우령은 평소에는 말이 없고 소심하고 조용하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무척이나 자질이 있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고 제법 관중들을 잘 웃기는 편입니다. 그러나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선배는 방송 출연으로 일약 스타가 되는 반면 본인은 계속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업소 스탠드 업 코미디언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설정과 상황에 작가의 현실이 어느 정도 투영 된 듯한 느낌을 자연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송우령이 코미디 속에 농담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작가도 소설 속에 농담으로, 현실 속에 아재 개그 같은 헛웃음이 픽 나는 농담으로 존재해 갑니다. 그리고 대중이 부담스럽지 않게, 주변 사람들이 편안하게 실없는 농담을 끊임없이 이어갑니다. 아니 본인이 즐겁게 살기 위해서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농담과 소설을 끝없이 이어져 갈 것입니다.
한편 이복형으로 등장하는 우주비행사 이일영이 우주공간에서 조난 당한 이후 관제로 전하는 "말"을 읽는 것은 이 소설의 백미 중 백미입니다. 우주공간은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소리도 빛도 없는 "무"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이일영의 존재는 오로지 "말"로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산소가 바닥날 때까지 이일영은 끊임없이 "말"을 통해 그이 존재를 토해냅니다. "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 것처럼 계속 "말"을 전합니다. 이 "말"의 파장은 전해지고 전해져, 지구에 있는 그의 애인에게도 동생에게도 전달됩니다. 이를 통해 이미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가 글로 남긴 어머니의 "말"이 다시 우주로 전해지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해주는 삶과 죽음, 관계의 의미와 편지, 코미디, 통신 등의 매체를 통해 남겨지는 "말"을 통한 존재의 의미 등에 대한 관조는 짧은 소설을 저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읽는 분의 취향에 따라서 이 소설은 다소 정돈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저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무척 좋았습니다.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라는 감상이 남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마음에 든다'라는 생각은 흔치 않기 때문에 무척 괜찮은 작품으로 남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