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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청소년 SF
하인라인 옹의 수많은 작품 중에는 몇 가지 분류가 가능한데 그중 한 종류가 바로 청소년 SF 계열입니다. 아마도 당시 미국 SF계에 큰 독자층이 어린 학생, 청소년 층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읽기에 좋을 만한 작품을 의도적으로 장착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작품 중에는 "하늘의 농부(Farmer in the Sky)"나 "화성의 포드 케인(Podkayne of Mars)" 등이 이 청소년 SF 계열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일단 화자(주인공)이 어린아이들이고 주요 등장인물 역시 그렇습니다. 청소년 SF에 맞게 아이들이 특정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우주여행 또는 모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교훈을 얻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적인 지식을 소개하고 어렵지 않은 용어로 설명하는 부분이 포함되는 것도 특징입니다.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화성의 포드케인에서 좀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런대로 읽는데 무리 없고 흥미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2. SF의 미덕을 잘 품고 있는 소설
이 작품이 청소년 SF로써 가치 있는 이유는 #1에서 언급했던 전반적인 흐름과 함께, 과학적 지식을 디테일하고 생동감있게 잘 전달하고 있는 점과 숨 막히게 긴장감 넘치는 다분히 상상에서나 가능한 모험을 잘 그리고 있는 점 등입니다. 초반부에 주인공 킵이 우연히 얻은 오래된 우주복을 수선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묘사되는 과학적 지식은 하인라인 자신의 슈트 형 우주복에 대한 제작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무척 생생하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뜬금없이 우주로 나가게 되면서부터 화려한 모험이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훅하고 등장하는 외계인과의 조우와 외계인의 묘사는 묘하기도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외계인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은 마치 "마션"에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우주선으로 떠나는 여정에서의 긴박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탈출 씬 이후 내용이 결말까지 조금 엉뚱하기도 하고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해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 그 대신에 결말 부분에 역시나 청소년들을 위한 철학적 질문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존재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그리고 '인류는 멸망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 가치 있고, 발전하는 존재들인가?' 등의 가치판단적 질문이 던져집니다. 그리고 하인라인은 결론을 내리기는 부담스러웠는지 결론을 유보하는 쪽으로 내용을 마무리합니다.
#3. 제목, 표지... 흐음...
하, 이거 참, 곤란합니다. 이 작품은 사실 20년 전에 "은하를 넘어서"란 고상한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은하를 넘어서"란 제목이 좋기는 한데 원제를 생각하면 의역도 이런 의역이 없습니다. 원래 제목은 "Have Space Suit - Will Travel"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아작에서 붙인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이 오히려 원제에 더 가깝죠. 그래도 그렇지 "출장 가능"이라니요... travel이 출장이라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건 약간 코미디 같달까... 번역하고 보니 제목이 좀 우습습니다. "우주복 획득, 우주여행 시작"이라던가 뭐 이 정도가 적당한데 어떤 식으로 번역해도 어색하고 이상해요. 이런 형국이니 "은하를 넘어서"가 얼마나 고민해서 나온 제목일까 싶은 생각조차 드는 것입니다.
사실 "Have Space Suit - Will Travel"은 작품 초기에 킵의 친구가 킵을 놀리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문구라 역자의 번역은 문맥상 무척 적절하기는 합니다. 처음에 이 제목을 접하고 '아니 하인라인 작품 중에 저런 희한한 제목이 있었던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는데 누가 이따위로 번역을...이라고 하곤 원제를 보고 좌절했던...
표지 역시 아작 출판사 SF 시리즈 표지의 일관성에 딱 맞는 디자인이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하인라인 옹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지나치게 가볍달까 전혀 흐름에 맞지 않는 표지라 말입니다. 이거 상당히 어색하기만 합니다. 내용 자체가 청소년 SF로 그리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 뭐 딱히 시비 걸기엔 애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