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12
필립 호세 파머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1. 허접한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원작을 읽는 기쁨


   파머옹의 [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를 읽고 보니 훌륭한 원작소설을 영상화 할때는 제작비를 충분히 확보하고 원작의 깊이나 재미를 충분히 살릴만큼 준비를 하고 덤벼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울컥 들었습니다. 다 읽고나니 특히 울컥 들더군요. 이 책을 읽기전에 작가인 파머옹에 대한 호기심부터 그의 대표적인 작품 "리버월드 시리즈"에 대한 관심으로 파일럿 드라마와 미니시리즈를 차례로 보았는데, 파일럿과 미니시리즈 자체도 내용이 너무 달라 의아했지만 원작을 읽고보니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만 차용한 상태로 등장인물, 배경, 스토리 등을 모두 지 맘대로 각색해서 만든 허접한 내용이었네요. 완전 C끕 드라마같아 보여서 불안했는데 이건 마치 퇴마록이 생각나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퇴마록이 오히려 상황이 더 나아보인다고..


   실제로 원작인 [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는 태초부터 죽은이가 동시에 강과 평지로 이루어진 드넓은 공간에 되살아난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하는데 그 설정이 나름 철학적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실제적이랄까? 읽으면서 '아 내가 만약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하게될까?'하고 생각해도 등장인물들의 행동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만큼 나름 현실감 있게 인물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잘 설정해놓았습니다.

   사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내용만 놓고보면 상당히 유치뽕짝이었거든요. 그러나 원작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 전혀 유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도 그 리버월드에 들어간 느낌으로다가 읽혔기 때문에 잘 쓰여졌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약간의 단점이라면 의외로 어드벤쳐형 소설이 아니다보니 전개가 막 빠른 느낌이 아니어서 중간에 약간 루즈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뭐하려고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거지? 하는 의문이 살짝 들거든요. 이 작품 후반으로 가면서 살짝 졸리면서 흡입력이 훅 올라가서 잘 넘겼습니다만은...



#2.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의 시험을 진행하는 초월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너어어어~~~

 

   큰 설정에도 밝혀지지만 이 작품은 2008년에 인간이 멸망하는 것으로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정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신들과 같은 초월자가 인간들을 되살리고 새로운 장소인 리버월드를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 꾸미고 거기다 데려다 놓고 일정비율로 시대와 문화가 다른 인종들을 흩뿌리기 해놓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가 가능한 것들(심지어 엄청 맛나는 음식과 기호식품과 수건, 비누, 환각제까지)을 제공하고 이것들이 뭐하나 구경 또는 연구?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요즘 푹 빠져있는 어항속 물고기 기르기랑 비슷한거죠. 어항안에 환경을 미리 조성해놓고 종류대로 물고기와 야마토 새우를 넣어줍니다. 물 상태를 계속 맞춰주고 필요할 때 먹이를 넣어주고 요놈들이 서로 물어뜯지는 않는지, 쫄쫄 말라가는건 아닌지 관찰합니다. 그러다 새우가 죽어나가면 마트에서 새로운 새우를 다시 채워줍니다. 죽은 새우는 누가 뜯어먹는지, 영역다툼은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관여도 합니다. 물고기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와있는지, 누가 여기다 넣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죠. 그런데 그걸 또 제 와이프가 구경해요. '저 남자는 왜 할일 많고 바쁜데 저 어항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인가? 왜 물고기를 죽이고 또 돈들여 사다 채워넣는 것인가? 저게 뭐라고 저렇게 정성껏 돌보는 것인가?' 이런거죠. 어항을 보는 저를 보는 와이프는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고 이 작품의 독자는 제 와이프같은 입장에서 이 황당하고도 광범위한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도 답답해하긴 마찬가지지만 독자도 똑같은 입장입니다. 아 뭣땀시 이따구 돈들어가고 힘든 짓거리를 하는 것인가 말입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미칠 것처럼 답답하기도 한 이 느낌적인 느낌... 이작품의 묘미라면 묘미입니다.

#3. 관습의 틀을 벗어난 인간들의 탐구를 통한 본질에 대한 통찰

   끝까지 읽어보니 역시나 파머옹은  역사와 서양철학 등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럴듯해 보이려고 자료를 많이 찾아봤거나 둘중 하나겠죠. 인류사적으로 주요한 인물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런데 동양적인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아예 배제되어 있어요. 귀찮아서 동양역사나 철학까지는 공부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작가가 잘 모르는 분야라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웃긴 건 영상화된 미니시리즈에서는 여주인공이 일본인 사무라이로 나와서 주인공이랑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어느 시대나 예의범절은 중요했고, 그 시대와 종족과 지역만의 고유의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그 역사와 전통은 사회의 유지를 위해 철저히 지켜진 경향이 있죠. 그런데 그 예의와 문화라는 것이 시대별로 공간별로 제각각 달라서 말입니다. 인류사적으로 통일된 것은 없지요. 그런데 이 리버월드는 선사시대 원인부터 현대를 사는 사람들까지 막 뒤섞여 있어요. 디테일하게는 주종족 60%와 보조종족 30% 현대인 10% 정도로 구역별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주인공의 여행을 통해 어느정도 밝혀지기는 합니다. 마구잡이로 섞어놓으면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힘들테니까 말입니다.

   이들이 섞여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예로 의복에 관한 재미난 상황이 나옵니다. 격식을 갖춘 옷을 입는 것이 최고의 예의였는데 그곳에는 옷이 전혀 없어서 기본적으로 다 홀랑 벗고 있어요. 모두가 벗고 있는데 몇명만 나뭇잎으로 옷을 차려입으면 그게 예의겠습니까? 그저 튀는 행동일 다름이죠. 이런걸로 고민하는 상황이 재미집니다. 또 하나는 종교적 신념이나 가르침이 이 리버월드에서 벌어지는 일과 너무 동떨어진 것을 놓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입니다. 살아생전 말도 안되는 죄를 지은 사람이나 교회 착실히 다니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리버월드에 다 동등하게 되살아나거든요. 이런 희한한 세상을 창조해서 사람들을 부활시킨 초월자인 하나님은 왜 흉악한 저놈이나 나나 똑같이 대우하냐 이겁니다. 종교적, 도덕적 우월감도 안통하고,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거니까요. 이런저런 설정들을 통해 인간과 문화, 종교 전반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고찰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표현됩니다. 이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에 해당하겠네요.

 

"큰 강이 흐르는 골짜기에는 지상낙원이 펼쳐져야만 했지만, 현실은 전쟁, 전쟁, 오로지 전쟁이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을 제외한다면 이곳에서 전쟁은 유익한 일(일부 사람들에게는)로 여겨졌다! 전쟁은 인생의 구원자였고 지루함을 없애줬다. 인간의 탐욕과 공격성에도 잘 들어맞는 일이었다." p229~230

 

   과연 그렇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4. 소소한 즐거움이 깨알같이 담긴 책 

 

   이 작품에는 몇가지 유머코드가 담겨있는데 솔직히 그다지 웃기지는 않았어요. 그나마 가장 뜬금없으면서도 빵터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부활한 초반에 주인공이 과거 같이 일하다가 사기당한 출판업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나를 만나 반갑다고 말하자, 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가 거의 반가울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놈은 내가 작가가 처음 되었을 때 4천 달라나 사기를 치고 이후로도 몇 년 동안이나 내 경력을 망쳐놓은 썩을 놈의 출판업자잖아. 이 사악한 싸구려 장사치는 나뿐만 아니라 최소한 네 명의 다른 작가로부터 엄청난 돈을 뜯어낸 후 파산을 선언하고 잠적해버린 놈이지. 그래놓고 자신은 삼촌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물려받아 떵떵거리고 살았던 인간이야. 죄는 값을 치른다는 말이 이렇게 증명되는구나. 이놈이 나와 다른 작가들에게 저지른 일뿐만 아니라, 그 일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엉터리 출판업자들 때문에 나는 이놈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p105

 

   이렇게 해서 그 출판업자에게 주먹을 날리고 혼줄을 내줍니다. 이 내용은 저자인 파머형님이 처음 공상과학 소설 콘테스트에서 1등으로 뽑혀서 4천달러 상금을 받아야하는데 주관출판사가 상금을 안주고 엄한데다 돈을 다 쓰고는 파산신고를 해 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기를 당합니다. 에이젼트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민사사건이다보니 돈줄놈들이 나자빠져 버려서 돈을 못받게 됩니다. 이 상황을 작품속에 슬쩍 끼워넣어 놓은 겁니다. 그리고 작품속이긴 하지만 열심히 패줍니다. ㅋㅋㅋ 내용을 알고 읽다보니 갑자기 훅 들어온 이 내용에 빵터졌습니다.

 

   아, 근데 이 작품 결말에 리버월드의 비밀이 밝혀지면 참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살짝 맛만 보여준 다음 주인공 일행이  리버월드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상류로 여정을 떠나는 부분에서 딱 끝납니다. 그러니까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수준의 이야기만 나오는 거랄까요? 뻠뿌질만 잔뜩하고 '아,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흠흠...'하고 문닫는 겁니다. 완전 기절할 지경이죠. 이 리버월드가 정규 이야기만 3부작이고 이후 이야기도 존재하는데.. 에또... 정황으로 봐서는 불새에서 후속작을 출간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저라도 하루에 반페이지씩 발번역을 해가지고 한 1년 반후에 전자책으로라도 출간을 해야할 판입니다. 이거.. 궁금해.. 궁금해... 아주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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