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1. 집중과 선택적 배제에 대한 집요한 관찰의 결과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은 것은 아니다"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이 당대의 수장가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의 발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문장의 앞부분을 유홍준 교수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1권 머리말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알면 사랑하게 된다 -> 사랑하게 되면 잘 보인다"이 두 문장을 퉁친 게 "아는 만큼 보인다"쯤 되겠습니다. 여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가장 잘 상징하는 문장이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닐까 합니다. 똑같은 곳을 여행해도 저처럼 가는데 의의를 두는 사람은 막연히 '아, 좋구나'라며 피상적인 감상과 느낌만 가지고 돌아오는가 하면(저는 누구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느냐가 중요하지 뭘 배웠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보니.ㅋㅋ), 여행지를 잘 공부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준비한 만큼, 다녀온 경험만큼 많이 보이게 됩니다. 관찰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면 자연스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약간이 함정이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 정통해서 많이 알게 되면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진실이나 스쳐지나가며 놓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알게되기는 하는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자신의 전문분야에 국한된 시각으로 바라보다보니 만나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특정한 전문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 한정시키고 나면 무척이나 깊이있게 관찰하고 의미부여한 것일 수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시각으로 관찰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아는 만큼'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공간을 단순히 산책하면서 나만의 시각으로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타인과 내가 "집중"하는 분야와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집중"의 범위가 모두 한결같고 모든 분야를 놓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똑같은 시선으로 거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관찰해서 놓치지 말아야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 진동, 소리, 이벤트가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특정 소리와 시선에만 반응하고 나머지 자극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메커니즘을 거치게 됩니다. 저자는 갓난 아이때부터 자연스레 익혀지는 스킬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해보면 적당히 걸러내지 않고 다 듣고, 관찰하고, 해석하려고 하면 처리해야할 방대한 데이터량 때문에 뇌용량의 역치를 넘어 뇌정지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하드웨어를 설계할 때도 특정 주파수에만 반응하고 나머지는 노이즈로 판단하고 무시해서 안정적인 동작을 하도록 밴드패스필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가 딱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과 일치합니다.
#2. 전문가가 들려주는 통찰, 전문가를 관찰하는 통찰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은 이런 관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같은 공간을 누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나에 따라 해석의 결과가 전혀 달라지는 것을 케이스별로 정리한 책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같은 공간'은 저자의 집앞 거리 대로변으로 한정해 변수를 줄이고 어떤 관점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관점으로 차이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케이스는 각각의 산책에서 그 관점에 대해 저자가 관찰하고 고민한 결과물을 말합니다. 저자 자신과 저자의 어린 아들을 포함한 각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한 열한번의 산책에서 동행들이 관찰하는 관점과 해석을 관찰하고 별도로 공부한 내용에 대해 의미부여를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단순히 동행한 전문가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녹취하듯 옮겨적어서 '이 전문가는 이런 관점에서 이런 소리를 하더라'라고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전문가들의 전문분야에 대해 저자가 별도로 공부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정리를 했다는 점입니다.
동행한 전문가들의 이야기 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정리한 관련 지식에 대한 설명이 더 분량도 비중도 큰 것이 이 책의 특징인데 이 지점이 좀 묘합니다. 이를테면 '음향 엔지니어 아무개와 걷다보니 전문가 답게 이런저런 소리를 잘 잡아내더라, 이런 부분을 알게 되었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한 결과에 대해 정리한 듯한 내용들이 "더" 많이... 아니 정말 "너무 많이" 등장 합니다.
"레러가 말한 안정된 상태의 소리란 파형이 일정하고 예측 간으하며 주파수가 500헤르츠 이하인 소리를 뜻한다.버스가 내보내는 음파는 테니스공 크기의 공기 뭉치로 초당 200회씩 우리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중략) 우리는 도시의 소리를 떠들썩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의 소음 덩어리로 경험한다. 이를 저음질 소리풍경(lo-fi soundscpe)이라고 한다. 소리를 부정적 함의를 띤 '소음'과 가치중립적인 '소리'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중략) 청각은 한 가지 면에서 여타 감각과는 다르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귀는 이음향방사(otoacoustic emissions)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인해 스스로 소리를 낸다." p276~9
이렇게 이 책은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이유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고 보아야 정확한 내용들입니다.
#3. 관찰의 인문학? 관찰의 자연과학?
이책 [관찰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정말 의문인 것이 있었습니다. 도데체 어디 쯤 읽어야 인문학이 나오는 것이냐? 입니다. 하도 헤깔려서 나중에는 '도데체 인문학의 정의가 뭐지?'하는 고민까지 들게 했습니다.
사전적 개념으로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인 자연현상을 다루는 학문인 것에 반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연구의 영역으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읽어도 딱 와닿지는 않지만 자연현상이나 사물을 다루느냐? 인간을 다루느냐의 차이인가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관찰의 인문학]은 사실 인문학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함이 있습니다. 물론 "인문학 책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세상을 인간이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아닌 건 아니죠. 그런데 각 챕터의 내용 자체만을 놓고 살펴보면 사실상 인간이 왜 특정 분야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놓치는지, 전문가가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부분을 어떤 이유와 관점에서 해석해내는지에 대한 지극히 자연과학적인 이론 고찰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읽는 내내 이거 과학이론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관찰의 인문학]의 원제는 "Eleven Walks with Expert Eyes by Alexandra Horowitz"입니다. 그러니까 호로비츠 박사는 원래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시선과 함께한 산책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번역이 되고 출간되는 과정에서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인데, 따지고 보면 저걸 원문 그대로 번역해서 출간했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많이 유행하고 관심가지고 있는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는 잘 붙였습니다. 훨씬 명료한 제목이고 책 내용 전체에 대해 포괄해본다면 딱히 잘못된 제목도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인문학 서적과는 내용상 차이가 좀 있다는 사실은 주지하고 읽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자연과학적 이론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이 읽으시면 읽기가 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제법 정신이 몽롱해진 적이 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