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게임
야나기 코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1. 제국주의 시대에 신출귀몰한 첩보원들의 활약상


   [조커게임]은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무대로 일본에서 활약했던 첩보원들의 이야기 입니다. 책에서는 계속 스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저는 스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스파이란 표현의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입니다. 왠지 음산하고 비열하고 배반이나 일삼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죠.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스파이에 대한 나쁜 인식이 어느정도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마냥 상대방을 속이는 도구, 위험속으로 밀어넣는 일회성 카드와 같은 존재라는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007시리즈같은 영화에서 얻은 선입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벌어지는 미녀와의 로맨스와 같은 것이나 늘 배신당하고 복수하고 뭐 이런 내용들이죠. 그나마 가장 재미있고 와닿은 시리즈는 본 시리즈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본 시리즈가 제일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이 작품 [조커게임]에 등장하는 스파이의 존재는 저의 선입관과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지적으로 굉장히 우수하고 명석할 뿐만 아니라 고독과의 싸움, 뛰어난 능력을 드러낼 수 없음에서 오는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의연한 대처 등, 생각할수록 대단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D기관이라는 스파이 양성학교에 속해 있는 이들의 활약을 그린 [조커게임]은 표제작이자 첫번째 이야기인 "조커게임"을 비롯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이어져있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을 통해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고 때로는 위기에서 기상천외한 탈출하는 등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의 흡입력에 놀라게 되고 잘짜여진 이야기 구조와 결과를 통해 즐거움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합니다.

  



#2. 같은 듯이 다른 듯이 비슷한 '교장'과의 유사성과 차이점


  [교장]과 [조커 게임]은 구조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둘다 교육기관이 배경이자 장소이자 소재인 이야기 입니다. [교장]은 경찰학교를 [조커게임]은 스파이양성학교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작품 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을 바꾸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러나 교육기관 교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단순함을 피하기 위한 돌파구로 선택한 방법에서 두 작품의 차이점이 크게 갈리는 듯 합니다.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지만 [교장]의 경우는 그 단순함을 피하기 위해서 사건의 과장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제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의 감정선이 동원되어서 같은 교육생에게 린치를 가하거나 도를 넘어선 공격을 하는 등의 설정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조커 게임]의 경우는 적어도 그런 식의 설정은 없습니다. 오히려 교육기관 D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점 그 배경이 멀리 해외로 퍼져나가면서 공간이나 사건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런 방식은 인물도 갈등구조도 마음껏 확장할 수 있어 이야기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풍성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 게임]의 에피소드들이 재미도 있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인 풍자와 비판도 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교장]에서는 상당히 실망을 했다면 이 작품 [조커게임]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인간의 인생관, 가치관에 대한 철학적 물음 

 

   [조커게임]은 제국주의 시대에 군사조직의 일방적인 상명하복 문화, 국가주의에 대한 대단히 치밀하고 꾸준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비판의 중심 역할은  D기관을 설립하고 스파이를 양성하는 전설적인 스파이 '유키 중령'이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 교육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입 받아온 군사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에 대해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유키 중령'의 역할은 굉장히 크고도 중요합니다. 미스터리한 배경을 지닌 '유키 중령'의 존재는 이 이야기들의 중심을 잡아주고 무게감을 심어주는 키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당시 일본의 국가, 군국주의에 대한 대척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확히 분리하기는 어렵지만 유키 중령역시 제국주의에 반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방법론에 대한 시각차이는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커게임]이 좋았던 점은 스파이 양성교육기관의 소속 교육생들이 정말 우수한 실력을 발휘하고 그 과정과 결과물에서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에 따라 조직, 국가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다는 부분을 강조한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스파이들을 위해 '유키 중령'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군인이나 외교관 같은 시시한 신분 따위에 구애되지 마라." (중략) "그런 것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표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라도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무엇에든 얽매이는 순간 그 즉시 그것은 너희들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중략) "무언가에 얽매여 살기는 쉽다. 남들이 믿는 대로 따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책임을 버리는 것이며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다"p286~7


   유키 중령의 이런 충고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 하는 스파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요? 유키 중령의 목소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던, 무엇에든 얽매이지 않고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도 유키 중령처럼 여러분에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벤트 책에 구애되지 마라. 리뷰 의무에 얽매이는 순간 그 즉시 그것은 너희들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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