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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서명 ㅣ 셜록 홈즈 전집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평점 :

#1. 그야말로 명불허전인 훌륭한 이야기
아 이거참, 괜히 셜록홈즈, 셜록홈즈 하는게 아니군요. 진홍색 연구에 이어 네 개의 서명에 들어오니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는 물론 이야기 전개의 틀이 잡힌다는 느낌입니다. 일단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읽어나가면서 셜록홈즈에 비해 초라한 저의 뇌용량과 느린 회전속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해야할지 짜증난다고 해야할지... 그래서 제가 왓슨이 딱 내 스타일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주인공 셜록홈즈와 왓슨이 이어가는 이 이야기는 명탐정 소설의 클래식한 기본 패턴을 참으로 정직하게 지켜가고 있었습니다(기본 패턴이 뭐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긴 한뒈...) 훌륭한 탐정, 그리고 평범해서 탐정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조수, 헛다리나 짚으면서 역시나 탐정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멍청한 경찰, 그리고 기묘한 이야기와 그럴 수 밖에 없는 범인의 다양한 사연, 등등 말입니다.
여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 속에서도 긴장을 놓지 않고 흥미롭게 읽은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너무 널리 알려지고 패턴이 뻔한 이야기라 노출이 많았고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을 여건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는 세대를 초월하는 재미와 힘이 있다는 말에 토를 달기 어려운 형편이네요.
#2.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사회파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이걸 사회파라고 언급을 해야할지? 휴머니즘이 풍긴다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본격 추리소설의 원류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첫 작품 [진홍색 연구]에 이어 [네 개의 서명]에서도 사회파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들이 나타났습니다. 사회파 계열의 소설에 잘 드러나는 범인이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속사정,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회현상과 여건 등이 이 작품에도 나름 큰 비중을 두고 나타납니다. 그러고 보니 첫작품 [진홍색 연구]에서 훨씬 원형에 가깝게 드러나는군요. [진홍색 연구]에서는 심지어 종교와 종교인들의 문제도 은연중에 깊이 드러내고 있고, 전체 분량의 1/3을 범인의 히스토리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타이트하게 진행되던 사건과 범인 추격전의 끝에 마주한 범인을 두고 범인의 이야기와 사연과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놀랄 만한 휴머니즘이 자칫 딱딱하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액자소설을 보는 듯한 범인의 사연이 담긴 스토리는 생각보다 기승전결이 또렷하여 설득력을 얻고 그 이야기 만으로도 빠져들게 만듭니다. [진홍색 연구]에서는 심지어 이야기가 끝나고 또 다른 단편이 시작되는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이야기 내에 녹아있는 범인의 사연이야기는 독립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범인이 들려주는 이 독립된 이야기 속에 역사가 있고, 사회 저변의 분위기와 인간들의 군상이 은은하게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읽다보면 '범인이 딱히 잘 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라도 저랬겠다' 하는 동정도 생깁니다. 이런 구성은 역시나 읽는 재미나 공감 차원에서 훌륭한 구조임은 틀림없습니다.
#3. 전작보다 더 화려한 활약을 펼치는 홈즈, 그리고 이번에도 딱히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왓슨...
그렇습니다. 전작에 비해 셜록홈즈가 폭넓게 활약하고 그의 능력이 더욱 부각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과 공이 경찰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범함까지 장착합니다. 그에 반해 왓슨 박사는 그저 사건이 흘러가는데로 진상을 파악하기는 커녕 그저 따라다닙니다. 홈즈의 조수역할만 할 뿐입니다. 또한 사건을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활약이 너무 없습니다. 그저 여자나 밝히는... 게다가 재산차이를 의식해 사랑을 표현도 못하는 찌질함도 장착합니다.
이래저래 왓슨파 저는 뒷맛이 개운치 못합니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왓슨의 매력이 드러나고 역할이 커지기를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이 이야기만 봐서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향후 아웃되는 듯한 마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우리는 왓슨이 끝까지 활약할 것을 알고 있지만 뭔가 좀더 스토리에서 중요한 방점을 찍어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이번 작품에서는 베이커가의 소년탐정단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건을 풀고 이어가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왓슨 보다는 사건해결에 도움이 되니 우리의 왓슨 박사는 그나마 2순위에서 3순위까지 밀린 듯한 느낌입니다. 제 기억에는 이 친구들이 전혀 없었는데 윤해환 작가의 '트위터 탐정 설록수'를 읽으면서 홈즈가 아이들 몇몇을 정보원처럼 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공부하는 고등학생 정도였던 것 같은데 원작에서는 거의 부랑아 들이더군요.
생각보다는 더욱 재미있고 궝도 탄탄한데다가 제가 애정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모양새도 보이는 등, 상당히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새롭고 재미있는 것이 읽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